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감정의 교감이다
마레와 할머니는 참을성 없고, 과자를 좋아하고, 정원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는 제일 친한 친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다가 깨어난 다음부터 마레와 할머니는 더 이상 예전처럼 같이 놀 수 없고,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마레와 할머니가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말을 못하게 되어 아무도 할머니 말을 못 알아듣지만, 마레는 할머니 눈을 보고 할머니 마음을 읽어내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할 때, 할머니를 도와주는 것도 마레뿐이지요.
이 책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가 많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가족 간의 사랑과 소통을 이야기합니다. 할머니에게 찾아온 치매는 주변의 상황이 바뀌고 가족의 반응 또한 각기 다른 입장에 서게 됩니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는가? 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단 한 줄도 텍스트에서도 치매라는 묵직한 주제의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독자는 할머니의 상태로 할머니의 병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중요한 지점은 할머니의 치매 문제를 넘어서 아이의 눈에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할머니의 진심을 헤아리려 했는가. 설명과 이해를 넘어서는 감정의 교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넘어설 수 있음 보여줍니다.
마레와 할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
마레는 벚나무 아래 놓인 등나무 의자에서 태어났어요. 그때 엄마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마레는 참을성이 조금도 없어서 “나 지금 나갈래! 지금 당장!” 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발을 쑥쑥 밀고 쿡쿡 차댔지요. 마레가 자라 여섯 살이 되어서는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과자가 먹고 싶으면 “지금 당장!” 하며 상자에 든 과자를 모두 먹어치웠지요. 말괄량이 마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할머니예요. 할머니도 마레처럼 참을성이 없고 먹성도 좋지요. 둘은 정원을 뛰어다니고, 이야기하고, 과자를 먹으며 놀곤 했어요. 둘이 같이 있으면 어떤 성대한 잔치도 부럽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 마레에게 일어난 일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어요.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서 마레가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과자를 먹는 법도, 신이 나게 뛰는 법도, 이야기하는 법도 모두 잊어버렸어요. 할머니는 바퀴가 달려 있고, 주변에 울타리가 쳐진 하얀 침대 위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봤어요. 마레는 갑자기 변해버린 할머니가 답답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할머니 침대를 발로 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어른들은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마레는 천천히 할머니 눈을 보고 마음을 읽어 내서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마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모습을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없고,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치 누군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두 눈을 감고 빙그레 웃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곁으로 가자 하얀 입김이 나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 눈물이 방 안에 가득 차 침대가 둥실둥실 떠내려갈 것 같아요. 눈물을 다 닦고 나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했어요. 간호사들이 못 가게 했지만 마레는 할머니와 같이 할아버지를 보러 갔지요. 할아버지 주변이 싸늘해서 마레와 할머니 입에서 하얗게 입김이 새 나왔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새 나오지 않았지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빙그레 웃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성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생긋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