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정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극영화 가운데 우수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1983년부터 매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을 발간하고 있다. 2004년 한국시나리오 선집에는 총 10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귀여워>,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빈집>, <송환>, <아는 여자>, <알포인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인어공주>, <태극기 휘날리며>가 수록되었다. ≪한국 시나리오 선집≫은 2004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우리를 흥분시킨다.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내놓았을 때의 첫 시사회가 기억난다. 영화가 끝난 뒤 기자와 평론가들은 한동안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날 저녁부터 흥분은 시작됐고, 이후 홍상수의 신작들이 나올 때마다 기대감은 팽배했다. 홍상수의 영화 속엔 여백인 듯 농밀하고, 무심한 듯 지독한 일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법을 한국 영화에 수놓는 하나의 기점을 마련했다.
압축하자면 홍상수의 영화는 두 가지 특징을 띤다. 하나는 자기 욕망에 복속당한 인간들의 지리멸렬하고 치졸한 생활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인간들을 거대한 순환 궤도 속에 얹혀 놓는 운명성이다. 홍상수는 궤도의 정체를 살짝 흘리는 것으로 시작해 인간들을 어슬렁거리게 한 뒤 최후에 궤도의 절대성을 선언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짠다. 그 궤도는 거기에 탄 인간들로 하여금 벗어나지 못할 삶의 실체에 수긍케 한다. 그 실체란 다시 그들의 너저분한 일상이고, 에누리 없이 직설적으로 꽂히는 그 일상의 적확성은 홍상수 영화에서 서늘한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낸다. 에서 미묘한 차이로 돌고 도는 남자와 여자의 기억,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남자의 두 번의 여정을 감싸 안는 거대한 운명의 굴레가 모두 그렇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헌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는 첫 장면부터 그들이 가진 것과 처지, 남자로서의 능력 따위로 대립한다.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 후배 문호에 부아가 난 헌준은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선화(성현아)를 찾아간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헌준은 문호보다 우위에 있는 자신을 내세우고 싶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선화는 남몰래 문호와 관계를 맺는다. (중략)
_<작품 해설>중에서
[저자 소개]
편찬위원(가나다 순)
유동훈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이유진 (주)영화사 봄 프로듀서
이정국 영화감독
이지훈 ≪필름2.0≫ 편집장
황조윤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