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이 품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리즈, 복복서가 '지식산문 O'
복복서가 '지식산문 O'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사고를 촉발하는 책들을 선별해 국내 독자에게 선보이는 시리즈다. 사물에 관한 깊이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문 에세이로, 독자는 이 시리즈를 통해 늘 곁에 있는 물건들,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탐험하며 교양을 쌓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모양과 형태가 다양한 사물만큼이나 자유로운 구성과 형식으로 쓰였으며, 특정 사물에 대한 작가 저마다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다.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이 시리즈를 "짧고 아름다운 책들"로, "예술가·학자·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명확한 문체, 상상력, 간결함을 중시한다"고 소개한다.
간결함. 아름다움. 상상력.
독자들이 이 작은 책들을 펼쳤을 때 지적이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하게 둔 가치들이다. 그런 목표 아래에서 탄생한 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은 '퍼스널 스테레오'다. 개인이 혼자서 향유하는 음향 기기.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MP3? 아이팟? 스마트폰? 이 책의 주인공은 퍼스널 스테레오의 원조인 워크맨이다. 투입구에 카세트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이어폰을 통해 지글지글 카세트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들린다. 워크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이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이 책은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어떤 기술을 상상하고 구현하려 한 모험가들의 이야기이면서, 기술 발전에 따라 사랑했던 것들이 어느새 뒤로 밀려나는 것을 지켜보는 아련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 하고 새롭게 보게 되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유아차, 인형, 먼지, 쇼핑몰 등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작가가 선택한, 아니 작가를 선택한 사물이 무대에 앉아 마치 감독이자 주연배우처럼 책의 장르와 연구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다. 그 결과 독자들은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지식산문 O'의 두번째 책은 『퍼스널 스테레오』다. 1979년 소니 워크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경험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워크맨은 '이기적인 세대'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지며 반사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워크맨이 폐허가 된 전후의 도쿄에서 탄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고독한 행복의 상징이 되고, 더 나아가 MP3와 아이팟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쓸모없게 되고, 역사의 뒤편에서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된 모든 과정을 추적한다.
워크맨에 담긴 한 시대의 기억을 열다
2009년 BBC 〈뉴스매거진〉은 13세 소년에게 워크맨을 잠시 사용해보고 소감을 들려달라는 재미난 요청을 했다. 워크맨 출시 30주년에 맞춘 기획이었다. 워크맨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소년은 아마도 이 물건을 전설로나 접했으리라.
"아빠가 크다고 말했지만 그렇게까지 클 줄 몰랐어요." _13쪽
소년은 워크맨이 너무 크고 번거롭고 미심쩍다고 생각했지만, 30년 전 이 물건은 혁신적인 기술의 표본이자 일본 전자회사 소니를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린 제품이었다. 전후 도쿄의 스타트업 기업이었던 소니는 워크맨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도 있다. 소니의 창립자 아키오 모리타와 마사루 이부카 외에, 워크맨의 또다른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다. 간발의 차로 '퍼스널 스테레오'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놓친 불운의 남자, 바로 안드레아스 파벨이다.
1979년 밀라노에 있던 파벨은 아시아에 다녀온 브라질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여행 중에 헤드폰을 착용한 사람을 보았다. "당신이 내게 항상 설명하는 그 스테레오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_68쪽
저자 리베카 터허스더브로는 70대에 접어든 파벨과 긴 대화를 나누며, 그가 어떻게 퍼스널 스테레오를 개발했는지, 어떻게 소니에 대항했는지 듣는다. 파벨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감동을 줬어요. 실제로 우리 삶에 마법을 불어넣었죠."(75쪽) 왜 아니겠는가? 퍼스널 스테레오는 사람들에게 그저 효율성과 편리함만을 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워크맨을 구입한 뒤 한 달 동안 헤드폰을 벗지 못했다고 고백한 소설가 윌리엄 깁슨처럼, 나만을 감싸는 소리의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그것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사람들은 업무, 산책, 공부, 여행 등 모든 일을 워크맨과 함께했다.
"사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워크맨이 아니다.
이후 등장한 기술에는 없었던 바로 그것, 즉 자유로움이다."
하지만 한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사로잡았던 다른 기술들처럼, 워크맨도 시간이 지나며 결국 새로운 기기에 밀려났다. 사람들은 워크맨을 잊고 작은 사이즈에 수천 곡의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아이팟과 스마트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하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스마트 기기가 내 손안에 있는 지금, 그 투박한 기계가 가끔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딱 한 가지 기능에만 충실한, 그 우직한 아날로그 기기들. 이 책은 지나간 기술에 깃든 사연과 추억, 그리고 특유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기술 변화 속에서 왜 이토록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