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368p
Where to buy
Rating Graph
Avg3.9(68)
Rate
3.9
Average Rating
(68)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여섯 번째 이야기. 5·18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정치학자 최정운은 외관으로서의 사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말하자면 증언을 통해 시민들이 당시 가졌던 생각, 감정 상태 등을 감정이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5·18을 마치 자신이 겪은 사건처럼 다시 서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적 경험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을 막스 베버의 ‘이해하기 위한 사회과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베버가 발명한 특이한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어떤 역사적 시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생각하는 방법’을 베버가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발간된 것을 다시 펴낸 것이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된 바도 있는 명저이다. 무엇보다 ‘사회과학을 보면서 울 수도 있구나’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감정이입을 통해 서술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고이게 된다. ‘우리의 사회과학’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Rating Graph
Avg3.9(68)

인터파크 MIX & MAX

올 여름 휴가, 인터파크가 쏜다!

인터파크 · AD

Author/Translator

Comment

9

Table of Contents

책을 펴내며 머리말 5?·18 상황 일지 1부 폭력과 언어의 정치: 5·18담론의 정치사회학 1. 침묵의 역사 ‘광주사태’와 ‘5·18민주화운동’ 2. 폭력의 전선과 언어의 전선 폭력과 투쟁의 언어: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유착과 명분: 5월 22일부터 27일까지|심판의 시대, 신군부에 의해 조작되다 3. 부활의 언어 4. 담론과 현실 폭도론|불순 정치집단론|유언비어론|과잉 진압론|민주화론|민중론|혁명론 5. 광주 시민이 남긴 최후의 담론 2부 폭력과 사랑의 변증법: 절대공동체의 등장 1. 말과 몸 2. 음모론 3.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사회과학적 설명 민주화운동과 5·18|호남 차별의 한|저항의 역사|공동체와 계급구조 4. 공포와 분노의 논리 5. 절대공동체의 등장 6. 젊은 그들이 도청에서 죽음으로 지켜낸 것 3부 삶과 진실: 해방광주의 고뇌 1. 절대공동체의 균열과 분절 2. 정치와 계급 3. 일상으로의 복귀 4. 마지막 항전과 죽음의 의미 5. 광주의 진실을 죽음으로 지키다 4부 해방광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석의 시도와 이론적 문제점 1. 폭력의 성격 2. 저항의 논리 3. 그날 이후 참고 문헌 찾아보기

Description

‘광주’는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하진 절대공동체는 어떻게 탄생하고, 몰락했는가? 새로운 사회과학 글쓰기로 해방광주를 생생하게 복원한 우리 시대의 명저 5 · 18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 “5·18은 사건으로서 엄청난 사회과학 이론적 함의를 갖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는 5·18과 5·18의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 무인도에서 서양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외딴 섬 나라 ‘광주’는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5·18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오월의 사회과학》의 저자 최정운은 5 · 18이 없었다면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5 · 18의 의미는 우리 현대사에서 간단치 않다. 하지만 그 진상과 의미는 32년을 맞은 지금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사건으로 인식되며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5 · 18 자체를 잘 알지도 못한다. 또 국가 권력의 횡포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당시 학살 책임자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상황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기존의 5 · 18 관련 연구 자료들은 ‘진상규명’과 ‘사실’들에 지나치게 매달려왔다. 그리고 이미 설정된 서구 담론의 틀에 끼워 맞춰 해석하거나, 필자들의 이념 지형에 사건을 끼워 맞춰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학자 최정운은 이런 방식으로는 사건의 참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그동안 발표된 5·18 관련 서적, 논문 등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다. 시각도 새롭고 글쓰기 방식도 새롭다. 우선 저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광주 상황을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마치 당시 현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 최정운은 외관으로서의 사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말하자면 증언을 통해 시민들이 당시 가졌던 생각, 감정 상태 등을 감정이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5·18을 마치 자신이 겪은 사건처럼 다시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을 추구하는 사회과학만이 인간과 인간의 역사에 대하여 몇 백 배 깊이 있는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러한 내적 경험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을 막스 베버의 ‘이해하기 위한 사회과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베버가 발명한 특이한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어떤 역사적 시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생각하는 방법’을 베버가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으로 저자는 해방광주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공동체를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절대공동체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절대공동체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 있는 시민임을 인정하고 축하하고 결합한 공동체였다. 시민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하며 추구하던 인간의 존엄성은 이제 비로소 존엄한 인간끼리의 만남 그리고 바로 이 공동체에서 서로의 인정과 축하를 통해 객관화되었다. 절대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들은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5 · 18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피해의 규모 문제 외에 특이한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5 · 18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5·18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저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증언록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료연구소 편)에서 찾았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발간된 것을 다시 펴낸 것이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된 바도 있는 명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회과학을 보면서 울 수도 있구나’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감정이입을 통해 서술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고이게 된다. ‘우리의 사회과학’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5월 18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80년 5월 18일 정오 무렵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시 중심가 금남로 일대에는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기동경찰대가 출동하여 이들을 진압하고 있었다. 이 대학생 데모는 당시 한국 대도시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오던 것이었다. 대학생이 데모를 하면, 경찰이 진압을 하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특이한 사항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오후 4시에 터졌다. 경찰이 아니라 공수부대가 출동해 무차별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치명적인 진압봉으로 폭력을 가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까지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하고 여성들을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는 성도착적인 잔인성을 보였다. 그때부터 벌어진 일들은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머릿속에 준비하고 있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고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수도 없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광경을 일일이 묘사해 전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 광주 시민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나 사실로 믿지 않았다.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짐승’이었고, 그들의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수부대의 이런 잔인한 진압 방식은 전시적 폭력, 즉 폭력극장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타를 당하는 사람 외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공포를 주는 것이며, 따라서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욱 효과적이라 여겼다. 죽거나 살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처참하게 패고 찌르고 자르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압의 기본 원칙이었다. 공수부대는 여기서 끝이 날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전 해 1979년에 있었던 부마사태는 이 상태에서 모두 진압이 되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18일, 19일 이틀에 걸쳐 일어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만행’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인간 이하라는 수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이 인간 이하임은 폭력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분노는 광주 시민들을 사선을 넘어 공수부대와 싸워야만 했던 운명으로 만들었다.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과감히 투쟁에 참여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임’을 회복하기 위해 이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뚫고 과감히 분노를 분출하도록 내린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이성적인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일 공수부대는 장갑차도 동원했고 그들의 잔인함은 맹위를 떨쳤다. 다시 점심때쯤 거리는 텅 비어버렸고 공수부대는 안심하고 주둔지로 식사를 하기 위해 철수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시

Collections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