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 숨은 상처

리차드 세넷 and other · Soci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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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미권의 진보 좌파 담론을 선도해온 영국의 버소 출판사에서 《계급의 숨은 상처》가 재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이 청년 시절에 동료 조너선 코브와 함께 1972년에 쓴 책이었다. 2023년에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서 세넷은 그 당시 ‘최악의 병폐’가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적는다. 책을 쓸 당시에는 계급 체계와 능력주의가 노동자들의 마음에 남기는 상처가 ‘사회적 지위’의 문제였으나 지금은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세넷은 여든이 넘는 노학자가 되었다. 그는 “계급 전사로서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는다. “계급 의식이 더욱 투철한 사회”가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은 계급의 숨은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되짚어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972년, 세넷과 코브는 능력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는 기준을 폐기하자고 주장했다.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기에 새로운 기준의 확립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들의 바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능력주의는 그때보다 훨씬 거세게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은 계급의 숨은 상처가 수치스러워 여전히 자신을 ‘입증’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계급의 숨은 상처가 심화되어 ‘생존’의 문제가 된 절박한 현실은 인간 존엄성의 새로운 기준을 다시금 고민할 분명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세계적 거장이 된 어느 노학자가 청년 시절 벼려낸 날카로운 호소력으로 가득한 이 책은 인간을 외롭게 만들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엄성의 기준을 질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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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추천의 말 2023년판 서문 오늘날 계급의 숨은 상처 감사의 말 들어가며 서문 - 숨은 상처 1부 상처의 근원 1장 능력의 배지 2장 희생과 배신 3장 상처받은 존엄성의 용도 2부 꿈과 방어 4장 분열된 자아 5장 자유 결론 -흠집 난 인본주의 조너선 코브의 후기 미주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Description

노동 계급 하층민에게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준 고전 ★조문영, 홍기빈 추천 도서★ ‘자율, 자립, 독립’의 이상은 어떻게 노동 계급을 힘없는 개인으로 쪼개고 그들 마음에 뒤틀린 상처를 남기는가? 2023년, 영미권의 진보 좌파 담론을 선도해온 영국의 버소 출판사에서 《계급의 숨은 상처》가 재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이 청년 시절에 동료 조너선 코브와 함께 1972년에 쓴 책이었다. 2023년에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서 세넷은 그 당시 ‘최악의 병폐’가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적는다. 책을 쓸 당시에는 계급 체계와 능력주의가 노동자들의 마음에 남기는 상처가 ‘사회적 지위’의 문제였으나 지금은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세넷은 여든이 넘는 노학자가 되었다. 그는 “계급 전사로서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는다. “계급 의식이 더욱 투철한 사회”가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은 계급의 숨은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되짚어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 계급의 상처는 물질적 보상으로만 치유될 수 있을까? 세넷과 코브는 오늘날까지 진보적 지식인들을 대립하게 하는 하나의 논제를 검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이상주의자들은 노동 계급이 자신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자각하면 반란을 일으킬 거라 기대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경제적 풍요가 노동 계급을 포섭했기에 혁명은 요원해졌다고 회의한다. 그러나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이는 두 주장은 모두 물질적 조건만이 노동 계급의 생각, 행동, 의식, 감정에 유일하게 중요한 변수라고 가정한다. 보수주의자들이 대중을 비난할 때 사용해온 논리에 공모하는 것이다. 세넷과 코브는 ‘노동 계급을 위하는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을 고수한 사르트르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평한다. 이 비판은 지식인에게는 ‘빵’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면서도 노동 계급에게는 ‘빵’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암묵적으로 공감하는 모든 지식인에게로 확장한다. 세넷과 코브는 물질적 조건 너머로 계급 논의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성을 강력히 환기한다. 각자가 현실주의(세넷), 이상주의(코브)의 관점으로 계급 문제를 바라봤다고 고백하는 두 사람은, 좌파 지식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한다. 노동 계급의 의식과 감정, 그 구조적 복잡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보스턴에서 100여 가구를 인터뷰하고 참여 관찰한 세넷과 코브는 노동자들이 물질적 행복에 대한 계산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율과 자립을 상찬하는 미국 문화에서, 노동자들은 늘 심판대 앞에 소환되어 자신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배관공은 이웃에 사는 교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배관공은 이웃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 반해 이웃은 그를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교육받은 사람, 즉 ‘교양’을 갖춘 사람이 내적으로 더 ‘발전한 인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가르는 하나의 ‘자격증’ 역할을 한다. 교사가 배관공보다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배관공은 단체 교섭을 통해 임금을 협상하지만, 교사는 ‘개인’ 자격으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다. 교육이라는 자격증과 자수성가라는 이상의 결합에서, 노동 계급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강요받는다. 이 무력감은 홀로 서지 못한 사람이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물질적 안정’만으로는 노동자의 마음을 온전히 달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계급은 물질적 기준뿐 아니라 정서적 자립과 자신감의 기준으로도 나뉜다. 자신이 과연 타인에게 존중받을 만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노동 계급에게, 능력은 개인의 가치를 입증하는 배지가 되어준다. 능력을 갖추고 입증하기만 하면 한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허들은 많고 문턱은 높다. 자기 자신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노동 계급은 사회가 소수의 특권층과 대다수의 노동자로 양분되어 있다는 현실에 분개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자격을 갖춘 소수와 ‘노동 계급’으로 집단화되는 자신 사이에 놓인 계급의 기준에 무언가 심오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러고는 오롯한 ‘개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에 은밀한 수치심을 느낀다. 이 수치심은 노동자들이 계급 체계를 타파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능력을 쌓는 데 집중하게 한다. 대가족, 노동조합과 같은 전통적 형태의 사회 안전망과 그것이 제공하는 의존은 점차 부끄러운 것이 된다. 계급 체계는 어떻게 노동 계급의 힘과 관심사를 개인적인 것으로 전환하는가? ‘희생’은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하나의 길이다. 이들은 가족이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에 기꺼이 그 희생을 ‘선택’했다는 데서 자신의 존엄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희생은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희생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근거가 되어 갈등을 낳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희생에 감사해하기보다는 부담을 느끼고, 종종 부모의 간섭에 분개한다. 나아가 자식의 성공이라는 부모의 바람이 현실이 될 때조차 부모와는 다른 계급 세계에 안착하는 것을 통해 부모를 ‘배신’한다. 이처럼 희생은 노동 계급이 독자성을 주장하고 자기 능력을 보여주는 최후의 도구였으나 역설적으로 이들의 헌신적 희생은 그들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계급 구조의 권력을 강화한다. 계급 구조를 타파하는 대신 개인적으로 면제될 권리(‘희생’)를 찾을 때, 계급의 숨은 상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권력자의 능력에 대한 신비화는 도달 불가능한 계급적 존엄의 보상 체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설령 모든 노동자가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계층 상승을 도모한다고 해도, 그 노력에 걸맞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능력, 자격, 노력과 상관없이 누군가는 계속 ‘노동 계급’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때 심판을 맡는 건 권력자, 즉 이미 능력과 자격, 노력을 입증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노동 계급은 자신들이 마주한 부조리한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 나름대로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며 분노를 철회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이번에도 계급의 숨은 상처가 문제를 덮는 동시에 그 자신을 더욱 깊게 만든다. 여기서 ‘능력’과 ‘자격’이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무수한 자격증은 실제 업무에는 유용성이 없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노동 계급은 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동 계급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소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 계급은 필요에 맞춰 소비하기보다는 계급의 이상에 맞춰 소비한다. 당장 필요는 없지만 내가 정말로 신분 상승을 이뤄냈을 때 그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사고, 더 비싼 자동차를 구입하는 식이다. 이렇게 노동과 소비의 영역 모두에서, 노동 계급은 자신을 불신하는 마음과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1972년으로부터 도래한, 능력주의의 파국에 대한 오래된 예언 노동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파괴적 계급 체계 앞에서, 노동 계급의 자아는 결국 분열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요구를 배반해야 한다.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사람이 동료 노동자를 해고할 때 인간적인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는 경영진에게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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