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 여자가 없는 건 기분 탓인가요?
삐딱한 시선, 불온한 질문, 유쾌한 답변
최근 몇 년, 특히 지난 2년 동안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가장 첨예한 화두였다. 여성 혐오, 강간 문화,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의 용어가 언론을 포함한 공적 영역부터 개인적인 대화까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크고 작은 논쟁이 일었다. 여성들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도 했고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통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공감과 위로를 얻기도, 때로는 욕설과 폭력적 언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을 낳기도 했다. 이제껏 수없이 축적된 불편을, 강요당해온 침묵을, ‘여자임’을 문제 삼는 사회를 알아채버린 여자들의 투쟁이었다. 한편으로 점차 피로감이 쌓여갔다. 사소한 농담마저 여성 혐오에 찌든 유구한 역사의 남성 중심 사회는 여전히 너무나 거대한 벽이었고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하는 슬픈 정체성이 되었다. 프로 불편러, 진지충, 피곤한 여자들, 무서운 여자들이라는 딱지는 그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여자라는 문제’를 알아버린 이상 여성들은 결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싸움은 길고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지친 여성들을 위로한 것은 웃음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이딴 걸로 시위를 해야 한다니 믿을 수가 없네I can’t believe I still have to protest this shit!” 여성 인권 행진에 나온 백발 할머니의 피켓 사진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미소 짓고 힘을 얻었다. 웃음은 힘이 세다. 때로는 진지한 담론보다 유머와 농담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젠 커크만, 앨리 웡, 일라이자 슐레싱어 등 여성 코미디언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에서 터져 나온 주옥같은 어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여자들을 밤새도록 이불 속에서 킥킥거리게 했다. 여성 혐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무지, 레즈비언과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과 폭력… 주제도 다양했다. 이들의 ‘재미있고 웃긴’ 페미니즘은 투쟁으로 지친 여성들에게는 카타르시스와 격려를 선사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을 어려워하는 초보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친근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이런 흐름에서 반가운 책이 출간되었다. 《여자라는 문제》는 페미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재키 플레밍이 여성을 철저히 배제해온 남성 중심의 역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고 지금까지의 주류 역사와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유쾌한 페미니즘 그림책이다. ‘왜 역사책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17~20세기에 평범한 사람들부터 소위 천재라 불린 당대의 과학자, 사상가, 예술가, 비평가들까지 사회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여자를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 여자들을 가정에 가두고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써왔는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적 여자들’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는지를 100여 컷의 익살맞은 그림과 함께 능청스러운 듯 날카로운 고도의 유머로 풀어나간다. 당시에는 합당하고 논리 정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한 그림과 함께 보고 있노라면 묘한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역사책에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에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이 말하길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
여성 혐오라는 오래된 미래
우리는 공식적인 주제에 대해 지금껏 대체로 어떤 쪽이 목소리를 냈는지 알고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누가 대학에 들어가고, 책을 쓰고, 공직에 오르고, 군대를 지휘하고, 판사와 검사와 의사가 되고, 중대사를 결정하고, 국가를 운영했는지 안다. 그러는 동안 그 맞은편에 있는 인류의 절반은 배제당하고 외면당했다. 2016년, 남성이 여성의 발언권을 가로채고 자연스레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신조어 ‘맨스플레인man+explain’이 그토록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여자들의 역사는 지워진 역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구인의 절반이나 되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무시당할 수 있었는지가 놀라울 따름인데, 이 책을 따라 역사적으로 남성들이 자신의 발언권과 기록하고 기록될 권리를 독점하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기술을 사용했는지를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동시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유명 배우가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분해 자신이 정한 ‘진정한 페미니스트’ 기준에서 탈락한 여성들에게는 ‘메갈리아’ 혹은 ‘폭도’라 낙인찍고, 국가 공직자가 많은 기자들 앞에서 “여자는 열등하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현재 우리 사회는, 감히 자신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소리 내 말하는 여성들을 ‘타락한 여자’라 낙인찍고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했던 수백 년 전 과거에서 얼마나 진보했는가?
남자 천재들이 세계를 만드는 동안
여자들은 뭘 했죠?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광고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다. 카메라는 여자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발명가의 이름을 대보라고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답변이 쏟아진다. 토머스 에디슨, 벤저민 프랭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앨버트 아인슈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그런 다음에는 그 여자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여성’ 발명가들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질문한다. 여자아이들은 머뭇거리며 누구의 이름도 대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전환. 타비타 바비트가 만든 원형 톱, 마르타 코스튼이 만든 신호탄, 마리아 비슬리가 만든 구명 뗏목, 페트리샤 베스가 고안한 레이저 백내장 수술법, 사라 마더가 만든 수중 망원경, 마리아 페레이라가 만든 심장 수술 접합제, 거트루트 벨 앨리온이 만든 백혈병과 HIV, 말라리아 약,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만든 첫 번 째 컴퓨터 알고리즘… 수많은 여성 발명가들의 이름을 듣고 놀란 여자아이들에게 광고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는 무엇을 만들 거야What are you going to make?’ 대체 이 많은 여성들의 이름은 왜 어디에도 적히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그 이름들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까?
이런 문제의식은 저자 재키 플레밍이 《여자라는 문제》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플레밍은 이렇게 지워지고 사라진 여성들을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여자들’이라 표현했다. 남자들만 가득한 역사책과 위인전집은 ‘여자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사람들의 무의식에 주입시킨다. 그러면 다음 세대는 성별을 막론하고 이것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그런 것은 여자답지 않다’고, ‘여자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다양한 분야의 여성 롤 모델 부재는 곧 여성의 선택권 박탈로 이어지며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고 남성 중심 사회는 유지된다. 이것이 ‘의도’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힌 여자들
여자들은 더 많이 말하고, 말해져야 한다
그렇기에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여성들을 끄집어내는 일이, 그 여성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기 위해 남자들이 어떤 일들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는지를 지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플레밍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여자를 가정이란 영역에 가두어 그들의 역할을 지우고, 그들의 업적을 가치 절하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남성은 중요한 일을 맡는다’는 명제를 강화하기 위해 목소리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얼마나 우아하면서도 교묘한 술수를 부려왔는가.
사람들은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알고 있지만 그가 여성의 생물학적 열등함을 강변한 지독한 성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천부 인권’을 주창한 장 자크 루소가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존재로 여자에게는 인권이 없으며 교육시킬 가치도 없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