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존의 경제학’, 또는 경제학을 설파하는 ‘기존의 경제학자들’에 관한 저자의 논박은 경제학원론에 기초해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실증적이다. ‘죄수의 딜레마, 메타 분석, 비용편익 분석’에서 시작해 ‘공정무역, 사회보장제도 확대, 자유무역 협정, 세금 감면 문제, 소득 분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경제학을 파헤친다. 1부에서는 경제학의 기본 논리와 허점을 꼬집어 흔히 저지르는 경제적 오류와 선입견을 무너뜨려주는 데 반해, 2부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도덕적 · 양심적 행동’에까지 제동을 거는 탓에 적잖이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저자의 비판이 ‘좌우’라는 이데올로기의 양 진영을 오고가는 탓에 양비론이라는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프 히스의 주장의 요지는 ‘실천 가능한 방편’에 대한 고민과 무지로 인한 ‘무관심과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반성적 촉구이다. 즉, 너무 ‘경제를 미끼로 삼는 위협’에 능란하게 대처해야 하며 ‘너무 손쉬운 대안’은 호이적이되 끊임없이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사회정의 및 평등과 복지의 문제에 학구적 관심을 지니다보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경제학과 대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저자의 다소 도발적이면서 까다로운 주장을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걸핏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보수의 구라에 왜 진보는 쩔쩔매는 걸까?
과연 감세가 경기 부양을 가져올까?
공정무역은 정말로 생산자들에게 유익할까?
“일자리 나누기”는 고용 창출을 불러오는 효과적인 정책일까?
노동의 ‘가치’에 걸맞는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타당할까?
점점 더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하나의 관심사로 수렴되어간다. 더 이상 새해인사에서 건강과 복을 기원하지 않는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 된 지 오래다. 직업선호도는 단순히 연봉 순이며, 인권과 도덕도 경제에 걸림돌이 되는 순간 아무런 가치가 없다. 경제는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 최고심급이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의심을 하면서도 적절하게 반박하지는 못한다. 일반인만 경제에 무지한 것이 아니다. 걸핏하면 “경제에 해롭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미명 하에 강행되는 여러 불합리한 사안에 대해서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도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지 못한다. 한편 경제에 능통하다고 자처하는 우파가 저지르는 경제적 패착은 또 얼마나 흔하고 치명적인가?
『혁명을 팝니다』로 단숨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지프 히스는 신작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경제학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특유의 신랄하고 재기 넘치는 필치로 시장과 자본을 예찬하기에 바쁜 경제학자들과 우파의 엉터리 논리를 가차 없이 깨뜨린다. 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대책 없이 반대만 할 뿐인 좌파에 일침을 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라도 무릎을 치며 통쾌함을 만끽하다가 어느 순간 가슴을 후벼 파는 통렬함을 맛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우파가 저지르는 경제적 오류’이고 2부는 ‘좌파가 저지르는 경제적 오류’이다.
책은 SF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광고가 있는 걸 보고 관객들이 대경실색했다는 것이다. 68혁명의 향수를 지닌 많은 사람들은 아주 먼 미래에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이거나,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믿었다. 요즈음은 어떤가? 그들처럼 자본주의에 대해 순진하게 생각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향한 욕망의 크기만큼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자본주의의 딸랑이들이 퍼뜨린 경제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뉴타운”과 “주가 5000” 같은 장밋빛 경제구호에 그토록 속절없이 현혹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이다?
자본주의와 시장은 자연발생적이므로 외부의 간섭과 개입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강력한 논리이다. 저자는 여기에 진화론의 자연선택설과 최적 이론이 덧붙여져서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자연스러운 체제라는 신화가 구축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신화에 맞서 자유방임설과 진화론의 결합이 논리적 오류에 기대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형성에 국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지적한다. 즉 자본주의는 아주 정교한 사회적 구성물이지 결코 자연발생적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제한된 정부’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란, 원리원칙에 근거한 개인자유의 수호가 아닌 투자자금 보유자(편의상 이들을 가리켜 ‘부유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에 대한 자의적 특권 부여에 불과했다. 즉 우파의 ‘작은 정부’ 요구는 ‘부유층에게 득이 되는 정부 프로그램은 놔두고 다른 건 전부 없애라’는 요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는 정치철학으로서는 분명히 자격 미달이다. 특권층이 거기다 대고 아무리 미사여구를 달아봤자 요지는 ‘나한테만 공짜로 주고 남한테는 주지마’일뿐이다.”(57∼58쪽)
인간은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인다?
저자는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라는 몇몇 경제학자들의 단순무식한 논리(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런치타임 경제학』의 저자 랜즈버그의 말)에 반기를 든다. 인간이 행동하는 데에 인센티브가 중요하지만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이마저도 지극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최후통첩 게임, 뮌헨 택시 실험 등 흥미로운 실험?사람들은 당장의 이익만큼이나 평판에 신경을 쓰며, ABS를 장착했더니 오히려 사고율이 높아졌다는 놀라운 이야기 등등?을 통해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완전경쟁에 가까이 갈수록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
여름휴가의 목적지가 하와이인데 어느 항공회사에서 하와이까지 가지 않고 하와이 근처까지만 데려다주는 항공권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질 것이 뻔한 이 항공권을 헐값이라도 누가 사겠는가. 시장을 가능한 경쟁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이상에 근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논리는 하와이가 아니라 하와이 근처까지 가는 항공권과 같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제학자들이 이런 논리를 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변수와 외부효과를 무시하고 빼버렸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함으로써 시카고학파 이래로 신봉되어온 완전 경쟁시장의 환상을 깨뜨린다.
정부는 부를 소비한다?
누구나 세금을 싫어하지만 특히 우파는 언제나 감세를 외친다.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를 향한 싸늘한 시선에는 정부는 부를 소비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즉 정부는 부의 소비자이며 민간 부문은 부의 생산자라는 것인데, 이런 관점은 완전한 착각이다. 사실상 국가는 시장과 정확히 동일한 양의 부를 창출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은 부를 창출하지 않는다. 부를 산출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정부나 시장 같은 제도는 아무 것도 생산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며, 그저 사람들이 부의 생산 및 소비를 계획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일정한 장치가 되어줄 뿐이다.”(105쪽)
또 복지국가의 운영원리는 헬스클럽의 운영원리나 공동구매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만 “탈퇴를 원하는 사람과 단순히 무임승차를 원하는 사람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헬스클럽의 경우, 내는 돈만큼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당신은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행실이 못마땅하면 헬스클럽 측에서도 당신을 쫓아내 편익 제공에서 배제시킬 권리가 있다. 반면에 국가는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면) 국민을 쫓아내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은 당신이 당뇨병에 걸렸다고 해서 민간 보험회사처럼 당신을 보험에서 배제시키지 못한다. 여기에는 국민의 탈퇴권이 제한되는 대신 국가의 배제권도 제한된다는 분명한 조건부 약속이 존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