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고 달콤한 과일로부터 도착한
다정한 초대장, 수락하시겠습니까?
★ 화제의 만화 에세이 『땅콩일기』 쩡찌의 첫 산문집 ★
구병모(소설가) 추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계속되어온 띵 시리즈의 스물여덟 번째 주제는 ‘과일’이다. 우리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만화 에세이 『땅콩일기』의 쩡찌 작가. 『여름이 긴 것은 수박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는 그가 펴내는 첫 산문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3권까지 출간된 『땅콩일기』는 분명 만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한 편의 시 같기도 한 아름다운 문장과 깊고 넓은 사유는 이미 숱한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문학적 입지를 증명했다.
음식은 때로 추억이고, 위로이며, 삶을 끌고 가는 작은 힘이 된다. 이 책은 ‘과일’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과일’에 국한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글 사이사이에는 웃음이 터지는 솔직한 고백도, 불쑥 찾아오는 슬픔도, 조용한 위로도 있다.
쩡찌는 역시 쩡찌답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귀하디귀한 겨울 복숭아 두 알을 구해 기꺼이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고, “올해 첫 수박 먹었어?”라는 말로 안부를 묻고, 백화점 청과 코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아빠의 낡은 구두를 새로 사 드리고, 까치와 나눠 먹을 잘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의 순간순간, 과일처럼 작은 기쁨을 품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8월에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손끝에서 목구멍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선명하게 전해지는 여름의 감각
기다랗게 썬 수박을 하모니카처럼 양손에 들고 와사삭 한입 크게 깨어 물고만 싶은 초여름, 매년 이맘쯤이면 어김없이 기록적 폭염이 찾아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여름이 유독 힘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위로는 ‘과일’이 아닐까. 마치 한여름에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과일에 몹시 진심인 작가 쩡찌가 들려주는 과일에 얽힌 인생 그 자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입에 넣는 사과부터 바나나, 수박, 복숭아, 감, 키위, 귤까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과일은 사랑이고 성장이고 기억이고 희망이 된다. 쩡찌는 자신을 ‘오랑우탄’이라고 표현할 만큼 과일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면서도, 그 너머에 담긴 정서적, 사회적, 관계적 풍경들을 세심한 언어로 풀어낸다. 과일로 쓴 성장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과일, 그것은 곧 가족의 사랑이었다. 오직 맛있어서 식구들의 과일을 챙긴 엄마의 용기, 키위 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한 박스 가득 챙겨 보낸 아빠의 마음, 한겨울에 소쿠리 가득 받아든 딸기 태몽, 수박 하나를 온전히 혼자 먹는 작은 사치에 대한 이야기까지, 과일에 얽힌 기억과 감정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준다. 이 책은 과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깊어지고 넓어지는지를 증명한다. 특히 <엄마가 나와서 사과 먹으래> 같은 제목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웃음과 공감, 눈물샘을 동시에 자극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지만 제각기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쩡찌는 과일을 먹는 일에서 시작해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고, 서툰 사랑과 우정에 울고 웃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감각과 도시의 장면까지 사유를 확장한다. 자신의 내면은 물론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웃과 주변의 풍경까지 관찰하고 삶의 놀라운 순간을 발견한다.
“나는 오랑우탄이에요. 과일을 너무 좋아해요.”
사과, 바나나, 수박, 복숭아, 감, 키위, 귤까지
‘만지면 만져지는 동그라미’에 대한 이야기
모든 과일은 어떤 말보다 선명한 감정을 품고 있다. 때로는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울컥하게 되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어본 어떤 순간의 감정을 ‘과일’이라는 감각적인 언어로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평소 고마운 사람에게, 기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쁜 날을 맞은 사람에게, 과일을 선물하는 사회적 관습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과일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 사이엔 이해와 배려가 있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빠짐없이 붉은 수박 조각을 건넸고, 과일 판매원은 손님에게 색이 예쁘고 표면이 고르게 둥근 것을 골라주었으며, 집에 온 친구에게는 작고 알이 꽉 차면서도 너무 단단하지 않은 귤만 골라 쥐여 보내고, 맛이 덜하고 딱딱한 가장자리 과일은 재빨리 자신의 입에 넣어버리는, 다정한 태도 역시 그렇다. 껍질 너머의 달콤한 속살처럼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들이 수박씨처럼 이 책의 곳곳에 박혀 있다.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삶을 좋아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처와 흠집이 고달프고 매일매일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삶을 수박처럼 둥글게 끌어안고 견디다 보면 분명 제법 달콤하고 괜찮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쩡찌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화제의 만화 에세이 『땅콩일기』 시리즈
일러스트레이터 쩡찌의 첫 산문집
본문 곳곳에는 쩡찌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수록했다. 그간 『땅콩일기』를 통해 짧은 만화 컷에 깊은 감정을 담아 전해온 내공이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담긴 것인데, 이미지가 텍스트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서의 묘를 배가시키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사과를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 가득 차는 향기롭고 달콤한 과즙, 특별한 날 축하를 위한 홀케이크처럼 넉넉한 수박 한 통, 맛보기 참외 조각을 건네는 과일 트럭 주인의 목소리, 그야말로 ‘오랑우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단편이 그려진다. 띵 시리즈에서 글과 그림을 함께 선보이는 것은 이수희 작가의 ‘멕시칸 푸드’ 편 『난 슬플 때 타코를 먹어』 이후 두 번째 시도다.
표지 역시 이 책을 쓴 쩡찌 작가의 작품인데, 귀청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은 채 시원한 대나무 돗자리에 앉아 엄마가 썰어주는 수박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로 좌로 고개를 끊임없이 돌려대는 회전 모드 선풍기 앞에서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아아아~” 목소리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떨림을 즐기던 우리 모두의 추억. 이 장면은 이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 될 만큼 우리가 보내온 숱한 여름들을 생생하게 소환해낸다. 그 곁에는 늘 수박이 있었다. 수박이 아니면 참외나 복숭아, 포도 그런 것들이.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의 끝에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을 입에 물면 오늘 하루 잘 보낸 것 같은 안도감이 있었다.
그런 여름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여름은 우리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한 뼘 더 자라게도 한다. 뜨거운 햇살을 받고 힘껏 영글어 수박과 복숭아와 참외의 당도가 최상위에 도달했을 때, 우리도 기분 좋게 기지개를 펴고 무엇이든 잘해볼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진다.
『파과』를 쓴 소설가 구병모가 먼저 읽고 보내온 추천사의 마지막 문장 “이 책을 읽다가, 냉장고를 열고 잊히기 직전의 과일을 꺼내어 씻은 다음 꼭지를 땄다.”에서처럼 과연 어떤 과일이라도 지금 당장 한입 베어 물고 싶어진다.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덮고 과일을 손질하며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