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조너선 갓셜 ·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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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하는 동물, 호모 픽투스’다.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진화했고 문명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야기 과학’ 연구자인 조너선 갓셜은 바로 그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이 오늘날 우리를 파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문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 신경과학을 종횡무진하며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이해, 공감, 결속, 평화를 증진하는지, 스토리텔링의 ‘흑마술’이 어떻게 분열, 불신, 증오의 씨를 뿌리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 과잉 시대인 오늘날, 우리 ‘호모 픽투스'가 과연 재밌는 거짓과 따분한 진실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 혜안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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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머리말: 결코 이야기꾼을 믿지 말라 011 1. “이야기꾼이 세상을 다스린다” 033 이야기나라의 삶 036 │ 당신이 그 소녀다 043 │ 이야기꾼 045 │ 미디어 등식 048 │허구의 동성애자, 흑인, 무슬림 친구들 055 │나불나불 수다쟁이 061 2. 스토리텔링의 흑마술 066 “이야기의 잘못이 가장 크다” 070 │ 은밀한 설득 073 │ 함정 081 │ “들려주지 말고 보여주라”의 과학 085 │ “비밀 선전원” 088 │ 스토리텔링의 영원한 숙제 092 │ 스토리넷 098 │새로운 판옵티콘 101 │ 2016년 전격전 104 │ 시적인 철학자 108 3. 이야기나라를 장악하려는 대전쟁 111 예술은 전염이다 116 │ 이야기꾼 왕중왕 121 │ 불구가 된 마음 129 │ 팬케이크 지구설 133 │ 유사 종교의 위력(과 위험) 139 │ 승리하지 못하는 이야기 142 │ 쾌활한 선행자의 거대한 음모 146 4. 이야기의 보편문법 148 해피엔드의 고충 153 │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157 │ 공주와 호랑이의 끝없는 전쟁 163 │ 데우스 엑스 마키나 167 │ 제인 오스틴 도식 172 │ 이야기는 부족을 만든다 176?도덕적이 아니라 도덕주의적 179 5.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면 184 공감적인 사디즘 188 │ 내집단 호의, 외집단 적의 193 │ “역사의 상처” 195 │ 고매한 거짓말과 비루한 진실 199 │ 책들의 전쟁 205 │ 악당 없는 역사 209 │ 악마에 대한 공감 213 6. 현실의 종말 220 당신은 서사의 주인이 아니다… 서사가 당신의 주인이다 226 │ 자유롭지 않은 의지 23 │ 이야기우주 236 │ 몽매화 241 │ 미국 최초의 픽션적 대통령 243 │ 자연적인 것 247 │ 후기 251 │ 학계의 개혁 254 │ 데모칼립스 262 │ 플라톤의 국가, 중국 269 결론: 모험에의 소명 272 감사의 글 287 │ 참고문헌 288 │ 주 332 │ 찾아보기 346

Description

인류의 공감과 협력 vs 복수와 증오의 근원 스토리텔링 본성에 관한 흥미진진하고 오싹한 탐구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수많은 책이 스토리텔링의 미덕을 칭송한다. 하지만 ‘이야기 과학’ 연구자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는 부작용이 있는 ‘필수적 독’이며 이를 더 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문명을 건설한 바로 그 전통인 스토리텔링 본성이 오늘날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갓셜은 문학, 사회학, 철학, 진화심리학, 신경생물학에서 가져온 탄탄한 연구 결과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 넣어 독자를 설득한다. 원시시대 동굴 들소의 출현에서 고대 아테네의 황금시대와 트로이목마까지, 도시괴담과 음모론에서 넷플릭스와 《해리포터》 까지 이야기를 종횡무진하며 스토리텔링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 독자들은 이야기가 우리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이 인류의 진화와 문명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런데 그랬던 이야기가 어떻게 환경파괴, 무자비한 선동, 전쟁 같은 문명의 최대 병폐를 일으켰는지 탐구하게 될 것이다. 갓셜이 이 책을 통해 제시하는 문제와 해결책은 사실 동일하다. 바로 우리가 ‘이야기를 사랑하는 동물’ 호모 픽투스임을 자각하라는 것. 책을 통해 이 의미를 알고 나면, 잠에서 깨어나서 맞닥뜨리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모험이 시작될 것이다. “이야기꾼이 세상을 다스린다. 이야기꾼을 모조리 추방하라! ” 플라톤이 태어난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는 ‘살육의 시대’였다. 당시 아테네는 대역병(Plague of Athens)과 잔혹한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아테네인을 극한의 분열로 몰아붙였고,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곧바로 내전에 돌입했다. 찬란했던 민주정이 막을 내리고, 스승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많은 목숨을 앗아간 중우정치가 고개를 들었다. 이로 인해 플라톤은 정치가의 꿈을 접고 철학자가 되어, 2400년 동안 명성을 떨칠 주저 《국가》를 집필한다. 한데 ‘이상국가’ 건설에 대한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조목조목 담은 이 책의 마지막 권에는 뜬금없지만, 의미심장해 보이는 대목이 등장한다. 유토피아에 이르려면, “이야기꾼(시인)을 모조리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은 왜 아테네의 멸망을 보며 이야기꾼을 내쫓으라고 갈파했을까? 그때 그는 무엇을 봤던 걸까?(66~70쪽) 그로부터 2400년 후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 ‘이야기 과학’을 연구하는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코로나19의 대유행, 계속되는 전쟁, 포퓰리즘 선동가의 부상,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한 계급적 긴장, 그리고 각종 궤변 때문에 동일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탈진실 세계의 도래를 보며 의문을 품는다.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보장한 연장인 ‘스토리텔링 본성’이 오늘날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실은 ‘이야기’가 세상에 수많은 혼돈, 폭력, 오해를 일으키는 주범인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대로 흘러가게 그냥 둔다면, 플라톤이 목도했던 것을 나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그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라톤의 마지막 메시지처럼 이야기꾼을 모조리 추방할 순 없었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그건 또 다른 종말을 의미했다. 갓셜은 ‘이야기 과학’ 연구자답게 문학, 사회학, 철학뿐 아니라 진화심리학과 신경생물학에서 근거를 가져와 인류를 설득할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사람을 구워삶는 데 이야기만큼 힘이 센 것은 없으므로, 작품의 서술 방식은 당연히 ‘이야기’다. “진화는 이야기를 위해 마음을 빚었고, 마음은 이야기에 의해 빚어진다” 갓셜의 이런 주장에는 사실 꽤 근거가 있다. 일단 그 근거이자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인 ‘스토리텔링 본성’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1908년, 모험가들이 프랑스 튀크 도두베르 동굴에서 진흙으로 빚은 들소 형체를 발견한다. 동굴 입구에서도 강물을 건너고 수직굴을 기어 올라 1킬로미터는 가야 볼 수 있는 이 진흙 들소는 약 1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 들소 두 마리가 종교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통로 주변의 어른과 아이들의 발자국으로 신, 정령, 기원, 종말 등 부족의 소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부족원들이 이곳을 찾았음을 알아냈다(274쪽). 이 연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는 스토리텔링이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된 본성이라는 것. 둘째는 우리가 이야기를 탐닉하기 위해 목숨도 거는 종이라는 것. 인간의 본성 깊숙이 새겨진 ‘이야기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강력해서 인류의 진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이 모든 지혜를 이해 가능하고, 전달 가능하고, 설득 가능하고, 실행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한마디로 어떻게 착 달라붙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고 해법이 발견되었다. 스토리텔링이 해법이었다”라는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말처럼(46쪽),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서로를 설득해 이해를 증진했으며, 공감을 강화하여 집단을 결속했다. 그렇게 문명을 건설했다. 인류의 이야기 사랑은 수만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이야기’ 같은 고리타분한 것에 요즘 누가 관심을 쏟느냐고 반문하기 전에 당신의 일과를 되짚어보라. 당신은 교재나 책, 뉴스기사를 읽는 데 몇 분을 쓰는가? 리얼리티쇼, 시트콤, 다큐멘터리 등을 보는 데는?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일별하는 데는? 게임을 하는 데는? 대중가요나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는 데는? 기술 발달 이전에는 춤, 노래, 미술, 대화 정도가 이야기의 전부였지만, 오늘날 인간은 비대면으로도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이야기 과잉 시대’에 산다. 물론 이야기가 문명을 발전시킨 것처럼 좋은 쪽으로 힘을 발휘한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어두운 측면으로도 얼마든지 작동할 수 있다. 이야기꾼이 그렇게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이야기 과학’의 핵심 ‘서사이동’부터 ‘이야기에 빠진 뇌’의 비밀까지 이야기의 다크 포스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에겐 풀어야 할 의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대체 인간의 ‘뇌’와 ‘이야기’에 어떤 메커니즘이 숨어 있기에 우리를 쥐락펴락하느냐는 것이다. ‘이야기 과학’의 핵심을 하나 꼽자면, ‘서사 이동(narrative transpor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서사이동이란 “책을 펼치거나 텔레비전을 켜고 일상에서 벗어나 대안적 이야기 세계로 정신적 순간이동을 하는 미묘한 감각”을 말한다(52쪽). 우리가 이것을 경험할 때는 몇 가지 현상이 잇따른다. 첫째, 서사이동을 할 때 우리는 현실 세계뿐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된다. 둘째,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이야기의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잊는다. 셋째, 이를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52쪽). 이렇게 우리는 이야기에 ‘빠진다.’ 이야기가 강력할수록 우리는 주인공에 깊이 이입해 허구에 대한 불신을 유예하고(61쪽), 강렬한 감정을 활성화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119~120쪽). 한마디로 우리는 ‘설득’당한다. 《뿌리》의 쿤타킨테를 보고 흑인에 대해 관대해진 것도, J.K. 롤링의 《해리 포터》를 읽고 소외된 ‘타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줄어든 것도(186쪽), 약 2000년 전 한 줌의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을 널리 퍼뜨려 오늘날 기독교 인구가 전 세계 31.5%를 차지하게 된 것도 다 이 덕분이다(121~128쪽). 그런데 서사이동에도 치명적인 양면성이 있다. 서사학 교수 톰 판라르(Tom van Laer)에 따르면 “서사이동은 신중한 판단과 논증 없이도 지속적 설득 효과를 낳는 정신 상태”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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