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게 내 인생입니다, 내 하나뿐인 인생이라고요. 나는 유대인의 우스갯소리 한가운데서 인생을 살고 있단 말입니다! 문제는 이게 전혀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거죠! 선생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벌벌 떨며 사는 건 더이상 못 견디겠어요! 남자가 되게 해주세요! 강하게 만들어주세요! 온전하게 만들어주세요! 착한 유대인 소년은 이제 됐어요. 남들 앞에서는 부모 비위나 맞추고 혼자 있을 때는 자지나 주물러대고! 이런 건 이제 됐다고요! 출간되자마자 미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격찬과 혹평의 소용돌이 속에서 삼십대 중반의 필립 로스를 미국의 대표 작가로 수직 상승시킨 문제작! ☆★ <타임> 선정 100대 소설 ★☆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100대 영문소설 ★☆ <가디언> 선정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소설 100권’ 전후 미국문학의 살아 있는 역사 필립 로스, 그가 서른다섯에 쓴 “악명 높은” 문제작! 1969년 2월, 필립 로스는 세번째 장편소설이자 네번째 책 <포트노이의 불평>을 출간한다. 책이 나오기 전에 뉴저지에 사는 부모님을 뉴욕으로 모셔온 다음 이 책이 불러일으킬 논란과 그것이 부모님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둘 만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로스지만, 막상 그 일이 닥쳤을 때 그 파장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 책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받은 이후 문단이라는 좁은 세계의 명사였던 필립 로스는 <포트노이의 불평>으로 단숨에 미국사회의 앙팡테리블로 부상한다. “그(<포트노이의 불평>의 성공이 미친) 영향은 너무 엄청났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미친듯한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서둘러 떠났습니다. 출간한 지 몇 주 안 됐을 때, 나는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로 가서 새러토가스프링스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작가촌인 야도에 숨어 있었죠.”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출간 몇 주 만에 <포트노이의 불평>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필립 로스는 작품의 선정성 논란 속에서 각종 미디어의 가십과 토크쇼 농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을 둘러싼 격찬과 혹평의 대립 역시 뜨겁고 팽팽했다. 문학비평가 어빙 하우는 “<포트노이의 불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일은 이 책을 두 번 읽는 일”이라고 비난한 반면, 버나드 로저스는 “이 소설이 1960년대 문화의 이정표라는 데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미국 도서관들은 사춘기 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상당한 양의 비속어들 때문에 <포트노이의 불평>을 금서로 지정했고, 호주에서는 이 책의 수입을 금지했다. 당시에는 외국 작가들의 책을 배로 실어오는 게 상례였는데, 호주 펭귄북스는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 인쇄소에서 제작한 다음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책을 배본했고, 이 일로 법정에 서기까지 했다. “내가 뭐에 맞서고 있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정말로 내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 자지뿐이었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이 건드린 금기 중 하나는 유대인 스스로 자기 민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한 금기였다. 필립 로스는 이미 1959년에 첫 책 <굿바이 콜럼버스>에서 상류층 유대인들의 도덕적 위선과 허위를 비판적으로 그려내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터였는데, <포트노이의 불평>을 통해 다시 한번 이 금기에 맞선 것이다. 그는 중산층 유대인 가정의 이민 2~3세대들이 성공에 대한 부담과 유대교의 규율에 얼마나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지 폭로하며 그에 대한 분노를 여과없이 표출한다.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벌써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해요, 고난당하는 유대인의 이야기가! 내 민족이여, 제발 부탁인데, 당신네 고난의 유산은 당신네 고난당하는 똥구멍에나 꽂아주세요. 나는 공교롭게도 한 인간이기도 하단 말이야! (본문 113쪽) 그러나 <포트노이의 불평>이 미국사회에서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도덕적 진지함 혹은 점잖음이라는 가치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화를 낸 건 어린애가 수음을 한다든지, 유대인 가족이 서로 싸운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생경했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나 같은 사람, 존경할 만한 지위와 이력을 갖고 있고 진지한 대의를 품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통제 불능의 존재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포트노이의 불평>은 앨릭잰더 포트노이라는 서른 중반의 엘리트 변호사가 정신과 의사 슈필포겔에게 자신의 불행한 일생을 토로하는 400쪽짜리 독백이다.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따라 자유연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포트노이의 독백은 무척 감정적이고 두서없으며 자주 곁길로 빠진다. 주인공 포트노이는 1933년 미국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박혀 있는 인물”인 어머니 소피는 유대교의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강요하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청결을 강조하는 사람으로, 누나를 똥이라고 불렀다고 포트노이의 입을 세탁비누로 닦아내고 집 밖에서 패스트푸드라도 먹었을까봐 아들의 대변까지 검사하려 한다. 흑인 빈민가를 담당한 보험 판매원인 아버지 제이크는 불평 한마디 않고 밤낮 없이 “개처럼” 일하지만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무시당하고 늘 변비와 두통에 시달리는 초라한 인물로, 아들 포트노이에게 자신의 아메리칸드림을 유산처럼 물려주고 싶어한다. 포트노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제약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견딜 수 없어한다. 이방인이라서 나쁘다느니, 유대인이라서 좋다느니! 사랑하는 부모님, 어쩌다가 나를 자식으로 낳아주신 두 분, 모르세요? 그런 생각이 약간 야만적이라는 걸? 두 분이 표현하고 있는 게 두 분의 공포라는 걸? 내가 두 분에게서 배워 가장 먼저 구별하게 된 것이 밤과 낮도 아니고,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도 아니고,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걸! (본문 112쪽) 포트노이는 부모의 바람에 반해 엇나가기 위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소녀들을 쫓아다니고, 부모의 구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위행위가 주는 순간적인 쾌락에 몰두한다.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밤이든 낮이든 포트노이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방식도 점점 기상천외해진다. “오, 그걸 내 안에 쑤셔넣어줘, 빅 보이.” 그 야유회에서 내가 우스꽝스럽게 좆을 박은 구멍 뚫린 사과는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빅 보이, 빅 보이, 오, 네가 가진 걸 전부 내게 줘.” 지하실 쓰레기통에 감추어뒀던 빈 우유병은 방과 후에 내가 우뚝 선 자지에 바셀린을 바르고 미친듯이 쑤셔대기 시작하자 그렇게 애원했습니다. “어서, 빅 보이, 어서.” 어느 날 오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정육점에서 구입한, 믿거나 말거나, 성인식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에 광고판 뒤에서 범해버린 발광한 간 조각은 그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본문 32쪽) 손장난을 하루에 한 번으로만 줄일 수 있다면. 아니 두 번, 아니 세 번만으로 버틸 수 있다면! 하지만 곧 영원한 망각이 찾아들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오히려 신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전에. 식사 후에. 식사 도중에.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극적인 동작으로 배를 움켜잡는 거죠. 설사예요! 그렇게 소리치는 겁니다. 설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