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첩보전을 통해 들여다보는 차가운 동서 냉전의 시대
동서 냉전기를 배경으로 이데올로기의 허위와 첩보 조직의 비인간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영국 작가 존 르카레의 데뷔작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존 르카레는 스파이 스릴러라는
대중 소설 작가임에도, 비평계와 언론으로부터 단순한 스파이 소설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찬사를 받아 온 작가이다.
영국의 사회학자들이 〈1960년대 초의 동서 긴장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 주는 데는 르카레의 소설이 필요했다〉라고 말할 만큼, 그의 작품은 냉전 시대의 상황을 탁월하게 반영한다. 르카레는 이데올로기의
우월성 경쟁이라는 헛된 꺼풀을 벗겨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깊이 있는 시선과 뛰어난 문장력은 르카레를 단순한 스파이 소설 작가 이상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르카레가 창조해 낸 주인공들은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임스 본드 유의 영웅적 인물과는 크게 다르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의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만 보아도,
사적으로는 결혼 생활에 실패했으며 공적으로는 정보부를 위해 일하면서도 그 안에서 빚어지는 갈등으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물이다. 동서간의 대립보다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조직의 충돌을 자주 그리는 점에서
르카레의 작품은 여느 스파이 소설들과 차별되는 것이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작품이다. 스파이 소설 사상 가장 사랑받는 주인공 중 하나인 조지 스마일리가 처음 등장해 사건을 풀어
나간다. 스마일리는 공산주의 가담 혐의로 자신이 면담한 외무부 직원이 자살한 사실에 의문을 품지만, 장관과 수상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는 상관 매스턴은 사건을 조용히 묻어 두려고 한다. 이에 심한 반발감을 느껴
사표를 던지고 나온 스마일리 앞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버티고 있다.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선과 악이라고 너무나 쉽게 믿었던,
혹은 믿고 싶어 했던 것들의 이면을 보게 된다. 인간의 욕망과 이상, 진실의 문제를 섬세하게 그려 냄으로써 동서 냉전 시대를 지나간 과거사로 밀쳐 두지 않고, 이미 대다수의 공산 진영이 무너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의미를 주는 작품이다.
줄거리
정보부 스파이로 일했으나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방첩 사무를 보는 조지 스마일리. 사랑했던 아내도 떠나고 청춘을 바쳤던 정보부에서도 선반 구석에 쌓인 어제 날짜 신문 신세가 된 그는 어느 날 페넌이라는
외무부 직원을 면담한다. 학창시절 공산주의에 가담했다고 페넌을 고발하는 투서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면담을 한 다음 날 페넌은 자기는 결백하며, 누명을 쓰게 되어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사실상 페넌에게 혐의가 없음을 인정했던 스마일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페넌의 집을
방문한다. 페넌 부인과 대화를 나누던 스마일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해진다. 그 전화는 죽은 페넌이 전날 밤 교환국에 신청했던 모닝콜이었던 것이다.
이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스마일리 앞에 겹겹의 방해꾼들이 등장한다. 사건을 조용히 덮어 버리려는 상관 매스턴, 스마일리의 집에 무단 침입한 괴한을 비롯해 모든 것이 의혹스럽기만 한 페넌 부인.
페넌의 자취와 페넌 부인의 진술, 괴한의 정체를 조사하던 스마일리는 마침내 페넌 부인에게서 페넌은 동독 정부의 스파이였으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도왔다는 진술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페넌의 배후에 있던 인물은
바로 전쟁 때 스마일리와 함께 일했던 디터 프라이라는 냉철한 스파이. 그러나 페넌의 활동은 스파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고, 8시 30분 모닝콜의 의문 역시 풀리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