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그 사람

지강유철
5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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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 서거 20주기 기념 무선판.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기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평전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우리 사회의 개혁적 지식인들을 꾸준히 인터뷰해 온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에 대한 이전의 연구서나 책들이 간과하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까지 포용력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를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히 그를 다룬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려의 일기, 노트,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 무엇보다 그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공된 장기려'가 아니라 '참장기려'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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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 서거 20주기 기념 무선판 출간 의사로서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다간 장기려 박사의 삶과 신앙을 되새기며 《장기려, 그 사람》 무선판은 2015년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기를 맞이해 책을 더 널리 알리고자 기존 양장본에서 무선 제본으로 바꾸어 가격을 낮춘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기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평전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우리 사회의 개혁적 지식인들(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고종석, 오한숙희, 박홍규 등)을 꾸준히 인터뷰해 온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에 대한 이전의 연구서나 책들이 간과하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고신교단이 선생을 조기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의사들 사이의 폭력사태, 고신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과 교단에 저항했던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을 불러왔던 학내사태, 제도권 교회를 떠나 말년에 몸을 맡겼던 ‘종들의 모임’과 다시 받은 세례, 함석헌과 장기려의 관계, 선생의 신앙과 사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후지이 다케시.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영향, 평양 산정현교회의 분열과 기독교의 변절 등―까지 포용력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를 다룬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려의 일기, 노트,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 무엇보다 그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공된 장기려’가 아니라 ‘참장기려’를 그려내고 있다. 성산 장기려 (聖山 張起呂, 1911.8.14. - 1995.12.25.)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입암동에서 아버지 장운섭, 어머니 최윤경의 차남으로 출생.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 교수,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부산아동병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산대, 가톨릭대, 서울대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고,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에 성공했으며, 부산외과학회를 창립하여 의학 연구에 공적을 남겼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간질 환자들의 모임 ‘장미회’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협동조합 ‘청십자의료보험’ 창설 등은 그가 평생 동안 무엇에 소망을 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증언해 준다. 아내 김봉숙과의 사이에 6남매를 두었으나 6·25전쟁 때 둘째아들만 데리고 월남하게 된 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을 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 국민훈장 무궁화장,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의 슈바이처’, ‘살아 있는 성자’,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등으로 불리며 온전히 이웃을 위해, 이웃과 함께 살아온 그의 묘비에는 “주님만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심층 보기】 중국 당나라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몸[體貌]과 말씨[言辯], 글씨[筆跡], 판단[文理]을 인물 평가 요소로 삼았다. 미국의 주식투자가 워런 버핏은 ‘정직한가’, ‘지적인가’, ‘에너지가 넘치는가’를 사람 평가의 기준으로 본다고 했다. 과거의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도덕적 깨끗함일까, 그가 남긴 업적일까? 성자(聖子) 장기려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할 때 별 문제없이 일생을 살아간 사람들이 꽤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소시민일 경우가 많다. 반면 업적에 우선을 두어 평가하면, 악덕 경영자가 영웅이 될 수 있고 정경유착에 따른 기회주의자가 큰 산과 같은 인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이런 두 기준에서 조화를 이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럴 때 우리는 그를 ‘성인’(聖人) 혹은 ‘성자’(聖子)라 일컫는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인도 사회를 이끌었던 간디, 빈민 봉사에 헌신한 마터 테레사가 그렇다. 동덕여대 총장을 지낸 손봉호 교수는 장기려 선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약점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 본 바도 없고, 나 스스로 발견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사도 바울 같은 분을 ‘성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충분히 장기려 박사도 성자라 부를 수 있겠다”고 증언했다. 인간(人間) 장기려 장기려(張起呂, 1911-1995).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 성공, 북한이 수여한 최초의 박사학위 수여자(1948),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 설립(1968).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 교수,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일일이 이력을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그는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이런 업적으로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 자기를 위해서는 죽어서 묻힐 땅 한 평도 마련하지 않고 무소유로 살다간 사람, 돈이 없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를 위해 피를 뽑아 주고 입원비를 지불할 수 없는 환자가 밤에 몰래 도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인간 장기려’로 기억한다. ‘참’장기려를 찾기 위한 노력 우리 사회의 안티 혹은 마이너로 남아 있는 개혁적 지식인들(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고종석, 오한숙희, 박홍규 등)을 꾸준히 인터뷰해 온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 평전 집필을 제안받고서 장기려가 “우리 시대 성인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지고 깨물어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인지 《장기려, 그 사람》은 다른 전기나 평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만들기’가 없다. 저자는 장기려 선생의 일기,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기고했던 글들, 그리고 장기려 선생에 관한 문헌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려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허상이 아닌 ‘진짜 장기려’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장기려 곁에서 그를 도왔던 사람뿐 아니라 의견을 달리했던 사람까지 취재해 서술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들: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김용준 학술협의회 이사장, 서재관 전 고신대의대 교수, 최중묵 서면 복음외과 원장, 이건오 한동대 선린병원장, 김서민 전 청십자사회복지회 이사, 박영훈 전 고신의료원장, 양덕호 전 청십자병원 원장, 이충한 고신대 복음병원장, 강현진 성형외과 원장, 태영숙 전 고신대 간호대학 학장, 윤여형 전 청십자병원 임상병리과 과장, 정기상 전 고신의료원 행정원장, 박광선 부산 산정현교회 원로목사, 김관선 서초동 산정현교회 목사, 권상석 부산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저자는 이 평전을 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시대와 역사 속에서 장기려를 본다.’ 한 사람의 삶과 사상은 결국 그 시대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므로, 저자는 생애와 사상을 나누지 않고 행간 행간에 녹여 서술했다. ‘둘째, 아무런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장기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전의 연구나 전기에는 빠져 있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 이를 테면 고신교단이 복음병원을 장악하기 위해 선생을 조기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의사들 사이의 폭력사태, 고신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과 교단에 저항했던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을 불러왔던 학내사태, 그리고 제도권 교회를 떠나 말년에 몸을 맡겼던 ‘종들의 모임’과 다시 받은 세례, 함석헌과 장기려의 관계, 선생의 신앙과 사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후지이 다케시?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영향, 평양 산정현교회의 분열과 기독교의 변절 등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셋째, 최대한 쉽게 쓴다.’ 쉽게 쓰려는 노력이 자칫 허구나 사실에 대한 추측으로 비칠 우려가 있어, 인용 출처를 꼼꼼히 밝히는 논문식 글쓰기를 빌려 왔다. 이는 선생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