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 아이를 낳았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넘나든 일 년간의 임신 모험기
“딸의 첫 울음소리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법 바깥에 있는 엄마들이다.”
2014년 6월, 저자 로진느는 첫째 딸 쥘리에트를 출산하면서 동성 배우자 나탈리와 비로소 두 명의 엄마가 되었다. 『부모 말고 모모』는 동성부부인 로진느와 나탈리가 부모가 아닌 모모母母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법률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에세이 또한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동성부부가 임신하기까지’ 프랑스 사회에서 어떤 우여곡절들을 겪으며 국경을 건너야만 하는지, ‘출산 이후’에 임신하지 않은 배우자는 어떻게 자식의 법적인 엄마가 되는지 낱낱이 기록해두었다. 로진느는 레즈비언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아이를 갖는 행복은 정당화를 거쳐야만 하는 일임을 뼈아프게 경험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말한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오직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변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저자의 용기 있는 고백 때문이었을까, 『Mamans hors-la-loi』(『부모 말고 모모』 프랑스 원서)의 출간 이후 프랑스에서는 2021년 9월 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커플, 비혼 여성을 비롯한 모든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동성부부 당사자로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은 저자의 기록은 2007년부터 2020년까지 동성결혼과 보조생식술 대상 확대에 대한 프랑스 및 유럽의 전반적인 분위기, 법률 개정과 관련된 진행 과정들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목소리가 된다.
이 책이 출간되는 2023년의 한국은 어떨까? 지난 5월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국회 발의가 이루어졌으며, 2007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매 회기마다 논의되고 있지만 법안이 통과된 적은 없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개인의 인생이 사회와 얼마만큼 밀접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받고 있는지, 법률 개정의 지연이 개개인의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한국 사회에서도 로진느의 진솔하면서도 날카로운 고백이 공공연하고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 말고 모모』는 앞으로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어야 한국에 사는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빨리빨리의 나라, 흐름을 타면 해내는 나라,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 번 바뀐 일에는 금방 적응하는 나라인 한국에서 레즈비언 부부의 아이에 대한 미래 역시 다르게 펼쳐질 거라 믿는다. 그 미래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올 수 있도록 나는 이 책이 널리, 또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_김규진(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작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프랑스 형법이 동성부모의 권리에는 지지부진한 모순에 대하여
이 책은 저자 로진느와 동성 배우자 나탈리가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각별하게 결혼을 해, 남다르게 임신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진느가 글을 쓸 당시인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프랑스에서는 동성부부가 보조생식술을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저자는 임신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먼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2007년의 이야기부터 첫째 딸 쥘리에트를 낳아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또다시 스페인으로 향해 보조생식술을 시도하는 2018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약 일 년간의 생생한 기록이 시간순으로 교차되어 흘러간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을 허용한 토비라 법의 제정 10주년을 맞아 큰 행사를 열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하는 나라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에 마음을 보탰다. 그런데 책에는 토비라 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3년 초까지 프랑스에서 동성결혼과 보조생식술 대상 확대를 반대하는 ‘모두를 위한 시위’가 끊이지 않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의 찬성 속에서 제정된 법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축하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인권을 ‘그다음’ 순위로 놓는 상황과 마주한다. 인권을 위한 가장 좋은 때란 따로 있는 걸까?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소수자 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다. 인권을 회복하고 존중하기 위해 좋은 때란, 언제나 바로 지금이기에.
법적 엄마가 되려면, 자기 자식을 입양해야 한다고요?
“에이, 그건 차별이죠!”
로진느와 나탈리는 각자의 가족들에게 연인 관계임을 밝히고, 가족들 안에서도 그 관계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 노력은 두 사람이 이후 쥘리에트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아이가 엄마들의 원가족과도 편안하게 연결되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찾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로진느는 출산으로 자연히 쥘리에트의 법적 엄마가 되었지만, 출산을 하지 않은 나탈리는 자기 자식을 입양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나탈리가 딸의 법적 엄마가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나고 17개월이 지나서였다. 그전까지 나탈리는 배우자의 임신 기간에도,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도 엄마가 아닌 ‘허가받은 제삼자’로 불리며, 아이와 관련한 동행에 제한을 받았다. 동성부모라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런 일화들에 두 사람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이내 앞으로 나아갔다. 쥘리에트의 유치원 입학식에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알렸고, 이웃에 사는 이슬람 가족에게도 동성부부라는 것을 고백했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과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포용과 사랑으로 이들 가족을 맞이해주는 사람들 또한 만났다.
쥘리에트가 사회에 고립되지 않고,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가게 하기 위한 두 엄마의 노력 덕분일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오히려 ‘엄마인 나탈리는 왜 조금이라도 자신을 배 속에 품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쥘리에트는 ‘아빠 없이 엄마만 둘이 있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따지는 옆집 아이에게 “너희 집엔 아빠, 엄마 그리고 새아빠가 있어. 그건 말이 된다고 생각하잖아?”라고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이 겪은 일상적인 에피소드 외에도 프랑스의 현실을 꼬집는 내용들도 숨김없이 서술한다.
로진느는 다른 동성부부들과 만나 교류하는 모임에서 전혀 정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정액을 집으로 배달시켜, 가내수공업으로 자궁 속에 정자를 주입하는 불법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저자는 아이를 원했을 뿐인 사람들의 도 넘은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보조생식술 대상 확대를 반대하는 이들이 공격할 만한 빌미를 제공하면서까지 내가 이렇게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을 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프랑스가 이 초라한 시술 뒤에 감춰진 고통을 헤아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책이 단지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날까지
프랑스에서는 1982년 동성애 처벌을 폐지하고, 1999년 동성 커플의 결합을 허용하는 시민연대계약PACS이, 2013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토비라 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성 커플의 입양은 실질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하나의 법이 발의 및 제정되고, 실질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책에서도 저자는 “아이를 가지려는 레즈비언 커플이 그 일을 정부의 의지에 맡긴다면, 이미 그들에게는 폐경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웃으며 경고한다.
올해 6월 한국에서는 레즈비언 부부인 김규진 씨의 임신 소식이 한차례 포털 사이트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동성결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