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윤대녕 · Novel
3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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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낚시통신> <제비를 기르다>의 작가 윤대녕의 첫 번째 장편 소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추리적 구성, 수수께기 같은 인물들의 등장, 섬세하면서 시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회와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기억, 시원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주인공의 삶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그부호' 잇는 독보적 감성

비주얼 마스터 웨스 앤더슨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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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부호' 잇는 독보적 감성

비주얼 마스터 웨스 앤더슨 신작

<페니키안 스킴> ·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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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해설_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Description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다. 영화가 끝나면 나는…… 철 지난 옛날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은 왠지 조금 쓸쓸합니다. 단짝친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면서도, 새로 지은 깔끔하고 모던한 상영관에 들어서면서도, 웬일인지 머릿속엔 한쪽 귀퉁이가 찢어져나간 포스터가 붙어 있는 허름하고 낡은 그 옛날의 동시상영관이 떠오릅니다. 햇빛 좋은 봄날이어도, 온몸이 다 녹아내릴 것 같은 무더운 여름이어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한겨울이어도, 마음은 낙엽이 다 떨어진 늦가을의 도시를 혼자 걸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어두컴컴한 상영관 안은 또 어떨까요. 그 옛날의 향수를 다시 느껴보려 극장을 찾은 관객이 아무리 많아도, 왠지 반쯤은 관람석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은 아닌가요. 텅 빈 극장 안에서도 굳이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더듬더듬 주춤거리며 자리를 찾아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이미 알고 있는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스크린 위를 떠다닐 때,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난 후에도 한참, 바로 극장을 나서지 못하는 우린 또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을까요. 옛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만나러 가는 한 길목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곳, 극장 역시 과거와, 추억과 대면하는 공간이 될 테지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나 기쁨 혹은 슬픔이나 괴로움처럼 어쩌다 끊어지고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적용되고 똑같은 속도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을 깊이 사색하며 살아가는 거다. 시간은 모든 것에 평등하다. 거기에 국경이란 없다. 만물만상, 우주에 관해서도 시간은 평등하다. 나는 오늘 이 절대적 평등을 믿기로 한다.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련다. 살아가며 느끼게 마련인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야지. 살아야겠다." 그렇지만, 그곳은, 과거 속으로 무작정 걸어들어가기 위한 공간만은 아닙니다. 시간에 데려다놓은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우리를 데려다놓은 그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을 테지요. 그래서 가끔 우리는, 옛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네. 영화가 끝나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돌아갈 걸세. 현실의 세계로 말일세. 여기가 바로 내 벌레 구멍일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회복한 공간 말일세. 그 옛날의 동시상영관이어도 좋고, 세련된 복합상영관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두 시간여, 추억과, 과거와 대면하고 난 후 우리는 시간을 되찾고, ‘나’의 이야기를 되찾습니다. 어떤 시간의, 사건의, 공간의 정점에 있던 어느 순간을 되찾고, 그 순간의 ‘나’를, 그리고 동시에 잠재적인 미래의 ‘나’를 되찾습니다. 현기증을 느끼며 출렁이는 파도 위에 서 있는 듯했던 두 다리는 어느새 조금은 불안해도 굳건한 땅바닥을 디디고 서 있습니다. 그렇게 극장을 나서며, 우리는 다시 ‘내일’을 이야기합니다. 숱한 상념들이 오가는 밤이었다. 나는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뒤숭숭한 꿈과도 같았던 지난 몇 년의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내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올 전혀 새로운 시간에 대해서도. 첫 출간된 지 십일 년 만에 재출간되는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먼 과거와 현재, 낯선 신비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오가면서, 삶을 회복하고 사랑을 발견하는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옛날 영화를 보러 가는’ 한 소중한 공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늘 전면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과거에 의해, 과거에 의지하여 과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삶에 있어서 뒤가 없는 앞이란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과거가 없는 인간은 늘 실종 상태임을 의미한다. 사람이란 가끔 과거라는 보금자리에 들어가 휴식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게는 단 한순간도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늘 시간의 줄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다. 과거 없이 산다고 해서 뭐 큰 지장은 없을지도 모르지. (……) 많은 사람들이 과거는 다만 시간의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외면해버리곤 한다. (……) 나는 현재의 나를 보고 있다. 나, 그런데 과연 내가 정말 나인가? 누가 나를 나라고 불러줄 것인가. 기껏해야 이렇게 말하겠지. 넌 그냥 보이는 대로의 너일 뿐이야. 물론 그렇다. 그러나 껍데기만 존재하는 나일 뿐이다. 나에 관한 어떤 비의도 신성도 간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늘 낯선 나. 결론. 모든 존재의 비의와 신성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한시 바삐 과거를 복원해야 한다. 매일매일 모래 위에 시간의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