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김양진 · Essay
312p
Where to buy
content
Rate
4.3
Average Rating
(2)
Comment
More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노거수의 기쁨과 슬픔을 비추는 이 책은 오랜 기간 방치되거나 사랑받아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나무 한 그루를 지켜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국내 1호 나무 전문 기자’로 알려진 저자의 수많은 현장 취재 이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글을 고르고 보완해 묶었다. 철새도래지 100년 숲에 건설되는 신공항, 가혹한 환경에서도 오래 살기로 유명한 향나무가 희귀수종이 되어 절벽 끝에서만 살게 된 사연, ‘명품하천’으로 거듭나기 위해 훼손된 버드나무 수백 그루, 관광객 편의(도로 확장)를 우선시한 도시행정 기조 아래 베이는 가로수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지역민들, 산을 깎고 골프장을 지어서 자연을 살리겠다는 개발업자와 이를 용인하는 지자체 등 수백·수천 살 나무가 베이고 옮겨지는 저마다의 사정을 따라가며 이 책은 나무 한 그루를 잃는 것은 “환경문제일 뿐만 아니라 행정·자치 문제이고, 민주주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생태학적 지식은 물론, 역사·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짚으며 우리가 나무와 맺는 관계를 다층적으로 보이는 책으로, ‘지금 당장’을 우선하는 좁은 시야를 넘어 수백 년 전과 수천 년 후를 생각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재료로서의 나무’에서 ‘이웃으로서의 나무’로 관계 전환의 실마리를 전해준다. 나무 한 그루에서 뻗어나가는 생명의 연쇄가 궁금한 사람들, 나무와 관련한 현안과 쟁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노거수가 사는 지역을 탐방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소중히 다가갈 책이다.

Author/Translator

Comment

1

Table of Contents

이야기를 시작하며 1. 나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 1. 안동 은행나무 _오리발, 공손수 2. 창녕 모과나무 _숨은 고수를 찾습니다 3. 부산 회화나무 _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은 4. 영암 이팝나무 _대통령의 나무가 되길 거부한다 5. 의령 느티나무 _도계 긴잎느티나무의 속은 누가 채웠나 2. 길에 선 나무 6.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_달콤한 그늘 7. 서울 보라매공원 포플러 길 _위험 수목이라는 위험 8. 제주 구실잣밤나무 길 _반짝반짝 빛나는 나뭇잎 숲 9. 제주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 _미국의 거인 삼나무들이 산불로 떼죽음을 당한 뜻밖의 이유 3. 물이 좋은 나무 10. 대구 왕버들 숲 _그 유연한 버드나무마저 떠났다 11. 전주 버드나무 숲 _버드나무 한 잎의 향연 12. 동해안 향나무 숲 _향나무 그루터기에 여덟 명이 올라앉았다는데 13. 군산 간척지의 팽나무 노거수 _서울에서 팽나무를 만나면 4. 숲에 사는 나무 14. 서울 봉산 _위대한 개척자를 위하여 15. 고양 산황산 _보호수라는 뻔뻔한 거짓말 16. 지리산 가문비 숲 _질문이 잘못된 것 아닐까요 17. 가덕도 산서어나무-동백나무 숲 _동박새 한마리만큼이라도 5. 사람과 나무 18. 원주 상수리나무 _우리는 참나무 나라에 삽니다 19. 광주 수피아여자고등학교 로뎀나무 _무릎뿌리에 반응하기 20. 진주 중원로터리 나무 신 _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온 나무 신 21. 서울 궁산 나무 지도 _달빛 향기 참고문헌 주

Description

“뿌리가 깊고 수관이 너른 고목 같은 책이다. 나무를 통해 정치, 사회, 환경을 폭넓게 사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쓴다. 무엇보다 나무 한 그루 아래 펼쳐진 그늘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_허태임(《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저자) 마을을 지켜온 수백·수천 살 수호신이 처치 곤란 애물단지가 되기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예로부터 나무는 신성과 연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 벽화의 신단수, 고려시대 매향 의식, 고려-조선시대 당산나무 전통 등 ‘나무 신(신목)’을 경외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저자는 커다란 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는 오랜 믿음이 마냥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새들의 집이 되는 수관, 토양 침식을 막는 촘촘한 뿌리 시스템, 희귀동물의 은신처가 되는 나무 구멍, 기온을 낮추는 그늘, 탄소를 저장하는 잎사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커다란 생태계이다. 하늘과 바다, 땅을 연결하고 곤충과 동물을 함께 살게 한다. 땔감이 모자라 겨울을 나기 어려운 시기에도 큰 나무를 베지 않았던 이유를 단순히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때 신이었던 나무는 근대화·산업화 이후 본격화된 도시계획·토건 사업에 의해 ‘재료로서의 나무’로 그 위상이 크게 변화한다. 인간에게 쓰이기 위해, 미관과 편의를 위해 지체 없이 베이고 옮겨진다. 가만히 두면 수백~수천 년도 살던 나무는 이제 30년만 되어도 ‘노후림’으로 취급되어 처리 대상이 된다. 철새도래지 100년 숲에 건설되는 신공항, 가혹한 환경에서도 오래 살기로 유명하지만 개발과 무분별한 채취로 희귀수종이 되어 절벽 끝에서만 살게 된 향나무, ‘명품하천’으로 거듭나기 위해 훼손된 버드나무 수백 그루, 관광객 유치·도로 확장을 우선시한 도시행정 기조 아래 베이는 가로수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지역민, 산을 깎고 골프장을 지어서 자연을 살리겠다는 개발업자와 이를 용인하는 지자체, 비전문가의 눈대중으로 지정되는 ‘위험 수목’과 마구잡이 벌채 등 ‘지금 당장’의 손익 계산을 우선하게 된 시대의 나무는 개발자원 혹은 애물단지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개발 중심 수목 행정의 결과는 법정보호종 동식물의 멸종위기로, 곤충 대발생으로, 토양 온난화와 빈번해진 산불로, 폭염과 폭우로, 식량 공급망의 위기로, 아직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각종 위험으로 드러나고 있다. 베인 나무를 대신해 대체 서식처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생물이 서식처를 선택하는 데엔 셀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 변수를 다 계산할 수 없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데만 몰두해 있는 토목건설업체들에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껏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무수한 대체 서식처가 만들어졌지만 성공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10장 <대구 왕버들 숲> 중에서) 사라져가는 세상의 차양 노거수의 기쁨과 슬픔 우리나라에서 법적 보호를 받는 노거수는 관리 주체에 따라 ‘천연기념물’ ‘기념물’ ‘보호수’ 등으로 지정된다. 역사·문화적 가치, 즉 인간과의 관련성이 그 평가 기준이었는데, 최근에는 생태·환경적 가치만으로도 보호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보호수’로 지정되어도 이권이나 민원과 관련될 때는 그 가치가 손쉽게 무시되어 베이고 방치되는 실정이다. 이 책은 ‘천연기념물’ ‘보호수’는 물론 제도적 보호를 받지 않는 노거수를 포함한 21개 지역의 수백·수천 살 고목을 마을의 당산나무(1부 <나무 할아버지 나무 할머니>), 사람들과 특별한 사연으로 얽힌 나무(5부 <사람과 나무>), 생육 환경(2부 <길에 선 나무>, 3부 <물이 좋은 나무>, 4부 <숲에 사는 나무>)별로 분류해 소개한다. 1부 <나무 할아버지 나무 할머니>에서는 수백 년간 마을을 지켜온 아름드리나무의 지금을 소개한다. 개발 압력으로 이식된 700살 안동 은행나무, 이식 작업을 하다 용접 불꽃에 타버린 500살 부산 회화나무,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아 나무 가득 흰 꽃을 피우는 신령한 영암 이팝나무, 둑 건설로 마을이 수장되는 바람에 물에 잠긴 채 100여 년을 산 의령 느티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고, 각별한 보호를 받던 나무들이 어떤 이유로 살던 자리를 떠나고 방치되며 훼손되었는지 각각의 사연을 들어본다. 이 ‘터줏대감 나무’의 귀향 첫날인 2022년 2월 28일, 뿌리를 지탱하던 철제 틀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용접 불똥이 몸뚱이에 옮겨붙었다. 소방 장비도 없어 나무는 10여 분간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갔다. ‘환영 행사’ 때문에 왔던 촬영 카메라에 이 장면이 담겼고, 행사는 취소됐다. 이후 이 나무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다. 이식 과정에서 뿌리를 지나치게 많이 잘라냈다. 굵은 줄기까지도 몽땅 잘라냈다. 무게가 가벼워야 옮기는 비용도 덜 나온다. 수목 관련 책에는 수간 직경의 4배 이상 넓이의 뿌리는 남겨야 한다고 돼 있지만, 세상 법에는 얼마나 잘라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그러니 돈이 법전이고 감독관이다.(3장 <부산 회화나무>에서) 2부 <길에 선 나무>에서는 녹음을 만들어 기온을 낮추고, 탄소 포집 능력으로 대기를 정화하고,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조성된 가로수들이 ‘전깃줄에 걸려서’ ‘꽃가루를 날려서’ ‘열매의 촉감과 향이 좋지 않아서’ ‘간판을 가려서’ ‘도로를 넓히기 위해’ ‘공항 건설을 위해서’ 잘려나간 사연을 살펴본다.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과 제주시가 ‘걷고 싶은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선정했던 구실잣밤나무 길이 등장하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에서 2년간 3400그루가 베인 사연이 소개된다. 특히, ‘숲 가꾸기 사업’의 허울과 딜레마를 지적한 9장 <제주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은 근시안적인 수목 행정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크고 똑바로 자라는 좋은 나무’를 제외한 작은 나무와 풀을 ‘탈 것’이라며 제거하고, 소방차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산에 도로(임도)를 내어 산불을 예방하겠다는 산림청의 논리는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숲의 사정은 다르다. 사람과 장비가 숲속을 헤집고 다니는 과정에서 축축한 부식토가 사라지고, 나무, 이끼, 지의류 등의 식생이 파괴된다. 그늘진 깊은 숲이 벌목과 가지치기로 구석구석까지 햇볕이 들어오는 메마른 공간이 된다. 건조해진 숲으로 불이 잘 옮겨붙게 되고, ‘가꿔놓은’ 임도가 그 속도를 가속화한다. 베어낸 줄기와 가지가 바싹 말라 ‘탈 것’이 된다. 물을 잔뜩 머금은 살아 있는 숲이야말로 오히려 산불이 퍼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던 것이다. 무엇이 ‘탈 것’이고 ‘가꾸는 것’이며 ‘깨끗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숲을 죽여서 숲을 살린다는 것의 딜레마를 바라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개발업자가 수행한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에 손쉽게 도장을 찍어주는 환경부와, 공사 과정에서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저감 대책을 세우면 공사를 허가하는 개발 위주의 수목 행정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을 헤아린다. 3부 <물이 좋은 나무>에서는 습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를 소개한다. 수리부엉이, 담비, 수달, 삵 등 희귀 야생 동식물의 ‘숨은서식처’로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는 대구 왕버들 숲과, ‘명품하천’으로 거듭나기 위해 잘려나간 전주천의 버드나무 수백 그루, 혹독한 환경에서도 오래 사는 것이 특징인 향나무가 자생지 멸종 위기에 처해 동해안 절벽 끝에 매달리게 된 사연, 미군기지의 탄약고 확장으로 섬마을이 바다로부터 멀어지고 생업을 잃은 이들이 모두 떠난 곳에 홀로 서 있게 된 600살 팽나무의 사연이 펼쳐진다. 4부 <숲에 사는 나무>에서는 나무를 베고 생태 균형을 깨뜨려 곤충 대발생을 불러일으킨 서울 은평구 봉산의 사연, 산을 깎고 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