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동일한 신체성을 매개로 한 엄마의 통제욕과 딸의 죄책감 엄마의 딸 지배는 정말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엄마 죽이기’는 왜 어려운 것일까 과도한 기대로 딸을 속박하는 엄마, 남자친구나 진로 선택에 개입하는 엄마……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어째서 딸은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사이토 다마키가 복잡 미묘한 애증의 모녀관계를 분석한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모녀관계, 그 끝없는 애증의 늪에 관한 가이드북』이 출간됐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단순히 ‘착종錯綜’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기괴한 형태를 띨 때가 많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딸이 마치 늪이나 다름없는 관계에 꽁꽁 묶여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12~13쪽 모녀관계는 모자나 부녀 또는 부자관계에 비해 매우 특이하며 일반적으로 복잡할 뿐만 아니라 기이한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자관계는 ‘학대’나 ‘증오’처럼 비교적 단순한 개념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이러한 관계는 각종 이야기 담론에서 ‘아버지 죽이기’로 변주된다. 그러나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일 수 없기에, ‘아버지 죽이기’는 ‘어머니 죽이기’로 대체되지 못한다. 어머니의 존재는 여성인 딸의 내면에 깊이 침잠해 있으므로,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달리 간단히 ‘죽어주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종 임상 사례와 언론 보도 사례, 소녀 만화 등을 소재로 여성 특유의 신체 감각과 모성에 대한 강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고찰하고, ‘어머니 죽이기’의 어려움을 검증한다. ‘남성다움’이란 추상적인 관념으로서 전달이 가능합니다. 반면 ‘여성다움’을 딱 집어 가리키는 관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머니가 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여성다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딸을 자신과 신체적으로 동일화시키려는, 나아가 동일화를 통해 지배하려는 시도에 끝없이 가까워지게 되지요. 211~212쪽 ‘얌전하다’, ‘조신하다’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논리성’, ‘끈기’ 등 남성성을 일컫는 개념과는 달리 신체적인 개념이다. 여자아이 훈육의 목표는 ‘타인의 마음에 드는 신체를 획득하는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무의식중에 딸의 신체를 지배함으로써 딸을 훈육하기 쉽다. 어머니와 딸은 신체적 동일화를 이루며, 때로 어머니는 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지배는 고압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표면상으로는 헌신적인 선의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어머니의 지배에 반항하는 딸들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지배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딸은 자신의 욕망은 포기하고 타자의 욕망(정숙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대상이 되어야 하므로 내부에서 분열이 발생한다. 따라서 어머니의 지배에 저항하든 따르든 딸은 여성 특유의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성의 교육은 애초부터 분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외관=신체라는 공식 속에는 타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존재가 되라는 명령, 나아가 본질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라는 명령이 포함 되어 있지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면 아주 매력적인 외모에 얌전한 성격을 가진,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여성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여성이 느끼는 ‘공허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하면 어떨까요? 213쪽 딸이라면, 엄마라면, 무엇보다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어머니는 가장 먼저 말을 통해 딸을 지배하고 신체적 동일화를 부추깁니다. (…) 딸에게 향하는 말은 사실 어떠한 욕망을 담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 아마 어머니의 신체성은 말의 회로를 통해 딸에게 전달되겠지요. 이는 모든 딸들의 신체에 어머니의 말이 인스톨되어 내장됨을 의미합니다. 상상만으로도 ‘어머니 죽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아무리 어머니를 부정해도 딸들은 이미 주어진 어머니의 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처럼 어려운 관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요? 222쪽 이 책의 종장에 이르러, 저자는 ‘이처럼 어려운 모녀관계에서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해결의 힌트 정도는 제안해볼 수 있다며 1) 자신의 인생 살기 2) 의도적인 거리 두기 3) 제3자의 개입 4) ‘어머니의 말’ 작용 자각하기 5) 젠더 문제 등을 제시한다. 모녀관계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남성은 정말 드물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중 하나인 그들이 문제를 깨닫고 이해한다면 적절한 모녀관계 만들기에 분명 도움이 되겠지요. (…) 제3자의 기능은 “먼저 어머니와 딸을 분리시키는 기능, 바꿔 말해 아이덴티티 혼동을 막고 차이를 만드는 동시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여기서는 어머니의 딸 지배 혹은 딸의 어머니 지배)하지 않도록 중개하는” 일입니다. 231~232쪽 저자는 ‘아버지 죽이기’가 간단한 데 비해 ‘어머니 죽이기’는 불가능하다고 반복해서 서술한다. 확실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말하기 힘든 고민을 껴안고 있는 여성은 적지 않다. 그리고 모녀관계에 관한 고민을 토로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모녀관계의 문제를 품고 있는 가족에게 아버지라는 제3자의 개입을 권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문제를 수수방관한다기보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아버지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남성은 부모자식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계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항상 집에 머물며 결과적으로는 부모와의 관계를 더 강하게 만들 계기에 포위되어 있지요. (…) 모녀관계가 힘든 이유가 주위, 즉 사회나 세간의 강요에 일부 기인함을 보여줍니다. ‘하는 수 없음’의 연쇄가 이 힘겨운 관계를 만들어낸다면, 그에 저항하는 힘은 당연히 남성보다 여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37쪽 마지막으로 저자는 젠더 문제를 언급한다. 우선 모녀관계를 부자관계로 바꾸어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를 자문한 뒤, 이 특수한 모녀관계 문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사회의 젠더 문제임을, 따라서 젠더 문제의 해결이 모녀관계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임을 암시하며 글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