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시바 료타로가 풀어내는
가슴 뜨겁고 진솔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
때는 일본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면서 또한 가장 역동적인 16세기 전국(戰國)시대. 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시바 료타로가 한 권의 소설로 풀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가 바로 『패왕의 가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차지한 이후 비로소 일본은 260여 년의 평화스런 에도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라 미카와는 약소국이었다. 산악지역이라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적어 병력 동원 능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다스리는 형식이었다. 이웃나라 오와리나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가이지역의 다케다 신겐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장수들을 신하로 두고 마음껏 부리는 독재적인 힘도 없었다.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만의 인내와 체념의 미학, 자기 자신을 냉철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 가신 집단인 호족과의 관계, 천하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미카와(라는 지역과 사람) 기질 등을 시바 료타로는 그만의 글 용광로에 녹여낸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흡사 역사 에세이 같기도 하고 흡사 역사 평설 같기도 한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당대를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파악하게 만든다. 또한 이에야스(와 그의 시대)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처럼 같이 호흡하게 만든다.
시바 료타로가 말하는,
참으로 묘한 사내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천재가 아니었다고. 그는 실제적인 체험을 교훈으로 쌓아올려 부단히 노력한 사내이며, 승전보다는 패전을 자신의 내면과 역량을 키우는 힘으로 삼은 것이라고. 이렇듯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피비린내 나는 일본 전국(戰國)시대에서 천하 패권을 차지한 자치고는 의외의 인물이다.
잠시 그에 대해 살펴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라 미카와는 약소국이었다. 산악지역이라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적어 병력 동원 능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다스리는 형식이었다. 이웃나라 오와리나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가이지역의 다케다 신겐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장수들을 신하로 두고 마음껏 부리는 독재적인 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시바 료타로는 먼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독특한 기질을 말한다. 즉, 이에야스의 고난에 찬 성장사를 추적하여 이에야스 스스로 자신을 자연인이 아닌 일종의 법인처럼 규정했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인내할 수 있었고, 어느 한계 상황에서는 체념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냉철히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 여느 영주들처럼 영웅이 된 듯한 착각과 천하를 차지한 듯한 환상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초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장에서 패배의 경험이 많다.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집단 다케다 군과 한 판 붙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 시대의 이름 있는 장수 가운데 이에야스만큼 패주한 경험이 많은 자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나라 고조와 닮았다.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은 그런 경험이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드물게 전략적으로 후퇴한 적은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르러서는 몸 하나로 도망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기기만 하고 진 적이 없는 인간은 어딘지 모르게 물러 보이지” 하고 만년에 이에야스는 말한다. “나는 미카타가하라에서 대패를 맛보았지만 그 패배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는지 모른다”라고 했다.
이처럼 시바 료타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내적 기질을 천하 패권을 차지한 동력의 한 축으로 꼽고, 다른 한 축으로는 그의 나라 미카와적인 기질을 꼽는다. 중세에서 근세로 나아가는 시기의 미카와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달리 폐쇄적인 향토의식이 강했다. 이합집산이 일상사처럼 일어나는 전국의 세상에서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었지만 단결력이 강했다. 이에야스 또한 다른 전국시대 영주들처럼 모략적으로 잔혹하게 신하를 죽이는 일을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호족들과도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다.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주종의 관계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오다 노부나가의 요구로 자식과 부인을 죽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신 사카이 다다쓰구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교적 충성 개념이 없었던 전국시대에 주종이 서로 이런 윤리의식으로 싸운 집단은 오로지 미키와뿐이었다고 한다. 시바 료타로는 여기에 큰 의미를 둔다.
천하의 정치는
결코 도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느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할 무렵, 2세 히데타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내린다. “천하의 정치는 결코 도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느니, 이것을 우리 가문의 좌우명으로 삼아 오래 전하라.” 그랬다. 이에야스는 죽을 때가 임박해서야 패자다운 도량을 보여주었다. 살아생전 그는 인색한 구두쇠였고,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한 존재였다. 어디를 보나 영웅의 풍모란 찾아볼 수 없고, 외모도 일상도 그 재능도 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이 인물이 가슴 속 깊이 품었던 웅비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유언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지금의 현실 사회에 비추어도 울림이 매우 크다.
사회적 혼란이 최고조에 달한 일본 전국 100년의 시기, 그 100년 동안 이루어진 거대한 역사적 작업이 가문이니 계급이니 하는 가치의 붕괴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구질서는 무너져가고 새로운 질서가 잡히지 않는 지금, 시바 료타로의 『패왕의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는 현실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힘을 줄 것이다.
천하 경영에 뜻을 둔 자,
지금 당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