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엮은이의 다섯 가지 기획취지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의 기획자·엮은이이며, 저자·역자로도 참여한 정치철학자 조정환
후쿠시마 1주기를 맞아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을 기획·편집하고, 총 여섯 편의 글의 역·저자로 참여한 정치철학자 조정환이 「책머리에」에서 밝히는 이 책의 다섯 가지 기획취지는 무엇일까.
첫째, 이 책은 거짓말과 허구적 통계, 미디어를 무기로 핵질서의 재건을 도모하는 핵세력에 맞서기 위해, 후쿠시마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탐색한다. 특히 이 책의 <1부 감응하는 후쿠시마>에 후쿠시마 사태가 야기한 정서적 접힘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둘째,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역적 사건이 아닌 전 지구적 사건으로, 특수한 사건이 아닌 보편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세계 핵체제의 마디로서 탄생했다는 사실, 일본 정부가 보여준 원전사고에 대한 무능력한 대처, 핵체제가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국제사회의 대응 등이 후쿠시마 사태의 전지구적 성격과 보편성을 입증한다.
셋째, 이 책은 재난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의 상부구조이자 그 수단이며 양상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원전폭발의 충격은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이 “재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삶의 재난화는 불안, 가난, 강요된 이주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인지자본주의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원전폭발”은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자본주의적 재난의 한 극점이다. 재난을 노동의 인지화의 결과이자 그것의 조건으로 사고할 때 우리는 한계를 가늠하기 힘든 원자력의 파괴력이 우리 삶에 강제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유의미한 대안을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이 책은 후쿠시마 사태가 드러낸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갈등의 선에 주목한다. 오늘날 적대는 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형태와 전지구적·인지적 핵체제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전 지구적 핵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후쿠시마를 지역특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서도, 단일한 거대 쟁점으로 특권화해서도 안 된다. 다양한 세력들, 다양한 투쟁들의 전 지구적 수준에서의 연결과 네트워킹의 모색이 절실하다.
다섯 째, 이 책은 원전에 대한 비판과 거부의 다양한 관점들과 행동들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또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원전에 비판적인 관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더 큰 재앙을 기다리거나, 원자력에 대한 더 조밀한 관리를 주장하는 관점도 있으며, 풍력, 태양력 등 대체에너지의 사용을 옹호하는 대안에너지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에 본질적인 에너지 과잉가동이라는 쟁점을 우회하는 것이며, 심지어 핵추진 세력에 논거를 제공할 위험성도 지닌다. 인류에게 제기된 핵심적인 과제는 인간들 사이의,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인간과 기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지, 자본주의를 위한 처방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창조적 과제의 달성은, 원자력에 대한 반대운동이 성, 노동, 계급, 인종, 생명 등 온갖 종류의 자본주의적 차별에 대한 비판과 연결될 때만 가능하며, 또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운동들과 수평적으로 연결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2.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내용 소개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그것은 재앙의 바람인가 혁명의 바람인가?
일본의 반원전시위
2011년에 전 세계에는 두 방향의 바람이 불었다. 2011년 1월 중동에서 시작된 혁명의 바람은 유럽을 거쳐 2011년 9월 17일 미국 뉴욕의 주코티 공원까지 이어졌다. 또 한 방향의 바람은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북동부에 위치한 후쿠시마에서 불기 시작한 방사능 바람이다.
이 방사능 바람은 원자력의 “안전한 산업적 이용”이 군사적 이용과 구별되지 않을 뿐더러 위험은 더 산재(散在)해 있고, 더 상시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원전 신화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한 이래 원전 재가동, 원전 수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자극하고 선도하는 것은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를 서둘러 추진하고, 후쿠시마 이후 원전건설 후보지(삼척)를 발표한 세계 최초의 정부, 한국이다.
그러나 후쿠시마의 방사능 바람에는 혁명의 바람이 섞여 있다. 일본의 전례 없는 탈/반원전운동은 일본에 건설되어 있는 54개의 발전소 중 52개를 멈추어 세우며 일본의 전후 국민국가 체제를 해체시키고 있다. 3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한국을, 일본의 핵체제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버팀목으로 재건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역시 반원전 운동이 차츰 거세지고 있어서, 각국 “정상들”의 핵체제 재건은 쉽지 않아 보인다.
후쿠시마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렇게 서로 상반되고 복잡한 힘들이 얽혀드는 현장이다. 이 책은, 지구 곳곳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이 바람의 복잡성과 혼란을 사유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이다.
다양한 국적의 저자 15명이 시, 편지글, 에세이, 평론, 논문에 담아낸 후쿠시마의 바람
1부 <감응하는 후쿠시마>에서는 후쿠시마의 생명체들이 무엇을 겪고 느꼈는지를 담고자 했다. 박노해의 시 「봄비 내리는 아침에」를 비롯하여, 오는 2012년 4월 11일 총선일에 1980년 광주와 2011년 후쿠시마가 교차하는 텐트연극을 서울 광화문에서 공연하게 될 연극인 사쿠라이 다이조의 「미래는 ‘우리’ 것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었다. 사쿠라이의 텐트연극의 문제의식과 3·11의 연관성을 다룬 윤여일의 「몰락으로의 초대」는 일본에서는 이미 명성 있는 예술가인 사쿠라이 다이조에 대한 훌륭한 소개 글이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월간지 『현대사상』의 전 편집장인 이케가미 요시히코의 두 편의 에세이는, 3·11이 초래한 일본사회의 혼란을 비판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앨런 긴즈버그, 개리 스나이더 등 저명한 미국의 현대 시인들과 함께 원전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미국의 시인 앤 월드먼의 에세이와, 스위스 출신의 반핵 활동가이자 『핵융합』, 『가미가제 모차르트』 등 반원전 소설을 써 온 소설가 다니엘 드 룰레의 편지글은 서양에 당도한 후쿠시마 바람의 가닥들이다. 이렇게 1부의 글들에 포착된 정서적 접힘의 순간들은, 참사로 인한 깊은 슬픔을 딛고 우리가 비판과 모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2부 <비판하는 후쿠시마>에 담긴 여러 글쓴이들의 논문들과 편지들에는, 후쿠시마를 지역적 사건이 아닌 전 지구적 사건으로, 특수한 사건이 아닌 보편적 사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 책의 의도가 드러난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갈무리, 2012)의 저자로 지난 2월 방한하기도 했던 코소 이와사부로는 「3·11 이후의 지구적 아나키즘」, 「녹색 속에 감추어져 있는 송곳니들」에서 3·11 이후 생산되는 대안담론들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후쿠시마가 반자본주의 운동에 제기하는 과제를 정교화한다.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의 저자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실비아 페데리치, 자율주의 정치철학자인 조지 카펜치스, 『무엇을 할 것인가?』의 공저자이자 아일랜드 출신의 사회학자인 존 홀러웨이가 일본의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글들 역시 원전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전면에 제기함으로써, 후쿠시마는 일본의 어느 특정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세계 전역이 잠재적 후쿠시마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의 기획자이자 엮은이이기도 한 『인지자본주의』(갈무리, 2011)의 저자 조정환의 글 「인지자본주의와 재난자본주의 사이에서」는 재난자본주의와 인지자본주의라는 문제틀 속에서 후쿠시마를 사고함으로써 후쿠시마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의제로 위치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조정환은 “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