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2014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201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작
2014년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
2015년 '파이낸셜 타임스'지 선정 여름휴가철 필독 추천 도서
저명한 경제학자에서부터 거리의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간 군상의 삶을 통해 그린 21세기 중국의 초상
“중국을 이해하려면 눈부시게 빛나는 새로운 힘의 빛과 열기도 측정해야 하지만 그 에너지의 원천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는 중국이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룸으로써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초강대국으로 발전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국가가 급격한 변화를 겪은 만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 또한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8년간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격변을 목격해 온 '뉴요커'지 기자 에번 오스노스는 이 책 '야망의 시대'에서 바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현대 중국인들의 복잡한 내면 풍경을 우아한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2014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동네 서점을 방문해 산 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스노스는 오늘날의 중국을 <야망의 시대>로 규정한다.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가능성 자체에 대한 믿음, 즉 야망이 열병처럼 중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부, 진실, 믿음 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세 가지 주제는 정치와 빈곤 때문에 4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장사를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뛰어들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정치적 선전과 검열에 도전할 힘도 없었으며, 공산당 밖에서 도덕적 영감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만에 그들은 이 세 가지 모두를 추구할 권리를 획득했으며, 이제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현대 중국 사회 내부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개인과 권위주의 국가라는 두 힘 사이의 충돌로 규정하는 오스노스는 야망을 가진 개인들의 욕구가 이제 그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 준 체제를 넘어섰다고 본다.
타이완의 전도유망한 군인이었으나 전향해 중국 최고의 경제 이론가로 거듭난 린이푸 전 세계은행 부총재에서부터 <중국이여, 일어나라!>라는 애국주의적 동영상을 제작해 성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낸 젊은 민족주의자 탕제, 시골 출신으로 역경 속에서 우연한 기회로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 사업을 벌여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하기에 이르는 공하이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나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류샤오보, 그리고 시를 짓는 거리의 청소부 치샹푸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오스노스 자신이 야망의 시대로 정의한 21세기 중국의 초상을 완벽히 그려 내고 있다.
린이푸 이야기 ― 타이완의 전도유망한 군인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1979년 5월 16일 밤, 중국 연안에 인접한 어느 섬에서 스물여섯 살의 육군 대위 린정이가 초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물가로 향했다. 바다를 헤엄쳐 중국으로 망명하려는 것이었다.
린정이의 가족은 본토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린정이는 1971년 타이완 최고의 명문 국립 타이완 대학에 입학했다. 그해 10월 국제 연합은 UN총회에서 타이완의 의석을 박탈하고 그 자리를 인민 공화국에 넘겨주기로 결의했다. 인민 공화국을 중국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린정이는 신입생 대표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공산당 강도들에 맞서 투쟁할 것을 외쳤다. 타이완에서 가장 열정적인 젊은 행동주의자 중 하나로 부상한 그는 기자들 앞에서 육군 사관학교로 학교를 옮기겠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모든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일깨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생각도 없지 않았다. 사관학교로 옮기면 학비가 무료일 뿐 아니라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아무도 그의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는 중국 본토에서 불과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 지역인 진먼 섬(금문도)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를 바라보며 린 대위의 역사의식은 바뀌고 있었다. 두 나라는 원래 하나였고 하나의 민족이었다. 그는 다른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혼란의 30년을 마감한 중국이 다시 일어나 번영할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중국과 함께 번영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중국 본토에서 도망치는 것을 생각할 때, 린 대위는 그 반대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망명에 성공한 후 린정이는 자신의 이름을 <불굴의 남자>를 의미하는 린이푸로 바꾼다. 오늘날 중국 최고의 경제 전문가 중 한 명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경제학자인 바로 그 린이푸다. 오스노스가 그에게 망명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의 망명이 이상주의에 입각한 행동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중국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이자 <개인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공하이난 이야기 ― 시골 출신의 공장 노동자에서 나스닥에 상장한 회사의 CEO로
1980년대 들어 중국 사회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새로운 농기계의 도입과 비료 덕분에 논밭에 그다지 많은 일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1985년 중국 정부는 시골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도시에 나가 사는 것을 허락했다. 이후 8년 동안 시골에서 이탈한 이주자는 1억 명이 넘었다. 자율성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영화와 패션, 음악에서 개인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우리>보다 <나>가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이러한 메시지에 힘을 보탰다. 차이나 모바일은 젊은이들에게 휴대 전화를 팔기 위해 <나의 영역, 나의 결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도시로 나가려는 욕구가 전 중국의 시골 마을을 휩쓸었다. 공하이난도 그중 한명이었다. 후난 성 오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에게는 애초부터 시골에 안주해 살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공부를 잘해 그 지역 최고의 명문고에 합격한 공하이난은 학기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거처를 아예 학교 기숙사로 옮겨 딸을 등에 업고 다녔다. 그러나 딸의 병원비를 대느라 집이 빚더미에 앉게 되자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주하이 시로 이주한 그녀는 파나소닉 텔레비전 공장에 취직해 하루 2천 번씩 두 개의 전선을 납땜으로 연결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우연히 사내 신문에 쓰게 된 글 덕분에 조립 라인에서 벗어나 편집자로 승진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동창이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이 전혀 낯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저주했다.
공하이난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전국 대학 입학시험에서 현 내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녀는 학교 등록을 앞두고 하이난에서 하이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막심 고리키가 지은 ?쇠바다제비의 노래?라는 예전 혁명 시에 등장하는 작고 억센 바닷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대학원까지 진학해 전문성을 쌓던 그녀의 삶에 빠져 있는 것이 있었다. 연애였다. 공하이옌은 당시 가치로 대략 60달러 정도의 가치를 지닌 500위안을 지불하고 초기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리고 열두 명의 남자를 선별해 그들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그러나 한 통의 답장도 오지 않았다. 화가 난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