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어린 시절을 눈부시고 충격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킨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영국 상류층 가정의 빛바랜 도덕관과 관습, 계급 의식, 학대와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절제된 언어와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의 네 번째 이야기 『모유Mother’s Milk』(2006)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유머와 비애, 날카로운 비판, 고통, 기쁨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온갖 감정이 녹아 있는 21세기가 낳은 걸작이다’, ‘신랄한 명문과 짜릿한 재미가 있는 영국 현대소설의 금자탑이다’, ‘인생에 대한 인도적 고찰을 담은 책으로, 영국 소설의 백미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문학사에서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이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영국 소설가’, ‘이 시대 최고의 문장가’, ‘오스카 와일드의 재치, 우드하우스의 명료함, 에벌린 워의 신랄한 풍자가 뭉쳐진 엄청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려 20년에 걸쳐 쓴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주인공 패트릭의 다섯 살 때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극적인 인생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 『괜찮아』는 1960년대 프랑스 남부 멜로즈 일가의 대저택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그려졌는데, 다섯 살 난 패트릭은 이날 아버지 데이비드 멜로즈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나쁜 소식』에서는 어린 시절의 그 불우한 기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스물두 살 패트릭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나쁜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유해를 가지러 간 미국에서 그는 약에 취한 24시간을 보낸다. 세 번째 작품 『일말의 희망』은 서른 살 패트릭이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으며 마침내 구원을 향한 ‘일말의 희망’을 엿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아버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괜찮아』 『나쁜 소식』 『일말의 희망』 세 권으로 ‘패트릭 멜로즈 소설’을 마치려 했다. 하지만 ‘제 자식은 불속에 떨어지는데도 에티오피아의 수많은 고아들을 구제하느라 바쁜 그 원거리 자선가 젤리비 부인 같았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면서 패트릭 멜로즈 소설을 5부작으로 완성했다. 패트릭이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동안 아무런 도움이나 위로도 주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모유』와 『마침내』로 이어진다.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4권 『모유』
★★★ 페미나상 수상 · 맨부커상 최종심 후보작 ★★★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의 네 번째 이야기인 이 책 『모유』에는 3권 『일말의 희망』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40대 패트릭이 등장한다. 그의 어머니 엘리너는 변함없이 가정은 돌보지 않고 자선 활동에만 힘쓰며, 하나뿐인 자식 패트릭에게 가야 마땅한 재산을 엉뚱한 뉴에이지 샤먼에게 준다. 어린 시절 패트릭에게 위로가 되었던 프랑스 남부의 집을 이상한 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엘리너는 뇌졸중으로 거동을 못 하게 되어서도 유산과 관련해 자신의 고집을 꺾을 줄 모르고, 심지어 아들 패트릭에게 안락사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까지 한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신도 아버지 데이비드 같은 사람이 될까 봐,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결국 자신의 고통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게 될까 봐 패트릭은 몹시 두려워한다.
『모유』는 2000년에서 2003년에 이르는 4년 동안 매해 8월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2000년 8월은 패트릭의 다섯 살 난 아들 로버트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다(1권 『괜찮아』에서 어린 패트릭의 나이도 다섯 살이었다). 예민한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정확하게 관찰되어 기록됐는데, 동생 토머스의 탄생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2001년 8월은 패트릭의 관점에서 쓰인 ‘패트릭의 이야기’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더 이상 아이처럼 굴면 안 되지만 아직도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패트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8월은 패트릭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메리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메리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엄마의 역할을 해 나가는 동시에 패트릭과 엘리너 사이의 문제를 현명하게 조율해 가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패트릭의 신경질적인 태도에 점점 지쳐가고, 아이들을 돌보는 사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는 데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마지막 2003년 8월은 상속권 박탈로 프랑스의 별장을 잃은 패트릭 가족이 미국으로 가서 휴가를 보내며 방황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모유』는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가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패트릭이 어머니에게서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 동시에 메리라는 엄마를 통해서 두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여 준다. 그렇게 자라나는 작은아들 토머스와 점차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엘리너의 모습을 비교하며 인생의 양끝인 생과 사를 비교하기도 한다. 태어나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던 아이가 걸어 다니고 말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성장해 가는 데 반해, 말을 잃고, 기억도 잃으며 쇠퇴해 가는 모습이 비교된다.
안락사를 원하던 어머니 엘리너는 마지막에 갑자기 마음을 바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여 패트릭은 다시 부모로부터 이어진 고통에 발목을 잡히고, 이야기는 마지막 권 『마침내』로 향한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문체는 여전히 신랄하고 날카로우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고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오히려 고통과 아픔이 더 부각된다. 또한 그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간결하게 서술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 행간을 살피고 이해하게 한다.
이렇게 한 권의 책 안에서 네 명의 시점으로, 유려한 문장으로 쓰인 『모유』는 2006년 맨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다.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로 연결된 이야기이지만, 한 권의 독립된 소설로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상, 페미나상(외국어 부문)을 수상하며 또 한 번 작품성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