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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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은 결정됐지만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문제적 개념 “태아 생명권”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비합리를 추적하다 오월의봄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문고 시리즈 ‘오봄문고’의 두 번째 책. 지난 2019년 4월 11일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확정된 날로 기억된다. 이는 1953년 9월 형법에서 낙태죄가 제정된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내려진 위헌 판결이었으며,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오랫동안 외쳐온 여성운동 진영의 성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헌 판결 이후 막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위헌 판결과 동시에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쟁은 공론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새로운 입법안을 제시해야 하는 국회는 판결 이후 1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체 입법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이 책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의 문제를 토론하고 논의해야 했던 지난 1년 반, 오로지 침묵만이 감돌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지적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낙태죄 위헌의 최종 결정 유형인 헌법불합치의견의 심각한 논리적 모순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헌법불합치의견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여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 개념을 끝내 유지함으로써 적지 않은 모순과 비합리를 만들어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오히려 임신중단에 관한 토론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합리적 논쟁의 장을 구성하는 규칙을 마련하고자 한다. “생명”과 “생명권”조차 구분하지 않은 헌법재판소 판결 “임신중단에 관한 논쟁에서 결정적인 것은 태아의 생명이 아니라, 생명권이라는 문제다.” (17쪽) “법적 인간이 아닌데, 어떻게 생명권을 가질 수 있는가?” (18쪽)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우선 “생명”과 “생명권”부터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 이 둘의 구분이야말로 임신중단에 관한 논쟁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곧 “태아는 인간인가?”라는 질문과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을 요구한다. 놀랍게도 2019년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전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 질문을 올바르게 제기하기 위해서는 “인간 개념”부터 정의해야 한다. “인간”은 다양한 학문 영역 혹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인간”을 각기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낙태죄와 임신중단을 둘러싼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개념의) 이런 다양성이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법적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임신중단을 둘러싼 혼란 대부분은 법적 인간과 생물학적 인간, 혹은 법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을 혼동하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존재가 법적 인간이 될 수 있느냐다. 그 답은 분명하다. “자신의 지성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유롭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만이” 온전한 의미에서 법적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며 나아가 법적 권리의 주체로 정의될 수 있다. 근대 정치체제와 법체계가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의 민법·형법 역시 마찬가지로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르면, 이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명확해진다. 적어도 “법적 인간”의 정의에 기초한다면, (어떤 존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생명권, 즉 권리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동물과 식물이 살아 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자신만의 도덕 체계를 수립해 특정 동물/식물 종의 생명권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법이 그런 생명권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주장하려면, 먼저 태아가 법적 인간인지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2019년 판결의 최종 결정 유형인 헌법불합치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태아가 인간이냐는 질문에는 분명히 답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모순적으로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입장을 암시하기도 했다. 헌법불합치의견이 야기한 모든 논리적 모순은 “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제대로 논증하지 않은 채, 태아도 생명권의 주체라는 결론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발생한 것이다”. 사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발상은 법 외부의 도덕적 영역들, 이를테면 전통적 믿음이나 종교적 신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아 생명권은 “태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려 하기보다는 “인간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림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태아 생명권 개념은 그 자체로 가부장주의와 긴밀히 얽혀 있다. 이런 가부장주의에 맞서는 싸움은 단지 페미니즘만의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어떻든,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태아를 비인간으로 규정한 현행 법질서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비합리적 태도를 배제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헌법불합치 의견이 포기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 개념의 모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을 결정했지만, 임신중단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9쪽) “헌법불합치의견은 엄밀한 법적 논증을 한 것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고, 그 결과 태아의 생명권은 법적 개념이 아니라, 아무 데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정치언어가 되어버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낙태죄 폐지를 지지해온 시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임신중단 반대 진영에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꼴이 되어버렸다.” (41쪽) 헌법불합치의견은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적 모순들을 범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낙태죄 위헌의 또 다른 결정 유형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19년 당시 재판관들 사이에서 헌법불합치의견 다음으로 많은 득표수를 얻은 단순위헌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생명”과 “생명권”을 구별함으로써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의견을 결과적으로 배제했다”. 임신중단에 관한 표준 논변을 제공하는 미국 텍사스 주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생명”과 “생명권”을 명확히 구별했다는 점에서 좀 더 참고할 만한 판례다. 이 판결은 경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필요”(태아 생명 보호를 일종의 공익으로 보는 견지)를 인정했지만, “법이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완전한 의미의 인격으로 인정한 적은 결코 없다”며 근본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단순위헌의견 혹은 로 대 웨이드 판결과 달리 헌법불합치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문제는 이런 판단에 대한 부연 설명에서 시작된다.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고 주장하면서도,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곧 태아가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태아가 명백히 인간이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태아는 인간이 아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떻게 권리, 그것도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태아 생명권 개념의 모순은 점점 더 심화해 “결정가능기간”(임신한 여성이 임신중단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간)과 관련한 판단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헌법불합치의견은 결정가능기간을 22주 전으로 설정하며, 22주부터는 음신중단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때가 지나면 태아가 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