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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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이른 존 버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깊어진 눈매만큼이나 진하게 패인 주름과 하얗게 물결치는 머리털이 그간의 세월을 그러안고 있다. 그리곤 이 길에 들어선 이후 무수히 듣고 답했을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나는 왜 쓰는가?"그는 호칭된 작가(writer)보다 떠돌이 이야기꾼(storyteller)이 더 어울렸다.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다양한 각도로 잘라 보여 줬던 그의 이야기는 과격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비판적이었으며 다정하고도 온화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이야기꾼이기 전에 훌륭한 관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영장의 유리 지붕에 떠 있는 새털구름, 플라멩코 무용수의흑백사진은 그에게로 와 새롭게 씌어졌다.그는 노래하는 새들이 그려진 성냥갑을 가지고 있던 폴란드인 친구 자닌과, 사십대까지 절도죄 등으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마이클 콴의 손을 끌어 무대로 안내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이 책의 독자들은 코마키오의 구월 광장에 모여 발을 구르며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아랍어로 노래하는 야스민 함단의 공연에 초대되며 눈.입술.볼.손가락으로 대화하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11편의 짧거나 긴 에세이들에는 그의 드로잉과 메모, 회상은 물론, 알베르 카뮈부터 전 세계적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놓지 않고 소리내어 부르려 했던 이름 없는 대상들은 그가 피워 놓은 모닥불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마른자리와 따뜻한 담요가 있는 그곳에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노래와 춤과 눈물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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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로자를 위한 선물당돌함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깨어 있음에 관하여만남의 장소라 라라라 라라라 라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은빛 조각망각에 저항하는 법

Description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화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중에서 만년에 이른 존 버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깊어진 눈매만큼이나 진하게 패인 주름과 하얗게 물결치는 머리털이 그간의 세월을 그러안고 있다. 그리곤 이 길에 들어선 이후 무수히 듣고 답했을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나는 왜 쓰는가?” 그는 호칭된 작가(writer)보다 떠돌이 이야기꾼(storyteller)이 더 어울렸다.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다양한 각도로 잘라 보여 줬던 그의 이야기는 과격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비판적이었으며 다정하고도 온화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이야기꾼이기 전에 훌륭한 관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영장의 유리 지붕에 떠 있는 새털구름, 플라멩코 무용수의 흑백사진은 그에게로 와 새롭게 씌어졌다. 그는 노래하는 새들이 그려진 성냥갑을 가지고 있던 폴란드인 친구 자닌과, 사십대까지 절도죄 등으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마이클 콴의 손을 끌어 무대로 안내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이 책의 독자들은 코마키오의 구월 광장에 모여 발을 구르며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아랍어로 노래하는 야스민 함단(Yasmine Hamdan)의 공연에 초대되며 눈, 입술, 볼, 손가락으로 대화하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존 버거는 영국 작가 저넷 윈터슨(Jeanette Winterson)의 말대로 “화가가 물감을 다루듯이 생각들을 다루고”, 빈 곳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물들였다. 11편의 짧거나 긴 에세이들에는 그의 드로잉과 메모, 회상은 물론, 알베르 카뮈부터 전 세계적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사려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놓지 않고 소리내어 부르려 했던 이름 없는 대상들은 그가 피워 놓은 모닥불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마른자리와 따뜻한 담요가 있는 그곳에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노래와 춤과 눈물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바람이 짙어진 계절, 그는 한 걸음 앞선 시공간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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