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체 게바라의 코르도바, 네루다의 산티아고, 오스카 니마이어의 브라질리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흠모하며 도전한 남미횡단여행, 6개국 12개 도시 3만킬로미터를 달리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t's raining on Santiago)'는 30여 년 전 칠레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암호다. 화창한 아침 라디오 뉴스에서 일제히 내보낸 호우예보를 신호로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군은 대통령궁으로 진격했고, 아옌데 대통령이 이끄는 세계 최초의 선출 사회주의 정권은 막을 내렸다. 급격한 변화는 폭력이듯 칠레는 해묵은 반목을 반복했고, 마침 저자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에도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는 격렬한 시위대에 휩쓸려 함께 쫓겨 뛰며 ’낯익다‘고 느낀다.
우리는 대개 남미를 환상처럼 소비한다. 티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거짓말처럼 이어지는 고도 3천 미터 이상의 ‘황토빛’ 대지. 화이트아웃처럼 연이은 ‘순백’의 설산…… ‘눈이 시리다’는 상투어를 외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 총천연색 덩어리들이 거침없이 눈속을 파고들고, 그 광대한 캔버스 위에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옷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열이 더해지면서 급기야 현기증까지 인다. 그 아찔한 색채의 향연 속에서 우리는 슬그머니 동의하고야 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난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하지만 남미의 환상은 사실 적나라하고 격렬한 현실의 산물이고, 그래서 들여다볼수록 우리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세계 5대 부강국’으로 꼽히며 고공비행하다가 급격히 쇠락한 후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나, 현대사의 비극이 정리되지 않은 채 끝없이 반복되는 칠레가 그러하다. 유럽 정복군에게 어이없이 섬멸당한 ‘잉카 영욕의 역사’ 페루, 우주전쟁 시대에 게릴라전을 벌이는 ‘신념의 사파티스타’의 멕시코, ‘이념구현(브라질리아)’ 혹은 ‘자연주의(쿠리치바)’ 등 미래에 대한 돌파구를 상호모순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브라질도 그러하다. 감추거나 두려워 않고 있는 그대로 정열적으로 추구하기에 여행객은 ‘제3자적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깊숙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남미 6개국의 12개 도시를 돌면서 그들의 역사, 문화, 이념, 열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여행글이다. 성의 있게 학습된 남미의 역사가 있고, 기자 특유의 촉수로 잡아낸 세밀한 인간 묘사가 있고, 거기에 오스카 니마이어(현존 최고의 건축가. 브라질리아 건축), 마우리시오 마크리(보카주니어스 구단주. 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베아트리츠 아우로라(사파티스타. 화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신의 도시>의 감독), 카를로스 카레라(<아마로 신부님의 범죄>의 감독) 등 동시대 남미를 고민하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더해져 남미를 한층 가깝게, 더욱 풍성하게 느끼게 한다. 글을 읽다 보면 어리숙한 청년이 “우리 세기에 가장 위대한 인간, 체 게바라(사르트르)”로 거듭나듯 성숙해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퇴보하는 안전함 대신 모험을 택하라. 길 위의 삶에 매너리즘은 없다’
열정과 냉정이 뜨겁게 교차하는 대륙에서 만난 12개 도시, 12개 빛깔의 삶
지나치게 ‘다이나믹’해 사람의 진을 빼곤 하는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속절없이 허물어지면서 남을 짓밟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몰두하거나 진저리나는 매너리즘의 일상을 간신히 견뎌내는 두 가지 길만이 강요되는 일상 속에서 “떠나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웅얼대던 저자는 마침내 남미행을 결행한다. 무언가 새롭게 채워야 한다면 오래 갈망하던 그곳, 대학 시절의 우상 체 게바라부터 시작해서 왕가위 감독이 존경을 보낸 마누엘 푸익(<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 로맨틱 코뮤니스트 시인 파블로 네루다, 우주선 도시의 설계자 오스카 니마이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대륙이어야 한다는 막연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배 하나 믿고 멕시코로 날아간다.
거기서 시작된 그의 100일짜리 3만 킬로미터 남미횡단 여행은 12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세계의 배꼽’ 쿠스코, ‘사라진 공중도시’ 마추픽추, ‘로맨틱 은광도시’ 과나후아토, ‘남미의 관문’ 멕시코시티, ‘탱고와 축구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 ‘삼바의 천국’ 리우데자네이루처럼 유명한 곳부터 ‘외계 같은 지구’ 브라질리아, ‘미래의 녹색도시’ 쿠리치바, ‘혁명가의 고향’ 코르도바, ’테킬라 마을‘ 과달라하라처럼 지나치기 쉬운 도시도 있다. 남미를 문화적 기호로 오래 섬겨오던 여행자의 감상들은 우리에게 편안한 조언으로 다가온다. 가령 케추아 족 여인들의 머리 위에 얹힌 남성용 중절모에서 역사의 변화를 생각하고, 오로스코의 벽화 속 이달고 신부에게 ’사회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 영역‘을 묻고, 잉카의 12각 돌 앞에서 ’수천 년을 견뎌내는 생명력으로도 현재를 이겨내기란 힘든 것이구나‘를 되뇌는 식이다.
여행을 끝내며 저자는 말한다. 얄팍한 선입견쯤은 가볍게 용해해버리는 거대한 대륙 남미에서 내가 배운 것은 ‘길 위의 삶’이었다고. 안락한 삶이 주어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해볼 ‘오늘’이 주어지기에 행복한 것이었다고. 지루한 일상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축복이었다고. 다시 직장생활의 매너리즘으로 ‘기꺼이’ 진입한 그는 요즘도 수시로 되뇌곤 한다. ‘안전한 삶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나는 광야로 나설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