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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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정서가 6년 전에 자신의 첫 번역서로 고른 책이 <이방인>이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다분히 도발적인 카피를 앞세운 이 책은 번역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합세한 치열한 논쟁에 휘말렸고, 이 논쟁은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 논쟁의 열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논점이 해소되거나 논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진짜 번역은 의역이 아니라 직역이어야 한다”는 번역가 이정서의 주장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방하거나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서는 개정판 서문에서 “멋모르는 가운데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냈던 책이 지금 보니 숱한 오류도 함께 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오류란 기실 “잘못된” 번역이 아니라 “고민이 부족했던” 번역을 말하는 것임을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번역은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되풀이 강조하던 이정서의 기준과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이방인>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탄생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6년 동안 계속되고 되풀이된 논쟁과 이어지는 천착을 통해 이전의 <이방인>보다 한층 명확해지고 부드러워진 새로운 <이방인>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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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개정판을 내며 1부 2부 역자노트 <이방인> 깊이 읽기 역자후기 : 카뮈 죽음의 진실과 번역가의 길 알베르 카뮈 연보

Description

<이방인> 개정판 출간의 의의 6년 만에 다시 선보인 카뮈의 <이방인> 번역가 이정서가 6년 전에 자신의 첫 번역서로 고른 책이 <이방인>이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다분히 도발적인 카피를 앞세운 이 책은 번역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합세한 치열한 논쟁에 휘말렸고, 이 논쟁은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 논쟁의 열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논점이 해소되거나 논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진짜 번역은 의역이 아니라 직역이어야 한다”는 번역가 이정서의 주장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방하거나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논쟁은 사실 6년 전 출간된 <이방인>에서 처음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해묵은 논쟁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6년 전 출간된 이정서의 <이방인>이 큰 관심과 주목을 끈 것은 “실제로” 직역을 통해 기존의 <이방인>과는 다른 <이방인>, 일반 독자들이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이방인>의 또 다른 면모들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인공 뫼르소가 작열하는 햇살 때문에 다분히 충동적이고 우연하게 아랍인 사내를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라고 믿고 있던 기존의 독자들에게 이 부분의 기존 번역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이정서의 <이방인>은 꼼꼼하게 짚어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주인공 뫼르소를 비롯해 <이방인>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이 사실은 카뮈가 창조한 인물이 아니라 번역자들에 의해 추가로 가공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소설 전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주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고, 결국 카뮈가 천착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부조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정서의 <이방인> 새 번역은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6년 만에 다시 새로운 번역본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번역은 직역이어야 하고, 문장의 길이는 물론 구두점까지 원문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그의 번역관이 바뀌거나 6년 전의 번역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일까? 번역은 자기와의 싸움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 이정서는 개정판 서문에서 “멋모르는 가운데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냈던 책이 지금 보니 숱한 오류도 함께 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오류란 기실 “잘못된” 번역이 아니라 “고민이 부족했던” 번역을 말하는 것임을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을 이정서는 6년 전 기존의 번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했다가 이번에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라고 수정했다. 번역자가 생각하는 이전 번역본의 대표적인 “오류”인 셈인데, 이때의 오류란 문장 자체의 의미상 오역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언어관습까지를 고려했을 때의 오류에 가깝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번역자의 지나치게 세심하고 깐깐한 기준에 맞춘 새 번역인 셈이다. “번역은 자기와의 끝없는 싸움”이라고 되풀이 강조하던 이정서의 기준과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이방인>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탄생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6년 동안 계속되고 되풀이된 논쟁과 이어지는 천착을 통해 이전의 <이방인>보다 한층 명확해지고 부드러워진 새로운 <이방인>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를 놓고도 끝없이 고뇌를 되풀이했을 역자의 수고가 행간 곳곳에서 읽힌다. 진짜 카뮈의 <이방인>을 읽을 시간 무성의한 의역을 통해 낯선 시대, 낯선 배경, 낯선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게 될 경우 우리는 당연히 그 소설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는커녕 모순과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카뮈의 <이방인>은 전세계 지식인들이 인정한 명작이자 노벨상이라는 가시적이고 나름대로 객관적인 평가도 이미 오래전에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도 우리 독자들은 여전히 주인공 뫼르소가 사회 부적응자이자 자신의 사형선고에 대해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기묘한 심리의 인간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기존 번역이 그런 뫼르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이는 카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의 지성들이 찬탄해 마지않는다는 <이방인>의 실체는 잃어버린 채, 카피로 포장되고 한두 줄로 요약된 <이방인>에 대한 가치 평가에만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작품을 읽은 뒤 전혀 이런 평가들에 동의를 할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정서의 <이방인> 번역은 그런 면에서 파천황의 의미를 띤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번역을 통해 비로소 뫼르소와 주변 인물들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나고, 죄가 없음에도 단지 사회가 기대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의 운명이야말로 ‘부조리’의 본질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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