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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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모든 쾌락의 으뜸이다” 비주얼의 시대, 비주얼의 책으로 다시 읽는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그림책에 대한 상식과 편견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완벽하게 새로운 비주얼의 탄생! 두 가지 분명한 목표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는 그림책이다. 그것도 매우 ‘입체적인’ 그림책이다. 물론 이 책에는 그림보다 글자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그림책이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친숙한 텍스트가 새로운 그림을 만나 진정으로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1888년 초판을 출간했을 당시에도 그의 환상동화집에는 삽화가 들어 있었다. 월터 크레인과 제이콤 후드라는, 그 시절 제일 잘나가던 삽화가들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의 독자인 우리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게다가 수많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비주얼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제 웬만한 그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첫 번째 목표 설정: 오스카 와일드의 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비주얼을 21세기적 감각으로 보여주기. 혹자는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동화책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화책이라면 어린애들이 보는 책이라고 만만하게 여길 것이다. 현재 출판 시장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심각하거나 진지하거나 반어적이거나 냉소적인 책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까? 아무튼 ‘우화’ 형식을 통해 ‘교훈’을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든 어린이를 위한 동화든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들은 어떨까? 「행복한 왕자」나 「이기적인 거인」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동화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이 이 동화들을 ‘직접’ 읽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화들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의외로 적다. 동화의 특성상 전체적인 줄거리는 기억하거나 알고 있겠지만, 구체적인 문장들과 그것들이 쓰인 배경을 알고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하여 두 번째 목표 설정: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나 「나이팅게일과 장미」 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엽기적이고 변태적인지, 얼마나 반교훈적인지를 어른의 눈으로 느껴보기. 신선한 번역자를 찾아서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집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뒤, 첫 번째로 한 일은 번역자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이미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은 어린이책 시장에 수십 종이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획 의도에 맞는 번역자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물론 영문학을 전공한 오스카 와일드의 권위자를 번역자로 내세우는 것이 책의 홍보에 유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편의주의적 발상이고, 또 이미 넘쳐나는 엇비슷한 번역서들 사이에서 어떤 차별점을 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영어 번역가 4명에게 동시에 원서를 보내 샘플 번역을 받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번역된 원고의 상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원문 자체가 단순하고 간결한 문체로 쓰인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번역자들에게 이 책이 어린이용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선지 “행복한 왕자가 살았어요” “제비가 말했답니다” 같은 상투적인 동화책의 문체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한 원고만 유독 ‘~했다’체를 쓰고 장식적인 꾸밈이 전혀 없이, 무미건조할 정도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되어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그 원고를 선택했다. 제발 성인용으로 그려주세요! 애초에는 이 책에 실린 9편의 이야기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일러스트레이터 9명이 각기 다른 해석으로 그림을 그려내도록 하자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일러스트들을 뒤지고 또 뒤진 다음,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유명한 작가들도 있었고, 완전 신인도 있었고, 그림을 엄청 많이 그리는 작가들도 있었고, 딱 한 장의 그림만 보고 연락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거절한 작가들은 대부분 스케줄이 너무 밀려 있다거나, 그림 값이 맞지 않는다거나, 혹은 단독 작업이 아니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 참여해야 하는 기획 의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유를 댔다. 결국 우리는 화려하고 쟁쟁한 그림 작가 리스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우리의 기획 의도를 충분히 공감하고 열광하는 ‘도전적인’ 작가들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절대 어린이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전래동화 풍의 그림은 지양해야 하며, 외국 동화책의 아류 같은 분위기도 사절이라고 거듭 밝혔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하나, 글을 읽고 나서, 줄거리를 ‘묘사’하려고 애쓰지 말고, 가장 자기 스타일대로 이야기를 ‘표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림 작가 수를 4명으로 줄인 다음, 그림 초안이 나오면 편집부와 미술부가 함께 둘러앉아 품평회 비슷한 걸 하고, 의견을 내고, 그림 작가에게 수정안을 제시하고, 그런 다음 또 다시 수정된 그림을 받고 또 품평회를 했다. 그림 작가들 역시 번역자 선정 때와 비슷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단번에 OK가 된 그림도 있었지만, 너무 설명적이거나, 동화적이거나, 충분히 도발적이지 못한 그림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외쳤다. 이것은 동화책이 아닙니다. 제발 성인용으로 그려주세요! 2차원 평면에서 달아나는 입체적인 그림책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평범하지 않은 비주얼이다. 그리고 그 비범함을 만들어낸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프린팅하는 제작 기법에 있다. 우리는 단지 4도 인쇄한 올컬러 그림책을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다. 각각의 그림들은 그림의 성격이나 특징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제작 공정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다. 일단 텍스트 페이지보다 훨씬 큰 화면으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모든 그림 페이지는 접어넣기 방식을 취했다. 이것은 그림을 감상하기에 충분치 않은 작은 판형을 극복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숨어 있는 그림을 펼쳐보는 재미를 준다. 한편, 각각의 그림은 4도로 인쇄된 면 위에 다시 홀로그램을 입히거나, 금박이나 은박을 넣기도 하고, UV 코팅이나 형압을 줌으로써 그림의 색감이나 질감, 다양한 뉘앙스를 극대화시켰다. 또 그림의 성격에 따라 인쇄용지를 달리 사용했으며, 심지어 3장의 필름을 겹쳐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든 공정들은 장식적이거나 부가적 요소로 선택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 쓰인 가공 방식은 모두 그림 작가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충분히 논의한 끝에, 그림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 결정했다. 날로 발전하는 인쇄술과 가공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이처럼 ‘그림을 뛰어넘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메가 독침’ 오스카 와일드가 동화를 쓰다?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는 어릴 때부터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나 그림 동화를 읽고, 아일랜드의 민담과 전설을 들으며 자랐다. 그의 부친 윌리엄 와일드 경은 유명한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권위 있는 민속학자로서, 민속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집인 <아일랜드의 유명한 미신들Irish Popular Superstitions>(1852)을 집필했으며, ‘스페란자Speranza’라는 필명으로 활약했던 시인이자 정치 평론가인 어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는 아일랜드 민담을 모티프로 한 애국적인 시들을 발표했다. 이러한 성장 환경 덕분에 그는 일찍부터 문학과 접하고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익혔다. 오스카 와일드는 1884년 더블린 왕실변호사의 딸인 콘스탄스 로이드와 결혼한 뒤, 두 아들 시릴과 비비안을 얻으면서 처음으로 동화를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스카 와일드는 처자를 거느린 가장으로, 직장을 지키며 창작에 몰두하고, 집에서는 두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무척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1860년대부터 1900년까지 영국에서는 동화의 르네상스 시대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