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여세실의 두 번째 시집 『화살기도』가 민음의 시 334번으로 출간되었다. 2023년 출간된 『휴일에 하는 용서』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202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여세실은, “오랜 훈련을 거친 사람의 내공”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증명하듯 등단 직후부터 ‘젊은 시’의 흐름을 형성하며 폭발적인 시작 활동을 펼쳐 왔다. 첫 시집에서 “그치지 않고 솟아나는 슬픔”을 바라던 젊은 시인은, 이제 ‘몸을 이곳에 있게 하는’ 삶의 기반으로 슬픔을 다루는 슬픔의 숙련공이 되어 있다.
『화살기도』에서 여세실의 언어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트림을 하고, 뛰고, 울고 웃는 몸을 통해 발산된다. 살아 있는 동안은 몸 바깥으로 나갈 수 없듯, “슬픔 밖의 끝장”에도 여전히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시인은 이제 슬픔에 집을 짓고 산다. 계란말이를 정갈히 자르고 너비아니를 구워 꼭꼭 씹어 먹는 생의 감각은, 슬픔으로 이주한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상의 단면을 포착한다.
하여 여세실의 슬픔은 생활 속의 작은 기쁨들로 채워진다. 다음 생으로 건너간 이의 환생을 짐작하고 그들의 습관을 자신의 몸에 장착하면서, 주어진 삶을 한 톨도 남김없이 끝까지 살리라 결심한다. 이 시집은 상실 직후에 휘몰아치는 분노와 우울의 터널을 지나, 슬픔이라는 타향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곳에서는 상처를 지울 필요가 없고, 무감해지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더 왕창 울어야’ 하는 곳에서 슬픔은 명랑하게 빛난다. 길고 긴 애도를 끝맺지 못해 괴롭다면, 어서 극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면, 『화살기도』는 삶의 자리로서의 슬픔을 찾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만물의 기도
가지 말래도 가 보아야 한다
하지 말래도 해 보아야 한다
겪지 말래도
몸소
낱낱이
모조리
쓴 것
쓰인 것
앓아 보아야 한다
―「만종」에서
장시 「만종」은 온갖 것들의 기도가 넘실대는 시편이다. 유실물 보관함, 깨끔발, 양봉꾼, 바보와 얼간이, 불침번, 침묵, 시인, 미궁, 철, 맏이, 틈, 지붕, 흑연, 시, 망태기, 옻……. 여세실의 시는 빳빳하게 다려진 원형(原型)의 언어가 아닌, 모두의 입에 오르내려서 이리저리 뭉그러지고 찌그러진 말의 맛을 전한다. 이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여세실만의 미학이다. 절제된 달변으로는 번역할 수 없는 토속적이고 폭발적인 말들은, 그가 차용하고 있는 화살기도의 형식에 맞춤한다. 보통의 기도가 상실과 결핍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한다면, 여세실의 화살기도-시는 잃은 것을 더 잃기를, 완전히 허물어지기를 바란다. “나의 무너짐이 집이 되게 하세요”라는 기도에는 생의 굴곡을 겸허히 받아들인 자의 지혜와 강단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화살기도』에는 절기가 있고 삶의 생장이 있으며, 그로부터 촉발되는 리듬이 있다. 아래로 꺼질 땐 몸을 더욱 낮추고 가벼이 떠오를 땐 평화를 즐기는 이의 자연스러운 리듬은, 추락이 두려워 뻣뻣하게 굳은 우리의 등을 톡 친다. 빙빙, 입에 착 붙는 말맛으로 독자들을 어르고 달랜다. 계절의 변화가 우리의 소관이 아니듯, 상실과 평안 또한 오고 가도록 내버려두라고. 그 모든 것을 몸소 경험해 보아야만 절기를 알고 철이 들 것이라고.
■ 남은 자의 기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의 얼굴, 노인의 보폭, 나뭇잎의 사그라짐을 본다. 그것들 모두 너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면 걸음이 가뿐해진다. (……) 빙빙 너는 떠나고 너의 습관은 내게 남아 여전히 살아간다. 짝. 짝. 짝. 짝. 짝. 사랑함으로, 더 바짝 껴안음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가벼이 떠나보냄으로,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