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사회를 알고 싶다면
에리히 프롬을 다시 읽어라!
이 책은 최초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을 온전히 복원해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시도한다.
1%만을 위한 승자독식 자본주의의 암울한 한국사회에서
그의 빛나는 혁명성을 계승해보자. 병든 사회에 맞서 싸우자.
왜 ‘싸우는’ 심리학인가? 왜 에리히 프롬인가?
≪불안증폭사회≫ ≪트라우마 한국사회≫의 저자 김태형이 이번에는 심리학의 실천적 해법을 기치로 내걸고 나섰다. 작금의 대한민국과 같이 병든 사회에 맞서는, 이른바 ‘싸우는 심리학’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결연히 싸움터에 들고 나온 무기가 자못 의아하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이 그 주인공인 것. 왜 오늘날의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심리 분석을 시도하면서 수십 년 전의 인물인 에리히 프롬을 호출한 것일까?
저자는 에리히 프롬이야말로 심리학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혁명의 심리학자라고 역설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후계자인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 단연 으뜸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는 심리학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는 심리학의 근본 문제 중 하나로서, 지금까지의 심리학은 사람을 ‘생물학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예컨대 사람의 기본적인 동기를 생물학적 본능(성욕)이라고 생각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서커스 동물 조련사들이 애용하던 훈련법을 심리학으로 이론화한 행동주의 심리학, 한때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로 악용되다가 최근 들어서 다시 부활한 진화심리학, 인간의 사고와 컴퓨터 혹은 인간 심리와 뇌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련의 기계론적 실험심리학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심지어 인본주의 심리학조차, 에리히 프롬의 탁월한 심리학 이론 중에서 ‘혁명성’을 완벽히 거세한 개량품 혹은 모조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혁명성을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기심과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따위의 거짓말에 속아 사람들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고, 병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심리학 본연의 의무라고 말한다. 특히 심리학이 단순히 개개인의 ‘힐링’ 또는 ‘자기계발’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최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심리학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다.
한국인, 나아가 현대인을 둘러싼 세계는 1%의 지배계급이 99%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다. 전 지구적인 승자독식 경쟁이 생활화되고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고립자로서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승부에 대한 강박감과 패배에 대한 공포, 개인 이기주의와 대인 불신감, 고립감과 무력감, 가학 심리와 같은 심리들을 갖게 된다. 인간의 심리는 당대의 사회 현실과 결부된 ‘구체적인 생활’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더 이상 병든 사회에 순응하거나 적응하려 하지 말고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든 세상에 순응해서 얻을 것이라곤 오직 정신병뿐이기 때문이다. 반면 세상을 변혁하는 활동을 한다면 개개인은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다수가 그렇게 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진짜 ‘힐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심리학자 김태형이 에리히 프롬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지금 이곳에 필요한 심리학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절박한 사유와 실천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프롬의 탁월한 심리학 이론과 빛나는 문장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의 한계는 무엇인지, 그의 이론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실천적 해법과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그래서 때로 프롬의 목소리는 저자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기도 하고,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는 이중창처럼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저자의 주장을 프롬이 강력하게 지지해주기도 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사이에 둔 동서양의 두 심리학자가 이렇게 만나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꽤나 인상적인 책읽기의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수많은 ‘거인’들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요즘처럼 한국인의 심리를 궁금해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를 연이어 강타하는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 그리고 유신독재로의 회귀라는 역사적 반동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심리학이 한국인의 심리를 해명하는 것은 절박한 대중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 본연의 의무이기도 하다. 심리학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래서 나는 심리학의 역사를 에리히 프롬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롬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라는 과학적인 명제에 입각해 인간 심리를 연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인간 본성’에 관한 독창적이고 탁월한 이론을 업적으로 남길 수 있었다. (…) 프롬은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가장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프롬의 심리학만큼 인간의 본질에 바짝 다가선 심리학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롬의 심리학을 알지 못하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한국인, 현대인,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간의 시대’는 프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머리말 중에서
[ 이 책의 주요내용 소개 ]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싸움터는 바로 여기,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 안에 있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사회이다. 즉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인간의 진정한 동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적이고 병적인 동기(예를 들어 이기심, 탐욕 등)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인 것이다.
- 현대 자본주의 사회, 즉 시장과 자본이 국가권력과 결탁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 상품’이 되어버렸고, 허울뿐인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 국가는 ‘그들’만의 권력일 뿐이다. 또한 ‘관료주의’와 ‘과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권위)이 생활의 전 영역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교육 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결국 승자독식과 사회 양극화로 귀결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란, ‘쇠사슬’이 ‘투명 쇠사슬’로 바뀐 것일 뿐, 인간은 억압 속에서 인간의 본성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 그 결과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특유하게 나타나는 고유의 감정들을 갖게 되었다. 즉 사회로부터 추방될까 두려워하는 ‘고립감’, 강한 자에 대한 복종과 의존 또는 학대에 따른 ‘무력감’,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이 억압된 데 따른 ‘권태감’과 ‘무가치감’(자존감 손상), ‘회의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고통이 심각한 정신병적 수준에 이르고 있다.
- 이러한 병적인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병적인 동기로 사람들을 이끈다. 첫째, ‘힘’에 대한 추종. 이는 무력감에 시달리는 자들의 비굴한 굴종 심리로서, 약한 자를 짓밟고 강한 자를 숭배하는 심리를 낳는다. 한국사회에서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도 바로 이와 연관된다. 둘째, ‘현실 회피’의 동기. 사람들은 이제 정말 중요한 문제, 즉 현실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잡담과 시시껄렁한 유흥뿐이다. 셋째, ‘대세 추종’의 동기.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