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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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흔아홉인 레아는 스물다섯 셰리를 사랑한다. 얼마 후면 결혼할 남자인 그를. 여자의 애칭은 누누(유모)이고, 남자의 애칭은 셰리(소중한 아이)다. 누누인 레아는 쉰 살을 코앞에 둔 사교계 여인이고, 그녀보다 반세기 어린 셰리는 스물다섯 살 청년이다. 레아는 같은 사교계 여인인 셰리의 모친과 절친하고, 셰리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다. 6년 전 어느 밤, 레아와 셰리는 단둘이 있게 되고 키스를 한다. 레아는 처음엔 미처 깨닫지 못했고 다음 순간엔 부인하지만 설렘을 느낀다. ‘알고 싶었던 걸 확인한’ 셰리는 확연해진 상호 간의 감정이 두려워 위악을 떤다. 위악에 자극 받고, 방금 깨달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로 한 레아는 다시 키스한다. 셰리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무너진다. 그가 어릴 때 레아를 일컫던 호칭인 ‘누누’가 이제는 ‘그가 쾌락 한가운데서 마치 구조 요청처럼 그녀에게 던지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레아와 셰리의 모친은 셰리를 동년배의 젊은 여성과 결혼시키고 두 사람은 짐짓 가볍게 이별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고통스럽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함께 고통 받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날 자정, 셰리는 불쑥 레아의 방에 들어선다. 콜레트는 빅토르 위고가 이전 시대에 그러했듯이, 자신의 시대와 그 문학을 상징하는 대작가로 여겨진다. 아카데미 공쿠르의 두 번째 여성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에 첫 여성 회장이 되었다. 또한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이기도 했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기자였으며, ‘콜레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하여 인물이 타이틀이 되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포문을 열었다. 다양한 활동 중에도 집필 활동을 쉬지 않아 20편의 장편소설과 5편의 단편집, 30편 이상의 수필과 서간문을 남겼다. 눈을 감았을 땐 프랑스 정부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콜레트 문학은 감각적이고 혁신적인 문체, 대담한 주제, 주체적인 여성상, 복합적인 인물 묘사 등이 특징으로, 우리나라에 보다 잘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시하여 숱한 후대 여성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대 여성문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욕망과 고독을 내포한 사랑, 감각적인 문체, 감정을 자연에 투사하여 풍경과 기후 등으로 내면의 고통을 변주하는 방식(뒤라스),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젊은 여성 주인공, 일견 가볍게 느껴지는 문체로 묘파하는 사랑의 딜레마와 깊은 감정의 통찰, 개인적 행복 추구와 사회 통념 위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유로운 삶의 의지(사강), 성적 자유와 여성의 독립성 주장. 사랑의 권력 관계 탐구(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그러하다. 『셰리』는 이러한 콜레트 문학의 특성이 집결된 콜레트 예술의 정수로 평가된다. 주요 주제는 셰리와 레아의 복합적인 관계를 통한 사랑과 열정 탐구, 그리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 노화가 셰리와의 관계에 미치는 파장을 깨닫는 레아를 통한 노화와 상실, 상실에 대한 수긍, 자유에 대한 갈망, 흐르는 시간과 노스탤지어 등이다. 현대에도 여전한 울림을 주는 보편적 주제들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마지막 장에 있다. 콜레트가 셰리와 레아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마도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한 것이 아닐까. 비단 연인 간의 헤어짐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살면서 소중한 것을 원치 않게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것이 젊음이건, 야망이건, 소중한 사람이건…. 떠나보낸 자리에 남겨진 상실감은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삶이다. 『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나보내 본 적 있는 사람의 가슴에 유리 파편처럼 박혀 있던 기억을 소환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