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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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경제민주화가 1987년 개정된 헌법(제119조 제2항)에 명시된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가 구현된 현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계층간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됐다. 1987년 체제 이후 30년 동안 ‘정치민주화’는 상당히 진전된 반면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만 규정돼 있으면 뭐하겠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말 속담처럼 경제민주화도 우리 사회가 의지를 갖고 실천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하다. 1987년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개헌 당시나 2017년 현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의 반발은 조직적이고 정략적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실상은 경제민주화가 되지 않아 경제가 어려운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이들의 논리에 젖어들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절절한 심정으로 이 책을 다시 고쳐 썼다. 경제민주화란 구슬을 제대로 꿰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보하는 소중한 보배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경제민주화는 결코 개별 거대경제세력(필자는 재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룹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경제·사회적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작동해야 할 민주주의 질서가 위협받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바로 경제민주화다. 독일 유학 당시 국가의 건국부터 정치, 경제 발전 과정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독일을 보면서 한국이 발전하는 과정에 어떤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뒤따를 것인지 고민했다. 나름의 예방책을 만들어 한국에 돌아가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영국, 미국, 독일 등 성공한 나라들을 보라. 이들 국가가 정치발전과 함께 경제적 번영을 이룬 바탕에는 경제 질서를 바로잡는 사전적인 조치가 전제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은 입헌정치의 시발점인 대헌장(Magna Carta) 이래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의 선거권 획득을 위한 차티스트(Chartist) 운동에 이르기까지 ‘피를 부르는 혁명’ 없이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정착시킴으로써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졌다. 미국의 건국정신은 자유주의였다. 정부가 개인의 경제활동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독점기업의 폐해가 심각하자 19세기 말 독점금지법을 제정했고, 20세기 초 US스틸 등 거대 독점기업을 해체시키는 등 이른바 반기업적 조치를 과감히 실행했다. 이어 누진소득세를 도입하는 등 일련의 경제민주화 조치를 취해 사회개혁의 기초를 다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어떻게 부활했을까?초대 부총리와 2대 총리를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시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택하면서도 정부 역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심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에 개입하도록 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와 다른 지점이다. 독일 경제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이끌고, 수출의 70%를 담당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경제민주화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소득격차로, 소득격차가 다시 계층격차로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경제활동하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개념이자 일상에서 통용되는 원리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아직도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재계는 경제민주화란 표현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경제합리화’나 ‘경제선진화’로 용어를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해괴한 논리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구성원의 갈등을 줄여나가면서 안정적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불가결한 핵심 개념이다. 다른 나라의 전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정답’을 알면서도 이를 실행할 용기가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의 해인 2017년 시대정신은 단언컨대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주도했다면 지금은 국민이 경제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수저계급론’으로 계층격차를 자조하는 국민들이, 연인원 1,500만명이 운집한 광장의 촛불 민심이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소환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초래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근원도 따지고 보면 경제민주화에 역행한 결과다. 정치권이 한낱 선거구호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친다면 결국 국민이 직접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고자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고, 기성 정치권이 설 공간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말부터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키워드로 경제민주화가 등장했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핵심 공약으로 채택돼 당시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 같은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30년 전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명문화하는 데 일조하고 18대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에 관여한 당사자로서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경제민주화는 필자 평생의 소임이었다. 1970년 이후 ‘경제민주화’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면서 사회 안정을 함께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필자는 박정희 정권에서 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당시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내각의 반대가 거셌지만 ‘근로자가 아프면 일을 못 하고, 소득이 줄어들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고 설득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기업 감세 정책을 반대했고, 헌법 개정안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정치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 이후 경제세력과 정치세력간에 힘의 역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7년 이전 권위주의 대통령들이 재벌을 만들었다면, 정치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경제세력에 압도당하면서 경제민주화는 계속 좌절됐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재벌들이 3개 주력 업종만 하도록 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서둘러 수습하기 위해 대기업에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했고, 결국 대기업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쳤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경제민주화 의지를 보이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걸고 당선됐지만 1년도 안 되어 경제민주화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4·13총선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지만, 실천할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 재임기간 경제민주화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려면 대통령의 정확한 상황 인식과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구나 이제는 선거 구호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쳐서는 결코 안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사회 구조의 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3년 연속 2%대의 저성장을 기록하게 된 우리 경제는 경제민주화라는 장치 없이 재도약 자체가 어렵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는데 한국 외교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 속에서 한국은 앞으로 5년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든다. 다음 대통령이 이런 경제 상황을 인식하지 못 하면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20년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다. 중산층 이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