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알찬 서술로 기호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컨택트」는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가 ‘헵타포드’라 이름 붙여진 외계인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SF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이 사용하는 기호를 분석하고, 그 기호들이 갖는 의미를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 끝에 그들의 언어가 음성과 의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놀라운 체계를 갖추었음을 알아낸다. 「컨택트」가 조금 어려운 접근이라면 재미있는 동화 『프린들 주세요』는 어떨까? 이 동화는 “말은 ‘우리’가 만드는 거”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은 장난꾸러기 닉이 ‘펜’을 ‘프린들’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펜’ 대신 ‘프린들’이라는 단어가 확산되자 이를 쓰지 못하게 하려는 교사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려는 아이들이 싸움을 벌인 끝에 ‘프린들’은 최신 개정판 웹스터 대학사전에 신조어로 수록된다. 일면 황당해 보이는 이 동화는 언어와 기호가 가지는 자의성과 사회성을 잘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호학은 영화 「컨택트」와 동화 『프린들 주세요』에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기호들의 쓰임과, 사회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통되는 현상, 그리고 그것들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호? 뭐, 수학할 때 쓰는 거, 아님 교통표지판을 말하는 건가? 기호학, 그건 또 어디에 쓰는 건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말만 들어도 어려워 보여. 학자도 아닌 터에 굳이 그런 걸 알아서 뭐하냐?”라고 하면서 관심의 영역 밖으로 던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기호학은 매우 쓸모 있는 학문이다. 기호학을 공부하면 세상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사회문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분석할 수 있고, 데이트할 때 연인이 자꾸 안경테를 만지는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고, 정치인들의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언어를 해석할 수 있다. 난해한 시와 현대미술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나 각종 예술 작품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쉬워진다. 심지어 타자(他者)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어지고, 뻔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언어는 물론 숫자, 상징, 약속, 대중매체 등에 이르기까지 ‘기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호학’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실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예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낸 교양서로서 세상과 사물을 좀 더 다르게, 좀 더 넓고 깊게, 좀 더 정확하게 보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당신이 기호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예를 들어 누군가 “요즘 청와대가 문제야!”라고 말할 때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청와대 건물에 균열이 생겼다는 뜻일까, 누수나 방전이 잦아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뜻일까, 청와대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일까? 답은 분명하다. 건물 자체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활동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건물 자체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럼, 공사를 다시 해야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의사소통이 안 돼도 유분수지!”라는 질책과 함께. 또 연인에게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줄게”라는 프러포즈를 들었을 때, 이 문장을 직설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곧 “평생 고생 시키지 않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돈을 열심히 벌겠다”라는 의미니까.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의 경이로움은 이처럼 직접적인 의미 외에도 비유적이고 간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기호가 사용되는 현상의 숨은 뜻과 상징성, 진의를 이해하려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기호가 내포하는 참뜻을 알아야 한다.
기호학이 뭐냐고, 왜 배우냐고 물으신다면!
기호학은 ‘기호’를 다루는 학문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기호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모두 기호를 통해 소통하며 살아간다. 얼핏 같아 보이는 행동이라고 해도 맥락에 따라 의미는 가지각색일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기호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따라가야 한다. 현재 기호학은 기호를 연구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문학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응용 및 활용되고 있지만, 놀랍게도 기호학의 역사는 매우 짧다. 20세기 중후반에 걸쳐서야 간신히 인문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나 롤랑 바르트 같은 학자 외에는 이름조차 생경한 연구자도 많다. 그런데도 기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기호학은 일상에서도 매우 유용한 학문이다. 기호학을 알면 다양한 기호를 통해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의 어려움을 배우며, 의사소통의 복잡한 메커니즘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이다.
재미와 쓸모,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호학 책
서점에 나가 보면, 논리학․철학․미학․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대학 초년생이나 인문학 초보자들이 읽을 만한 교양서들이 많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호학 분야에서는 이런 수준의 독자들이 읽을 만한, 쉽지만 알찬 내용의 책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이 같은 안타까움에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기호학’이라는 전문적인 학문 분야와 교양에 목마른 대중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 즉 좋은 대중 교양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이다. 책의 초반부(특히 2장)에 낯선 개념과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독자 스스로 넘어가야 할 과정이다. 어떤 학문 분야에 접근하려면 그 학문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들과 용어를 먼저 익히고 익숙해져야 하니까! 하지만 이 책은 대중 교양서이므로 인문학 초보 수준의 독자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개론 수준의 기호학 내용들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최대한 평이하게 풀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학문 분야가 주는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이 책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기호학의 개념들과 용어들을 하나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세상과 사물, 사태를 보는 새로운 눈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