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

양영희 · Novel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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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과, 극영화 [가족의 나라]를 연출해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쓴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자전 에세이. 10대에 북한으로 송환되어 다시는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 오빠 이야기와 그에 얽힌 가족사를 담았다. 양영희 감독은 현재 세 오빠에 대한 두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발표해 조총련으로부터 북한 입국금지를 당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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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1부 신세계로부터- 대동강에서 건오 오빠는 부르짖었다 2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건아 오빠의 스텝 패밀리 3부 하얀 그네- 건민 오빠의 짧은 오열 후기

Description

“눈물은 이 책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62회 베를린영화제 수상작 <가족의 나라> 원작 ◆ 다큐 <디어 평양> 의 감독 재일교포 양영희 가족 실화 인생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하고 만다. 오빠들이 북한에 가지 않았더라면… 발 딛고 선 일본, 고향인 한국, 조국이라 부른 북한 이 가족에게 ‘나라’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모순과 회한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서로를 위한 끈을 놓지 않았던 가족의 감동 실화 -가짜 슬픔이 흘러넘치는 시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비극 오빠들이 나만 두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눈물 때문에 흐릿했지만 갑판에서 손을 흔드는 건아 오빠와 겐짱이 보였다. 나는 외쳤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소리를 마냥 질렀다. _본문 발췌 다큐멘터리 <굿바이 평양>과, 극영화 <가족의 나라>를 연출해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쓴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자전 에세이. 10대에 북한으로 송환되어 다시는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 오빠 이야기와 그에 얽힌 가족사를 담았다. 양영희 감독은 현재 세 오빠에 대한 두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발표해 조총련으로부터 북한 입금금지를 당한 상태다. 남한 출신이었으나 ‘북’을 사상적 조국으로 택해 아들을 보내야 했던 조총련 간부 아버지, ‘홀로 남겨진 영희’라 불리며 일본에서 자란 막내딸, 국가와 사상에 의하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생각하고 선택할 자유를 박탈당한 오빠들. 비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벗어날 수 없는 모순 가득한 가족사에 괴로워하면서도, 각각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발 딛고 선 일본, 고향인 한국, 조국이라 불렀던 북한. 그 어느 나라도 ‘우리의 나라’라 부를 수 없었던 이 가족에게 과연 ‘조국’이란 무엇이었을까. 이 모순과 회한의 가족사를 통해, 분단과 이념의 그늘 아래 희생당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더 이상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이 시대, 우리 또한 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은이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 <가족의 나라>는 27년 만에 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돌아왔다가 약속된 짧은 기한조차 채우지 못하고 돌아간 셋째오빠의 사연(책의 3장 내용)을 영화화한 것으로,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베를린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각국 영화제에 소개되어 다수의 상을 받았다. 이들의 비극적 가족사는 일본 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영화 <가족의 나라>는 요미우리 문학상을 비롯한 일본 내 주요 각본상을 휩쓸고(마이니치영화콩쿠르, 일본시나리오작가협회), 2012년 일본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키네마준보> 선정). (3월 7일 개봉 예정) 분단의 역사와 조국의 아이러니가 만든 비극적 가족사 -두 개, 혹은 세 개의 조국을 품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이야기 1970년대 초 지은이가 일곱 살 되던 무렵, 고등학교 1학년생인 둘째오빠와 중학교 3학년생인 셋째오빠, 그리고 대학에 다니던 첫째 오빠까지 세 오빠가 모두 ‘사회주의 조국 건설’의 역군이 되기 위해 나고 자란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귀국’했다. 전후 일본에 사는 다수의 교포들은 무국적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며, 대학 입학이나 취직에까지 제한을 받는 상황에서 ‘지상낙원’이라 선전된 북한으로 가는 조총련계 청년들의 선택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다. 반도에는 삼팔선이라는 완충지대가 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사회에는 그것이 없다. 어제까지 같은 반도 출신 동포였던 재일조선인끼리 민단계와 조총련계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그런 대립이 일상생활에서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본보기 같은 동네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 오사카 시 이쿠노 구(당시엔 ‘이카이노’라 불렀다)였다. -본문 발췌 앞서 식민지 정책에 의해 강압적으로 ‘황국신민’이 돼야 했던 조선인은 돌연 ‘외국인’이 되었고, 일본에 머무는 기간이 잠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재일(在日)’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에 대해 체류자격을 연장하지 않아도 일본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주었지만, 이것은 임시조치였다. 그러나 이 ‘임시조치’는 전후 6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본적지가 한국인 우리 부모님도 따라서 여전히 ‘조선국적’이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 _본문 발췌 하지만 세 아들을 보내며 통일이 머지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은, 이후로 북한 체제의 감시 아래 수십 년간 마음을 터놓은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하고 자유로이 만날 수도 없이 생이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낸 오빠들은 자유 의지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음은 물론, 북한 사회 안에서도 ‘귀국동포’라는 차별을 받으며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저 나라에서 선택하고, 생각할 자유를 잃어버린 오빠들은 미치거나, 포기하고 순응하거나, 감정을 버렸다. 그곳에서는 ‘생각’을 하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오빠는 그토록 사랑했던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이유로 자아비판의 대상이 되어 정신병을 앓기에 이르렀고, 건축가의 꿈을 꾸며 북한으로 떠난 둘째오빠는 사상교육을 받는 일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지은이가 친근하게 ‘겐짱’이라 부르던 막내오빠는 피나는 노력으로 북한 내 엘리트가 되었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듯 차가운 포커페이스가 되었다. 아, 건오 오빠는 미쳤다. 이 나라에서 미쳐버렸다. 미쳐버린 것이다. 오빠들에게서 눈을 떼고 싶다. 하지만 뗄 수 없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정말로 슬픈 것은 건오 오빠일 텐데. 손으로 닦을 여유도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건오 오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계속 눈물을 쏟아냈다. _본문 발췌 두려운 마음으로 겐짱을 본다. 겐짱의 눈에 눈물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다. 등을 쫙 펴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거기에는 조금 전까지 오열하던 오빠는 없었다. 나는 그때 갑자기 깨달았다. 오빠는 계속 이렇게 북한에서 울고 있었구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_본문 발췌 셋째오빠는 얼굴 안쪽에 종양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도 북한에서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수년에 걸친 부모님의 노력과 간청, 기다림 끝에 셋째오빠가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잠시 돌아온다. 약속된 기한은 3개월, 27년 만의 귀환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병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겨우 2주 만에 ‘일제귀국령’이 내려져 오빠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오라’는 명령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오빠의 모습에 지은이는 허탈해하고 분노한다. 일본에 있으나 북한의 체제 아래 얽매인 가족의 모순과 현실에 분노한다. 그리고 북에 묶여버린 오빠들 때문에, 오빠들을 대신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