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당분간 이걸 쓰고 다녀. 죽고 싶은 사람처럼 안 보일 거야. 서호준의 시는 문학을 멀리까지 가져가 보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양한 서브텍스트들이 들어오도록 시를 열어 놓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모험의 한 방식일 수 있다. 시가 왜 역사나 지리서, 만화나 게임과 분리되어야 하는가. 시는 어떤 점에서는 게임의 한 부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시의 기본적인 체질을 흔들어 보일 수 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시가 (살아 있는 시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변방적 활력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캐릭터들을 내세우는 것은 장르적 충돌 외에도 시 안에서 일종의 화학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효과적으로 자아를 훼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슷하게 하위문화를 시에 들여왔던 그의 선배 시인들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몇몇 시인들의 시에 도입되었던 만화나 영화 캐릭터들이 자아의 감정이나 특성, 운명을 대변하는 웅변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면 서호준의 캐릭터들은 오히려 자아를 담당하지 않기 위해 복수화되고 이격되어 존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대리물들은 자아와 절연된 듯이 보이며, 따라서 자아는 이들에 어른거리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상황을 냉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분리, 훼절은 당연하게도 그의 서브텍스트 도입을 차별적이고 변화된 지형으로의 이동으로 만들어 준다. 그의 시가 넓고 차갑고 발랄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에는 이와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서브텍스트, 간텍스트들을 들여오지 않고 화자(자아)가 직접 투시하고 맞닥뜨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 세계다. 문학을 모험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 바로 마주 서는 세계다. 시를 관통하려는 그만의 불굴의 자세가 여기에는 숨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문학에의 모험이라는 것도 이러한 유니크한 자세와 일정 부분 연동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괴물 같은 시를 상대하기 어려운 까닭에 침투의 한계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 마치 돌파하고자 하지만 자아가 돌파의 불가능과 모순을 직면하고 마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시의 파괴력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이상 이수명 시인의 해설 중에서) 서호준 시인은 현재 문학 플랫폼 ‘던전’을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 팬클럽>은 서호준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