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단 하나의 여자 생태 보고서! 취미가 인생을 바꾼 여자들의 이야기 취미로 올인한,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어버린 여자들의 흥미진진한 삶을 다큐멘터리 전문PD가 솜씨있게 다룬 책이 나왔다. 전작 <남자의 취미>에 이어 상대를 한꺼풀 벗기듯 꼼꼼하고 깊이 있는 취재는 여전하다. 취미를 통해 ‘사는 재미’를 찾아버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9명이 등장하는 이 책에서 독자는 민망하지만 살아온 삶의 트랙을 하루빨리 수정할 생각에 마음이 바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책속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심심하고 따분한 세상을 너무나 재미있게 만들 독창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아이템 보따리를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작 책 한 권으로 그녀들의 용기와 결단의 과정을 지켜보고, 지혜를 산다는 것이 새삼 고마울 정도다. <여자의 취미>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울해서 못살겠다, 심심해서 못살겠다는 사람은 당장 취미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들 퇴근도 안하고 사무실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일만 하는 어른들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다. 세상의 엄마들은 학원 갔다 오는 아이들을 픽업하려고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잠도 못자고 학원 앞에 도열한다.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인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은 “인간은 하루 4시간만 밥벌이를 위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무언가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하루 8시간은 커녕 야근과 주말 특근까지 전쟁처럼 치러내야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러셀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러셀의 말에 따르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윤리’는 족쇄를 찬 노예의 것이지, 문명화된 사회를 사는 자유인의 것이 아니다. 진정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여가’이며 그 여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유인이냐 아니냐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가를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는 어떤 취미를 갖느냐는 문제와 동일하다. 취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입하여 중독되는 행위다. 취미에 중독되는 것을 마약에 중독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나 정작 들여다보면 차원이 다르다. 마약에 중독되는 것은 쾌락을 지속시키려는 행위인데 어떤 쾌락도 지속 가능할 수는 없으니, 취미에 중독된다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불편과 고통마저 좋아서 감당하는 행위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자의 취미>가 전작인 <남자의 취미>와 다른 것이 있다면 여성이 성과 역할의 장애를 딛고 취미를 추구하는 방법을 꼼꼼히 조명한 것이다. 사실 여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구조와 시간의 장애 속에서 여성은 대체로 취미를 위해 올인할 기회를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욕망을 실천해나간 여자들의 생생한 전투체험이다. 여자들에겐 받아 적으며 실천해야할 무용담이 될 것이고 남자들에겐 훔쳐보고 싶은 여성의 커튼 뒤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전작 <남자의 취미>에 출연한 시인이자 방송인인 김갑수는 모든 취미의 궁극적인 도달점을 ‘악마적 열광’이라 명언했다. 도달하는 정도와 등급이 다를 수 있을 뿐, 최종적으로는 삶의 토대를 파괴하고 선후를 뒤바꾸고 주와 부를 바꾸어 다른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취미의 길’이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악마적으로 열광한들 삶은 전혀 파괴되지 않는다. 내 가족과 직장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성취와 만족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니 자연 일과 가정에도 더 충실해진다. 정확히는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내적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그러므로 그 악마적 열광으로 기존에 힘써 지켜오던 토대를 남김없이 파괴하는 게 낫다. 이제껏의 토대가 일순간 시시하여 도무지 재미없다면, 더 멋진 삶이 있었으면 하고 기도한다면, 내 삶과 존재를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쌓아온 토대쯤이야 망치로 부수어 버리는 게 낫다. 취미의 길에 목적지는 없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과정이 이끄는 삶이 취미가 제시하는 여정이다. 의미가 있어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했기에 의미가 있어진 것이다. 취미, 다른 삶을 살게 한다. “무엇 무엇이 하고 싶어 죽겠어요, 그걸 지금 안하면 죽을 것 같아요..” 곧 당신이 저지르게 될 축복같은 아이템이다. 어른들이 하는 이런 놀이로는 사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좋아서 죽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들의 사망소식이나 부고(訃告)는 동호회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무개가 무엇을 저질렀다. 그것을 하느라 날밤을 새는 중이다, 사연들을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저지르다가 집에서 쫓겨났다거나, 패가망신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연병장의 폭죽처럼 환호가 터진다. 취미의 즐거움은 아이들의 딱지치기나 오자미놀이처럼 감정이 단순하다. 투명한 감정은 전염성도 강하다. 그래서 역병에 걸린 환자들이 서로를 벗삼아 환우촌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혼자 노는데 익숙해지면 의외로 혼자 노는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적 연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희한하게도 결속력이 강하다. 서로의 취미를 이해해주니 화제가 만발이다. 직장인들은 밥그릇 싸움이 심하다. 가진 아이디어를 탈탈 털어서 짜잔 하고 보여줘야 하고, 눈에 띄는 실적도 올려줘야 자리가 온전하다. 취미의 세계엔 그런 게 없다. 이것도 알려주고 저것도 알려주고 서로 못 도와줘서 난리다. 재미있게 놀다가도 혼자 놀 시간이 되거나, 자기에게만 처방된 투약시간이 돌아오면 각자 일사불란하게 해산한다. 그 동네가 ‘취미의 세계’다. 최근 한 온라인 게시판에는 ‘여자를 망하게 하는 취미’라는 제목으로 화장품, 쇼핑, 맛집 탐방, 덕후질 (오타쿠적인 취미활동. 예를 들면 팬클럽 활동) 등 여성들 사이에서 위험도 높은 취미생활을 지목하였다. 얼핏 들으면 덕후질이 아주 위험한 짓일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KDB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가 2015년 1월 50세 이상, 잔고 1천만 원 이상인 고객 9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의미심장했다. 살아오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뭐냐고 물은 질문에 ‘평생 취미를 못 가진 것(18%)’이 1위로 꼽혔다. 더 많은 도전을 못한 것 (15%)과 여행 부족(14%)은 그 뒤를 이었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욕망은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슴의 체온이 식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이미 후회해도 때는 늦을 것이다. 1930년대에 사로잡힌 수집가, 커피에 사로잡힌 영혼, 빅 웨이브에 꽂힌 서퍼, 집 팔고 떠난 세계여행가, 이름보다는 향기로 기억하는 여자, 살사에 인생을 건 여자, 취미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때려 치거나 화려한 직장을 버리고 태어난 바닷가 섬으로 돌아간 사람.... 그런 매혹의 순간들을 접하다 보면 이들을 통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방법쯤은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9명의 이야기가 더 빛난다. 삶을 대하는 주인정신과 과단성, 그리고 취미를 추구하며 인생이 아름다워진 그들의 스토리는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가슴 절절한 아픔으로 우리 모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미래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