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찰스 핼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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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몽골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은 짧은 시간 동안 광범한 유라시아 대륙을 군사적으로 정복했고, 몽골의 정복 이후 세계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당시 고도로 발전한 정주 문명이었던 중국과 페르시아의 경우에는 생태 환경부터 전혀 다른 유목민들의 침입으로 인해, 또한 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상당한 역사적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러한 변혁을 일으킨 몽골 제국에 주목하게 되었고, 몽골의 유산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노력으로 인해 중국의 몽골 정권인 원나라, 페르시아의 몽골 정권인 일 칸국에 대해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이나 페르시아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몽골족은 상주하면서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칸국 :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의 출간 의의는 척박한 땅에 내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에 비유될 만하다. 컬럼비아대에서 중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분야에서 여러 저술과 9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보기 드문 전문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러시아의 기록들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봤으며, 민족-종교적 접경지대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양자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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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 감사의 말 1장 중세의 민족- 종교적 접경 2장 키예프 공국과 초원 3장 몽골 제국과 킵차크 칸국 4장 몽골의 러시아 통치 5장 러시아 정치에서 몽골의 역할 6장 몽골의 지배에 대한 러시아의 ‘이론’ 7장 경제와 인구에 끼친 영향 8장 몽골족과 모스크바 공국의 전제정치 9장 몽골족과 러시아 사회 10장 문화생활 11장 결론 주 / 참고문헌 / 옮긴이의 말 / 찾아보기

Description

중세 러시아를 지배한 몽골의 킵차크 칸국 그들은 그 광활한 영토에 무엇을 남겼는가 몽골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킨 사료의 행간을 읽어내 역사의 진실을 추구한 역작!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몽골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은 짧은 시간 동안 광범한 유라시아 대륙을 군사적으로 정복했고, 몽골의 정복 이후 세계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당시 고도로 발전한 정주 문명이었던 중국과 페르시아의 경우에는 생태 환경부터 전혀 다른 유목민들의 침입으로 인해, 또한 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상당한 역사적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러한 변혁을 일으킨 몽골 제국에 주목하게 되었고, 몽골의 유산遺産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몽골이 중세 러시아 지배한 시기 본격 소개 그 노력으로 인해 중국의 몽골 정권인 원나라, 페르시아의 몽골 정권인 일 칸국에 대해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이나 페르시아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몽골족은 상주常住하면서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몽골의 통치를 받았던 중국·페르시아 관료들이 몽골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 반면, 러시아 연대기들은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기록했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몽골의 지배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은 기록들 속에서 우연히 드러난 틈을 어렵게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틈을 찾아낸 역사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바라보았다. ‘타타르의 멍에Tatar Yoke’라고 하는 유명한 용어가 상징하는 바는 러시아 역사에 전형적인 고정관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의 출간 의의는 척박한 땅에 내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에 비유될 만하다. 컬럼비아대에서 중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분야에서 여러 저술과 90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한 보기 드문 전문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러시아의 기록들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봤으며, 민족-종교적 접경지대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양자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 있었던 중세 러시아 저자에 따르면 몽골 시기에 중세 러시아는 두 개의 광범하면서도 조화되지 않는 세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러시아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접경에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었다. 동방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면, 러시아는 중국해中國海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거대한 몽골 제국의 영역에서 가장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 두 영역의 일부분이면서도 아직은 완전히 소속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세 러시아가 직면한 수수께끼 중의 하나였다. 문화적으로는 비잔티움 및 서구와 연결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이교도와 훗날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동방과 연계되어 있던 킵차크 칸국 치하의 러시아는 동방과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변칙적인 존재였다. 게다가 중세 러시아는 종종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복자들에 의해 정복된 땅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초원의 거대한 목초지는 러시아와 충분히 가까운 곳에 있는 대규모의 유목민 군대를 먹여 살릴 수 있었고, 그래서 몽골족은 직접적인 점령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는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러시아의 역사 저술 측면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와는 달리, 유럽과 중동의 기독교-무슬림 정복 사회들과 몽골의 영역에서는 정복자들이 소수의 귀족 계급이 되어 피정복민들에 에워싸인 채 거주했다. 정복한 땅에 거주하는 군주들은 이윽고 자신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중국 원나라의 몽골족은 서예를 배웠고, 중국의 시를 이해했지만 킵차크 칸국의 몽골족 대부분은 여전히 말안장에서 낮을 보냈고 텐트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 결과 러시아는 여전히 치명적인 기병이었던 몽골족에 장기적으로 예속되었고, 문화적 차용이 일어났을 때에는 몽골족이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정복자인 몽골 영향을 받았다. 정복당하고도 정복당했다고 쓰길 거부한 역사 킵차크 칸국에서 러시아의 지위가 가진 또 다른 영향은 곧바로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정복 전쟁으로 인해 철저하게 황폐화되고, 토벌과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고, 과중한 세금을 납부하면서 혹사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스스로의 지혜를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 이는 침묵의 이데올로기라는 독특한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이미 러시아는 중세의 민족-종교적 접경에 광범하게 퍼진 지적 전통 영역의 일부분이었고, 이 속에서 이교도와의 이로운 협조라는 현실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침해해서는 안 되었다. 키예프 시기의 또 다른 유산 중의 하나는 종주권의 변화를 결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초원 민족들과의 교류를 묘사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러시아가 몽골 제국에 합병된 뒤에 몽골족이 대부분 철수했을 때, 러시아 문인들은 그들의 패배라는 끔찍한 이념적 문제와의 직면을 회피할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사회의 종교적 토대가 위험에 처했을 때 현실을 무시해버리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러시아 작가들은 어떠한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은연중에 부정하는 언어를 쓰면서 그들이 예속되었던 역사를 기록했다. 실제로 극소수의 몽골족만이 러시아 삼림 지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문인들은 러시아가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허구를 계속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두 가지 이유로 러시아 지식인들이 진실을 마주하기를 꺼려했음을 강조했다. 첫째, 침묵의 이데올로기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를 끄는 역사적 현상이고, 그 자체적으로도 연구의 가치가 있다. 둘째, 특히 침묵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기이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는 역사 기록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했다. 이는 러시아와 킵차크 칸국의 역사에서 흥미를 끄는 측면 그 이상이다. 이렇게 독특한 지적인 태도를 분석하여 염두에 두는 것은 사실 몽골 지배 시기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중요한 정보 출처로 남아 있는 중세 러시아 문헌들을 의미 있게 읽어내기 위한 절대적인 필수 조건이다. 몽골은 러시아에 문화적, 경제적 침체를 가져오지 않았다 역사적 기록의 성격과 관련된 상황들과 몇 세기 동안 지속된 선입견들은 많은 역사가가 몽골 시기에 러시아 사회가 생기를 잃은 상태에 놓이고 혹은 문화적, 경제적 침체에 빠졌다고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적 풍토는 거의 전반적으로 러시아 중심의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기만적인 증거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특히 공헌하고 있다. 킵차크 칸국의 일부분으로서 러시아의 존재에 대한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이는 중세 러시아 지식인들이 기독교 이데올로기?혹독한 억압과 격렬한 저항이라고 하는 단순한 관점?와 조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문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가들이 거의 러시아의 동기와 능력의 관점으로만 몽골 시기의 사건들을 해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접근은 킵차크 칸국의 다양한 세력과 동기들을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킵차크 칸국 관료제의 발전, 대외 정책 그리고 내부 정치는 모두 러시아에 엄청나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 시대를 바라보는 분명한 관점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와 몽골의 혼인, 공동전투 참전 등 교류 상황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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