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로마가 아닌 볼로냐로 간 기이한 이탈리아 여행자
그가 찾아낸 행복한 도시 볼로냐의 비밀, 모든 것은 맛에서 시작되었다
대다수 여행자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로마-나폴리를 다녀온다. 하지만 책의 서문에서 스스로를 기이한 이탈리아 여행자로 규정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고전적인 이탈리아 여행 루트에서 벗어나 볼로냐를 선택했다. 그가 볼로냐로 간 까닭은 요리학교의 스승과 동료들의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볼로냐에 머물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미식의 수도다운 풍성한 음식의 맛에, 친절한 볼로냐 사람들에게 그리고 볼로냐가 지닌 에너지와 자유로움에 푹 빠져든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 속담처럼 볼로냐는 개방적인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다. 저자는 ‘왜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도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가진 그 의문과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볼로냐에 있을 때는 정작 볼로냐 사람들이 왜 늘 웃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비로소 볼로냐 사람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실마리는 역시 음식이었다. 미식의 수도답게 먹거리가 풍성한 덕분일까? 풍성한 먹거리의 바탕에는 햄, 치즈, 와인, 커피를 싼값에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협동조합 시스템이 있다.
자유도시 볼로냐는 강대국의 거대자본에 대항하는 경제적 자치를 꿈꾸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는 리유니테와 같은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덕분에 볼로냐는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리기도 한다. 볼로냐의 싸고 맛있는 데에는 도시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는 협동조합의 힘이 크다.
어디 그뿐인가. 시민들이 손을 잡고 교황과 황제에 맞서 자유를 얻어냈던 이 도시의 역사는 인류 역사에서 참 특별했다. 시민들이 왕을 쫓아내고 자치도시를 만들었고 도시의 깃발에 ‘자유’라는 단어를 새겨넣었다. 또 학생들은 스스로 대학을 만들었다. 볼로냐 대학에서는 근대 법과 근대 의학 그리고 천문학이 싹텄다. 현대 학문의 기원을 파고들면 많은 부분이 볼로냐의 붉은 벽돌 건물과 회랑에서 튀어나왔다.
작은 도시 볼로냐가 이처럼 특별한 성취를 이룬 것은 역사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미식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게 한 햄, 치즈, 와인, 커피, 붉은색 도시 볼로냐라는 별명을 얻게 한 도시를 뒤덮은 긴 회랑, 현자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한 근대 법과 의학의 성과 등을 하나씩 살펴가면서 저자는 우리를 볼로냐 인문학 기행으로 이끈다. 맛, 향기, 빛깔의 3가지 주제를 저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볼로냐에 깊이 스며든 휴머니즘(인문주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볼로냐는 왕이나 신이 아니라 사람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겼으며 볼로냐 사람들은 그 공동체에서 서로를 믿으며 서로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그런데 저자는 볼로냐처럼 멋진 도시를 소개하는 책이 국내에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 무척 의아했다고 한다. 물론 이탈리아에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처럼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가 워낙 많아서 그렇겠지만, 볼로냐빠인 저자의 입장에는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이 많은 별명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볼로냐에 대한 국내 여행자들의 관심을 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