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상품 물신주의’와 ‘나르시시즘 사회’를 향한
강렬하고, 정밀하며, 도발적인 비판!
“가치비판론자인 안젤름 야페의 열정적 에세이를 엮은 책으로, 그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막대한 기여를 해온 학자다. 확고한 반反자본주의자로서 야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삶의 모든 측면을 시장관계 아래 복속시킴으로써 인간 공동체와 자연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 미카엘 뢰비(사회학자·철학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안젤름 야페를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의 번역에 나섰다.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인문학 내지 사회과학 책보다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야페는 묻는다. 과연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도 발전하는가.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인간도 성장하는가. 자본주의의 자유와 더불어 인간의 자유도 확장하는가.”
- 강수돌(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 현재 혹은 미래의 자본주의에 관한 놀랍도록 뼈아픈 분석
―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가치비판론자 안젤름 야페의 열정적 에세이
『파국이 온다』는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유럽의 가치비판론자 안젤름 야페가 2017년 영문으로 펴낸 에세이 모음집이다. 원제는 ‘더 라이팅 온 더 월(The Writing on the Wall)’로, ‘파국 혹은 재앙의 예고’를 뜻하는 말이자 ‘대자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 세고, 달고, 나눠 주다)”을 언급한다. 바빌론 벨사살왕의 궁전 촛대 앞 석회벽에 나타났던 그 글귀다. 저자는 벨사살왕이 최전성기라 생각하며 흥청망청 잔치까지 벌이던 때에 신이 이 글귀를 내렸다는 데 주목한다. 결국 그날 밤 벨사살왕은 적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바빌론 왕국은 무너진다.
자본주의의 파국적 경향을 그 누구보다 ‘근본’에서 추적해온 가치비판론 학파 철학자 안젤름 야페의 책을 읽고 “전율을 느껴” 직접 번역에 나선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학자 안젤름 야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독일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국경을 넘나들며 강의한다.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을 마음껏 구사한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책을 읽어보니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자본주의 비판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과학자라는 데서 또 한 번 놀랐다. 입이 딱 벌어졌다. ‘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안젤름 야페는 독일의 비판적 지식인 그룹 ‘크리시스’와 함께하며, 카를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이론인 ‘가치비판론’ 학파의 핵심 이론가다. 가치비판론이란 마르크스가 정립한 가치법칙을 바탕에 두고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통찰, 비판하는 이론적 관점이다.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상품, 특히 교환가치가 인간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불과 300~400년밖에 안 된 자본주의이건만, 우리 삶은 자본주의가 창조한 구성 요소인 상품·화폐·노동·자본을 당연시하거나 중시하게 되었고, 시장·국가·고용·경쟁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살아간다. 저자가 분석한 대로, 우리들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가치인 교환가치, 즉 ‘돈의 논리’를 내면화(internalization)한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에서 거듭 문제를 제기하듯, 과연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도 발전하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인간도 성장하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자유와 더불어 인간의 자유도 확장하고 있는가?
이 책은 왜 민주적인 나라마저 결국 ‘국가의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는지, 소련이나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조차 상품가치 내지 교환가치 논리를 극복해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지 궁구한다. 또한 건강한 시민이라 자부하는 사람들마저 왜 속물주의나 물신주의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지, 왜 온 세상이 자본주의 심화와 더불어 야만주의와 파국 상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낸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진정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근본적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단순히 흥미로운 정도를 넘어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현실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이 책에는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질문들도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경제위기는 물론 기후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사회 위기, 도덕 위기, 정치 위기 등) 다양한 위기 국면에 빠진 자본주의가 몰락하면서 마침내 인간도 (그리고 지구도)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인간 구원의 탈출구는 없는 것인가? 변화를 바라는 열망은 이토록 높은데 어째서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진정한 민주주의나 인간 해방의 필요성은 (…) 소리 높여 외쳐지는데 어째서 우리 스스로는 (느낌, 가치, 생각, 기억, 행동 등 모든 차원에서) 진정으로 해방된 삶을 살고 있지 못할까? 안젤름 야페가 이 책에서 던지는 이 질문들은 결코 그의 것만은 아니다. - 본문 12쪽, <옮긴이 해제_자본주의 비판, 그 마지막 퍼즐>에서
2.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건 자본주의 자신이다
― 자본주의가 결국 해체되거나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
『파국이 온다』는 안젤름 야페가 프랑스 저널에 발표했던 에세이들을 엮은 것으로, 총 열 편이 실려 있는데 2017년 영문판 발간 시 저자가 많은 부분 수정, 보완했다. 다양한 주제 아래 쓰인 글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질문을 다룬다. 즉, 현대 ‘자본주의의 해체decomposition’와 ‘그 해체가 야기하는 다양한 대응’을, 가치비판론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새롭게 따져본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우리는 ‘무너져가는 자본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18세기 고전적 자유주의를 시작으로 19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거쳐 이후 1970년대까지 포드주의와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자본주의 등으로 30년간 최고조기를 누리던 자본주의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단계에 이르러 쇠퇴기로 접어들더니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사실상 파산 선고가 내려지고 말았다. 저자의 보고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 구제금융의 규모는 과거 1980년대에 시장을 뒤흔들던 적자 규모의 열 배인 반면 GDP로 표시되는 실물경제 생산은 약 20~30퍼센트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1980년대나 1990년대의 “경제성장”은 그저 금융 거품의 결과다. 만일 그 거품마저 모두 터진다면 가까스로 버티던 자본주의 세상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그런데 저자의 냉정한 진단에 따르면, 이러한 파괴나 해체는 그간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세력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기보다 그들마저 그 비판의 와중에 길을 잃어 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함께 휘말려 들어간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야페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야말로 가치비판론의 타당성을 입증해준다고 말한다. 즉 가치비판론에서 말한바,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적 한계가 있다”라는 주장이 결국 옳았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에 실린 네 편의 에세이(1~4장)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의 점진적 해체 경향과 그것이 2008년의 글로벌 위기에서 정점을 찍은 현상을 다룬다. 아울러 전통적 자본주의 비판 세력의 견해에 대한 독자적 분석과 현 상황에 대한 근본적 재해석을 담아내는데, 이를테면 ‘정치’나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흐름,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자기들의 무기로 박살내겠다며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하는 것 등을 ‘포퓰리즘’이라는 용어 아래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기존의 비판 세력이 내건 운동이나 그 구호가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근본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것도 자본주의 생산의 토대 자체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