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막막하고 존재가 흔들릴 때 나는
명화독서를 한다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
암중모색하는 이에게 힘이 되는 동사 ;
명화독서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미술은 서로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장 오래된 문학인 신화는 서양 회화의 단골 소재였고, 동양에서는 시화일률詩畵一律, 즉 시와 그림이 동일한 이념과 과정에 의해 창작되어야만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했다. 여기 그림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고전을 다시 찾아 읽지 못했을 거라 단언하는 이가 있다. 시각 문화에 숨은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온 문소영(코리아중앙데일리-뉴욕타임스 기자)의 새 책 『명화독서』(은행나무 刊) 이야기다.
『명화독서』는 부제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명화 한 점을 꺼내놓고 그와 관련된 고전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그림들도 다루지만, 대부분은 저자가 사회사.경제사.정치사적으로 연계시킨 그림이 등장한다. 명화를 통해 고전을 읽어내고 나면 작품의 메시지는 자연히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고전인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시작해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보르헤스, 베케트와 브레히트, 그리고 박완서까지, 다루고 있는 문학 작품의 폭이 넓다. 미술 작품 또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에서 시작해 빅토리아시대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인상파 빈센트 반 고흐, 윌리엄 블레이크의 채색 판화와 19세기의 책가도, 백남준의 설치 미술까지 소개된 작가와 작품이 다채롭다. 이러한 문학 작품들과 시각 문화의 의미와 작금의 고민을 잇는 저자의 정교한 해석이 돋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던 시절의 상상력은 잃어버리고, 『마담 보바리』처럼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꿈과 현실의 괴리로 고통스러울 때, 「유령」처럼 인생이 막막하고 『햄릿』처럼 내 존재가 흔들릴 때 깜깜한 밤의 별자리처럼 길을 인도해줄 명화독서법을 제안한다.
운명과 타인을 견디며 살아내는 방법에 대한 해답 ;
책을 곁에 끼고, 그림을 앞에 두고
삶의 불가해함과 싸우며 불안을 견뎌내기
고전이란 무엇인가?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요즘 …를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요즘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했다. 청소년기에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리스트쯤은 누구나 쉽게 읊을 수 있겠지만, 사실 수많은 고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훨씬 덜 읽히고 있다. 다행히 칼비노는 이런 말도 했다. “성숙한 나이에 위대한 책을 처음 읽는 건 더 어린 시절에 읽은 즐거움과는 다른 비상한 즐거움이다. 어린 나이는 독서에 특정한 풍미와 의식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에, 성숙한 나이는 더 많은 디테일과 관점들과 의미들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명화독서』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을 모두 두세 번은 족히 읽었다 말하고 싶지만 처음 읽은 책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담 보바리』의 낭만에 대한 동경이 현실에서 고작 진부한 민폐나 끼치는 일탈로 그치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순전한 악마도 되지 못한 채 예언에 휘둘리는 『맥베스』의 권력욕에 공감하고, 낙원을 보고도 제 발로 현실로 돌아가는 『템페스트』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아닌 지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얻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저술의 동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칼비노는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고전이 하는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인어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지막 잎새」도 사랑과 이상의 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긴 여정으로, 현실의 풍자로, 폄훼되던 일개 눈속임 그림 트롱프뢰유의 또 다른 예술적 가치로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후 사회생활을 하다 예술학을 다시 전공한 저자가 이렇게 고전을 새롭게 읽어내게 되는 과정에는 항상 그림이 함께 한다. 밀레이의 유명한 그림 〈오필리아〉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해탈한 표정에 눈을 떼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얼굴을 보고 나면 『햄릿』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그녀의 미친 노래의 의미를 주목할 수 있다. 퓨셀리의 기괴한 마녀들 그림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맥베스』를 펼쳐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마담 보바리』의 회화 같은 구절을 읽다 보면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의 그림들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저자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연 고전을 명화와 함께 보는 행위에는 독특하고 굉장한 기쁨이 있다.
문학과 예술이 서로 마주하고 관계하며 펼치는
자기에게로 향하는 별의 지도
한 편의 아름다운 수수께끼 같은 워터하우스의 그림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의 가르침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을 담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구警句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이다. 영국 빅토리아시대에서 1980년대 미국으로, 고대 로마에서 작금의 이곳으로 이어지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여정은 자기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기 위한 저자 고유의 독서 방식이다.
저자가 뭉크의 〈유령〉에서 유독 눈여겨보는 건 등을 돌린 검은 안락의자다. 이 의자는 곧 입센의 희곡 「유령」으로 이어진다. 위선적 평온 밑에 꿈틀거리는 불안을 ‘검은 안락의자’에서 뽑아내는 저자의 독특한 안목과 디테일의 의미들을 해석하는 원숙한 솜씨가 돋보인다. 크람스코이의 〈광야의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는 거의 부탁에 가깝게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백미인 「대심문관」을 꼭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서로 닮은 두 ‘인간 영혼 심연의 사실주의자’ 도스토옙스키와 크람스코이를 함께 감상하면, 천둥처럼 울리는 대심문관의 질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금할 때’ ‘사랑에 잠 못 이룰 때’ ‘인간과 세상의 어둠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서’ ‘꿈과 현실의 괴리로 고통스러울 때’ ‘일상의 아름다움과 휴머니즘을 찾아서’로 나눠 삶의 고민에 따라 함께 읽으면 좋을 작품들을 구분했다. 하지만 한 책과 한 그림이 여러 카테고리에 걸쳐서 속할 때가 많다. 서로 마주하고 엇갈리며 복잡하게 관계한 문학과 그림이 사상적 별자리를 펼치는 듯하다. 시각 문화에 잠재된 인생의 흔적과 철학의 근원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문학의 이해로, 인간의 삶의 이해로 나아간다.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한 편의 추상화를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점과 선의 사이, 모순 혹은 미해결을 감지하고 그 틈을 메우는 해석을 덧붙이는 일은 삶에 질문하고 답하는 일과 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