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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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알 수 없는 역경의 시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재일 한국인 2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인 강상중은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동안 여러 저작을 통해 자신의 출신으로 인한 좌절과 방황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긴 했으나, 유년기의 가정환경부터 청년기의 혼란과 각성을 거쳐 정치학자이자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지식인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이 책은 ‘미니 자서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상당 분량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 책이 NHK 방송 프로그램을 옮긴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미 10여 년 전 ‘성공 신화’의 하나로 주목받은 인물의 일대기를 일본의 국영 방송에서 새삼스럽게 재조명한 이유를 주목해볼 만하다. 반세기 전 저자가 겪은 정체성의 위기, 계속되는 실패와 출구 없는 방황을 지금의 일본 사회가 비로소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모든 경제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내리막 세상, 심각한 취업난과 증가하는 비정규직 일자리, 세상을 하루아침에 뒤집어놓는 전 세계적 금융 위기나 거대한 자연재해…….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역경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위기에 처한 일본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삶 자체가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던 ‘자이니치’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고, 저자는 자신이 맞닥뜨렸던 역경을 자이니치의 울타리를 넘어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보편적인 고민으로 확장해 ‘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구체적인 하우투how to를 제시하기보다는 ‘인생 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서의 ‘일’ 혹은 ‘직업’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일을 찾기 위해, 지속하기 위해, 혹은 떠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인생’이라는 긴 안목에서 자기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단단한 삶의 철학을 제공할 것이다.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의 표현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평생 직장’에서 일하는 명확한 목표가 사라진 오늘, 우리는 스스로 일의 의미를 묻고 찾고 발견해나가야 한다. 저자는 크게 두 가지로 ‘일’을 정의한다. 첫째,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이니치 커뮤니티를 벗어나 일본 사회에 ‘나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직업을 찾아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강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일하는 것’이 곧 ‘한 사람 몫의 사회인이 된 증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중립적인 뉘앙스의 ‘시고토仕事(일이나 직업)’를 넘어 천직, 사명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한 ‘calling’의 개념을 제안한다. 개인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맺기라는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꼭 기업에 취직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경로로 사회에 참여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넓은 의미의 ‘일하기’를 시작해볼 수 있다. 둘째, 일은 ‘나다움’의 표현이다. 사회에 내가 있을 자리가 마련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있는 모두와 동일하지 않은 나, 자기만의 개성과 장점을 내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나다움의 표현’은 다른 사람들의 승인 혹은 인정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갈등을 겪거나 상처를 입는다. 저자는 ‘나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며, 스스로가 알고 있는 ‘나다움’과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의 ‘그다움’을 모두 살피기를 권한다. ‘이런 일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라며 내가 아는 ‘나다움’만을 고집하다가 자기 자리까지 잃지 말고, ‘그냥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본다면 뜻밖의 영역에서 ‘나다움’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나다움’이나 ‘자아실현’이라는 말에도 너무 짓눌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 즉 향상심向上心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아실현의 압박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기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를 찾을 때 나를 망가뜨리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 오래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생각하고, 널리 보고, 끊임없이 배우라 강상중은 역경의 시대에 일과 마주하는 세 가지 자세를 말한다. “일의 의미를 생각하라, 다양한 관점을 가져라, 인문학에서 배우라.” 이 세 가지를 종합하는 근본적인 가르침은 바로 셋째 ‘인문학에서 배우라’이다. 인문학, 특히 고전과 역사는 긴 시간을 다루기 때문에 ‘이 사회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재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역사적 경험에서 당면한 위기를 돌파해나갈 지혜를 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지금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다음 시기에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등을 판단하는 창조성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은 오랜 시간 ‘삶의 의미’를 탐구해온 분야이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동요하는 우리의 삶과 일에서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비즈니스 퍼슨이 일상에서 인문 지식을 얻기 위한 탄력적인 독서법과 역경의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바탕이 될 다섯 권의 책, 그리고 자기만의 창조성과 추진력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나간 5인의 역사 속 리더를 소개한다. 특히 ‘말린 것’과 ‘날 것’이라는 개념을 통해 고전과 역사 읽기를 강조하는데, ‘말린 것’은 오랜 시간 충분한 검증을 거친 안전하고 영양가도 높은 것(고전과 역사), ‘날 것’은 맛있고 신선하지만 가끔 배탈이 나기도 하는 최신의 것(신서, 일간지, 잡지 등)을 가리킨다. 어떤 영역에서든 ‘말린 것’과 ‘날 것’을 적절히 튜닝해내는 능력, 즉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의 심층을 재빠르게 읽어내고 그것을 자기 안에 비축해둔 말린 지식과 연결 짓는 능력이 필요하다. 쉴 새 없이 맞닥뜨리는 ‘날 것’의 홍수 속에서 내적 균형을 잡아줄 ‘말린 지식’으로서 저자가 권하는 다섯 권의 책과 다섯 명의 인물 이야기는 일 혹은 직업이라는 장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주요 내용 야구 선수를 꿈꾸던 재일 한국인 소년 강상중의 어린 시절 꿈은 뜻밖에도 야구 선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까지는 야구 이외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야구에만 매달렸다. 야구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당시 인기 있었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 하리모토 이사오(한국 이름 장훈)의 활약을 보며 출신과 상관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야구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폐품 회수업을 하던 저자의 부모님 역시 아들이 공부로 출세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으로 야구 선수가 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실력도 담력도 모자랐기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 일을 계기로 자이니치라는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저희 집에서 ‘공부’는 그다지 장려되지 않았습니다. 놀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공부하려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어머니는 얼른 자라며 스탠드를 꺼버리곤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제가 좋은 학교에 진학한다 해도 결국 좋은 회사에 취직하진 못할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공부 따위 안 시키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었겠지요. 어머니의 생각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는 제쳐두고서라도 당신의 아들이 상처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의 자식 생각은 지금 돌이켜봐도 가슴 한 편이 아려옵니다. _ 70쪽 나가노 데쓰오에서 강상중으로 와세다대학에 합격해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상경한 강상중은 화려한 도시, 세련된 친구들, 학생운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