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좋소」보다 눈물겹고
「술꾼 도시 여자들」 만큼 유쾌하다!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작가 첫 소설
통통 튀는 유머로 그리는 스타트업의 웃픈 현실
『젊은 ADHD의 슬픔』을 통해 단번에 주목할 작가로 떠오른 정지음의 첫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언러키 스타트업』은 매일같이 비현실적인 사건사고들이 벌어지는 ‘언러키’한 스타트업에서의 ‘일상’을 26편의 에피소드로 풀어낸 시트콤 소설이다. 브런치와 문학잡지 《릿터》 연재 지면을 통해 선보인 일부 에피소드는 SNS에서 “췌장이 튀어나올 만큼 웃었다.” “글을 보면서 이렇게 웃는 건 처음이다.” “너무 재밌게 읽는데 눈에서 눈물이 난다.” 등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현실과 싱크로율 100퍼센트를 자랑하는 언러키 스타트업의 상황과 오직 유머로 이를 돌파해 내는 다정의 이야기는 쓰라린 공감과 그 이상의 해방감, 멈출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정지음의 통통 튀는 유머로 뻗어 나가는 무섭도록 현실적이고 믿을 수 없게 재미있는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은 나의 회사 생활을 진단해 보는 SGC(시궁창) 테스트로 시작한다.
‘좋좋소’의 이 과장도 안쓰러워할
5인 미만 사업장,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답 없는 회사의 이름을 아는가? 정답은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 영문 표기는 ‘Kuk-je mind beauty contents group’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왜 international이 아니고 kuk-je냐?”고 물을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 된다. 가감 없이 털어놓자면 대표 이름이 박국제라 그렇다.”(「김다정 DJ 주임의 폭발」)
『언러키 스타트업』의 배경은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 ‘스타트업’이란 외피를 썼지만 실은 대표 박국제(a.k.a. 제임스)의 기분과 변덕에 맞춰 온갖 ‘제임스의 뷰티’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좆소’도 되지 못한 5인 미만 사업장이다. 박국제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브레인 뷰티’, ‘마인드 뷰티’를 주창하며 강연을 하고 각종 콘텐츠를 생산한다. 직원들이 보기에 그는 인플루언서와 사이비 강연자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지만, 많은 회사에서 그렇듯 일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박국제를 스승으로 모시는 팬클럽까지 있다.
“야! 김다정이, 아니 DJ, 너 일루 와.
저요? 왜요?
왜는 무슨 왜야? 당장 튀어오지 못해!
목젖에 밤송이를 키우는지 오전부터 말에 가시가 한가득이었다.”(「안 삐졌다고요」)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의 1인 팀 팀장이자 막내이고 ‘김다정 주임’이자 영어 닉네임으로는 ‘DJ’인 다정의 일은 기획, 마케팅, 시장 조사, 고객 문의 응대에 그치지 않는다. 대표의 재미없는 유머와 허풍에 웃어 주기, 썸녀와 잘되기 위해 구매해 놓고 직원 복지라고 생색내는 안마의자를 앞에 두고 감사하다 빈말을 늘어놓기, 생일날 쌈짓돈을 모아 생일파티 해 주기, 문예창작과라는 이유로 사무실에 걸 사훈의 캘리그라피 쓰기를 아우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표와 그의 팬클럽 회원들까지 간수해야 하는 이곳은 ‘좋좋소’의 이 과장마저 안쓰러워할 5인 미만 사업장이다.
일은 견뎌도 상사의 무례한 말과 행동은 참을 수 없는 회사원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거나 아무래도 내 일은 아닌 듯한 잡무를 처리하며 혼란과 분노 사이에 있는 노동자들이라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언러키한 스타트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회사 생활에 대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시궁창 테스트를 개발하고
대표의 고함으로 힙합을 만들며
웃음으로 돌파하는 험난한 회사 생활
험난한 회사 생활을 견디는 다정의 태도는 시작도 웃음 끝도 웃음이다. 자조에서 시작해 풍자와 해학을 지나 의지로 개척해 나가는 웃음의 길은 소설 곳곳에서 빛난다. 소설의 문을 여는 ‘SGC 테스트(시궁창 테스트)’는 회사 생활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회사에서 나는 어떻게 불리는가?(닉네임, 야 혹은 너, 대표의 기분에 따라 변동.) 회사에서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집에 가고 싶다, 퇴사하고 싶다, 내가 왜 이 돈 받고 이 일을?)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카드값, 재취업에 대한 불안, 청년내일채움공제.)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항들은 눈물과 한숨 없이 따라갈 수 없지만,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통렬한 유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힙합! 힙합을 만들 거야!
힙합을 전혀 모르니 아무렇게나 믿으면 그게 힙합이었다. 나는 무료 음성 편집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박국제의 고약한 목소리를 문장 단위로 쪼개기 시작했다. 내 컴퓨터 속 ‘MC. DJ’ 폴더에는 점점 괴상한 제목의 2, 3초짜리 클립들이 쌓여 갔다.
이_과장_넌줄알았어.mp3
난_어제_깜짝_놀랐어.mp3
일_이따위로_할거야.mp3
니가_조져_이과장.mp3
체계를_팍팍_잡으라고.mp3
들었지_이과장.mp3
너알지_이과장.mp3
빡빡빡빡.mp3
딱딱딱딱.mp3”
(「힙합이 된 ‘이 과장 넌 줄 알았어’」)
「힙합이 된 ‘이 과장 넌 줄 알았어’」는 회사원의 익살이 극에 달한 에피소드다. 업무를 지시해 놓고 늘 그 사실과 내용을 잊어버리는 박국제는 습관처럼 말한다. “내가 언제?” 녹음이라도 하지 그러냐는 대표의 비아냥에 진짜 녹음을 시작한 다정의 핸드폰에는 대표의 고함소리가 담겨 있다. 신입사원의 퇴근 전 보고가 없었다며, 아니 보고를 하긴 했지만 그가 신입사원인 줄은 몰랐다며 “이 과장 넌 줄 알았어”라고 반복해 소리치는 대표의 광기 어린 목소리는 다정의 광기와 만나 ‘뤼 귀아쟝(feat. 넌 줄 알았어)’이라는 제목의 힙합으로 재탄생한다.
유머는 언러키 스타트업의 삼인방, 다정과 지구와 수진이 애달픈 회사 생활을 견디는 유일한 힘이다.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헛개수 마시러 갈 사람”이라는 세 사람만의 암호와 함께 다 같이 밖에 나가 한바탕 수다를 떨고, 누군가 박국제의 표적이 된 날에는 ‘타격의 품앗이’ 체제를 발동한다. 한 사람이 힘을 내지 못해도 업무와 대화에 빈공간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들어 주는 것이다. 서로 위로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험난한 회사 생활을 견뎌 내는 세 사람은 회사에서 피어나는 다정한 우정을 보여 준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여 주는
새로운 형식의 시트콤 소설
다정의 무기인 웃음은 작가 정지음이 세상을 보는 태도이자 쓰는 방식이다. “슬픔으로는 슬픔만을 표현할 수 있지만 웃음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없다”는 그는 웃음 속에 슬픔과 분노, 연민과 애정까지 담아낸다. 웃음으로 무엇이든 보여 주고 무엇이든 웃음으로 그려 내는 정지음은 고도의 유머를 구사하는 특출난 작가다.
시트콤은 작가의 특장과 회사의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내는 형식이다. 배경은 익숙한 사무실이고 등장인물은 다정과 그의 동료들, 박국제뿐이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면면과 사회의 작동을 농축시켜 보여 준다. 언러키 스타트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치 관찰카메라로 보듯 한눈에 들여다보고 있자면, 회사라는 작은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흥미로운 면면들이 떠오른다.
『언러키 스타트업』은 두 권의 에세이를 출간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정지음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명랑하고 유쾌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회사 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촌철살인의 유머와 결합해 빼어난 서사를 만들어 낸다. 『언러키 스타트업』은 정지음 작가의 유머와 독특한 문체에 매료된 독자들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