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교와 과학은 싸울 수밖에 없는가?
400년 동안 이어져 온 종교와 과학의 권력 투쟁을 밝히다!
무신론의 사상적 기원을 제공한 버트런드 러셀의《종교와 과학》출간!
종교와 과학의 힘겨루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만들어진 신》,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출간으로 이어진 진화론 대 창조론의 논쟁은 국내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아프칸 피랍, 진화론만 가르치는 교과서 등이 다시 종교문제로 불거지는 가운데, 종교와 과학의 열린 대화를 모색한《종교전쟁》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반론의 반론을 거듭하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양립론, 화해론 등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종교와 과학은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가? 이러한 갈등은 과연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논쟁일까? 한번쯤 종교 갈등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본 이들이라면 러셀의 고전,《종교와 과학》에서 다시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지성, 러셀이 무신론자인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면서 400년 동안 이어진 신학자과 과학자 사이에 벌어졌던 주목할 만한 갈등을 담고 있다. 단순히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장에 주목한다. 종교와 과학이 자리싸움을 하는 동안 인간은 소외되고, 예상치 못한 사회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전쟁의 체계적인 역사를 궁금해 하는 독자나, 종교와 과학의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에드워드 윌슨 등 무신론운동의 뿌리에는 러셀이 있다!
중세 과학부터 거슬러 올라가 파헤치는 논증적 과학사,《종교와 과학》
종교와 과학의 갈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과학주창자이자 무신론자인 ‘러셀’에 친숙할 것이다. 영미 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러셀은 니체 이후 가장 확고한 무신론자로 이름을 날렸다. 1923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통해 종교의 해악, 종교적 극단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비판했으며 이후 러셀의 사상은 세계적인 저자 도킨스, 히친스, 윌슨 등으로 이어지는 무신론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실제로 도킨스는 2003년《악마의 사도》출간 당시, 러셀의 유명한 ‘찻주전자 비유’를 재인용하면서 종교에 일격을 가하기도 했다. 찻주전자 하나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고 있고 그것은 너무 작아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반론 없이 대대로 이어지며 신봉되는 상황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종교가 러셀의 찻주전자보다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1935년에 출간된《종교와 과학》역시 기존에 발표한 러셀의 무신론에 기반을 두고 쓴 본격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종교와 과학이 대립되는 지점을 논증하면서 진화론이 어떻게 지질학에서 발생했으며, 백신과 마취제의 수용 과정 등 과학이 종교와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진보했는지를 보여주기에 한 편의 과학사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뿐 아니라 과학의 투쟁적인 발전사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지질학, 해부학 …… 그리고 기독교를 둘러싼 논쟁들
왜 갈릴레오는 반복되는 종교재판에 서야 했고,
최초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는 탄압을 피할 수 있었는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권력투쟁이다!
종교와 과학 간의 최초의 갈등은 우리가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의 중심이 지구인가, 태양인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따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사실 천문학에 능했던 그리스인에서 시작했으며, 케플러의 법칙, 갈릴레오, 뉴턴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했다. 과학자들은 지질학, 생물학, 의학을 넘나들며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고, 그때마다 종교는 권위를 끌어내리려 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당한 채 생을 마감한 반면, 케플러는 갈릴레오와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황제의 점성술을 봐주며 예수회에 복직하기도 했다. 최초의 해부학자인 베살리우스 역시 카를 5세가 가장 신임하는 의사였기에 공식적인 견책을 피할 수 있었다. 과학이 종교의 권위와 결탁될 때만큼은 갈등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이 인간의 육체와 질병에 관한 연구를 내놓으면서 갈등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됐다. 여성들은 창세기의 권위 때문에 마취제를 쓰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출산을 했고, 흑사병이 등장했을 때 유대인을 학살한 배경에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푼다는 이유가 있었다.
러셀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 속에 내재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욕망을 읽어내라고 당부한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데카르트 철학 대신 인간이 전적으로 물리학 법칙에 의해 통제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대중적 공포를 낳았고, 결국 “프랑스혁명이 극단으로 치닫는 데 크나큰 영향”(110쪽)을 줬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늘 과학이 ‘가치’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종교의 윤리학 역시 정치와 면밀하게 연결된 사적인 욕망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 탈을 쓴 종교, 지적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는 과학
종교와 과학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러셀은 종교가 과학과의 갈등을 통해서 성숙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종교가 기독교가 뉘우친 오류를 답습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9.11 테러, 국내의 아프간 피랍, 각종 세계 종교전쟁 등 인류의 많은 불행이 종교에서 비롯됐다. 과학의 승리 역시 늘 인류에게 이로웠던 것이 아니다. 과학은 교회의 영향력을 약화시켰지만, 전쟁 무기의 파괴력을 갖고 왔으며 군수품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를 늘렸다. 종교와 과학이 갈등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소외됐고, 평화는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종교의 권위를 이어받은 새로운 형태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지적 자유를 둘러싼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과학과 결탁하면서 과학은 잠정적이고 가설적인 본연의 특징을 버리고 과학 기술을 이용해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종교와 과학을 놓고 벌이는 갈등 만큼이나 인류, 사회를 위한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러셀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신흥 종교와 과학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새로운 진리는 종종 불편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얼룩진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총명하면서도 방종한 우리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