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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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책 소개 “외로움이 뭘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겨져 있던 말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난다에서 유성원의 산문집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을 펴낸다. 저자가 독립출판물로 출간했던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가 세상에 나온 지 정확히 1년 만이다. 2019년 7월 게이 하위문화인 크루징을 주제로 한 <동성캉캉>이라는 전시에 맞춰 펴냈던 이 독립출판물은 그가 2014년부터 2016년도까지 쓴 일기를 엮은 것으로, 오늘날 에이즈 치료제이자 예방약으로 쓰이는 트루바다와 프렙, U=U 등이 성적으로 활발한 게이에게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그동안 섹스하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 과정에서 누락된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동성캉캉> 전시 이후로도 저자는 감염인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법령(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금지조항)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글쓰기를 계속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왜 타인들에게 들려져야 하는지 자문하면서도 꾸준히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이제 다시 한번 출판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당장은 제가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때 나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알 수 없어요. 2014년에서 2016년도까지가 지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고 있거든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를 출간한 직후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는 위와 같이 말한 바 있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2014~2016』에 2017~2020년의 기록을 더하여 완성되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예고했듯이 2016년 말 이후로 그의 일기는 보다 희망적으로 변화한다. 이는 그동안 후속편을 기다려온 독자에게도 달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 한 게이 남성의 속 깊은 이야기이면서 화장실, 공원 등에서 섹스 파트너를 찾는 크루징 문화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르포르타주이기도 하다. 또한 비감염인이 HIV치료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 HIV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프렙이나, 혈액 내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 수준으로 떨어지면 감염인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없다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등 HIV감염인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소개하여 근거 없는 편견들에 대항하고자 한다. 게이 커뮤니티에 속한 당사자로서의 감정, 그리고 사회적 조건에 대한 문제의식까지를 포괄하는 그의 책은 그 표지만큼이나 다채롭다. 이러한 그의 책이 정식출판된다는 것은 그동안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겨져 있던 말들을 직시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책의 해설은 나영정 활동가가 맡았다. 퀴어활동가로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와 ‘장애여성공감’ 등에 몸담고 있는 그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저자와 활동을 함께하며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2006년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에 참여하면서 젠더 이분법과 페미니즘, 여성과 남성의 범주와 외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는 그는 비혼모,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게이, 이주자, 청소년과 장애인 등의 모습을 담은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그런 남자는 없다 : 혐오사회에서 한국 남성성 질문하기』 등을 공저하기도 하였다. 그와 유성원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들은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그 평범하지 않은 일부분 때문에 주로 ‘비정상’으로 분류되곤 하는 이들이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에서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 ‘건강이’와 ‘안 건강이’라는 사회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주저없이 스스로를 후자로 지칭한다. 그럼으로써 건강이들에게는 소설처럼 느껴질 법한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여온다. 저자가 이를 과감히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어낸 이야기로 취급되어 그 진정성이 가벼이 묻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내가 남자의 좆을 빤다고 누군가 놀랄 순 있다. 하지만 그것에 놀란다면 내가 1955버거를 혼자 앉아 먹다가 불이 꺼지는 그 순간도 알아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공평함이다.” 좆을 빠는 행위에는 경악하면서도, 왜 그 행위 이면의 외로움은 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안 건강이들을 외롭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 구조에는 왜 눈을 감는지 저자는 묻는다. 타인과 감정적 신호를 당당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벽에 거듭 부딪힌다고 느끼는 사람의 현실은 다르다. “깨끗하게 씻고 렌즈 끼고 드라이하고 밖으로 나와도 호모 만나러 갈 수 있는 곳이 디브이디방이나 공원 화장실밖에 없”는, 안 건강이로 존재하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자살당할 위기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껏 그들의 입으로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나? 이 책의 지면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많은 이의 시선이 닿고,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킬 공론의 장이다. 이 공간에 항문섹스나 노콘 등의 단어가 인쇄되어 물성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은 그동안 ‘보여짐당하던’ 존재들이 스스로를 ‘보여주도록’ 한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당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고 저자는 말한다. “복구하거나 회복할 방법이 없”는, “안 자살”이 찾아와 자살 안 하게 해주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들을 저자는 피동적 표현들로, 그들의 언어로 그려낸다. 안 건강이들이 일상 속에서 무엇을 ‘당하고’, 무엇이 ‘되어지는지’를 담담히 서술함으로써 저자의 글들은 그들에게 얼굴을, 표정을 부여한다. 그들을 자살당하지 않게 한다. 외로움당하지 않게 한다. 더 이상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삼십대들의 모임이 가능하게 한다. 수시로 퍼지고 흩어지는, 결코 쌓아올려지지 않는 용기라는 작은 구슬.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은 그러한 용기들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쌓여 이 세상에 나오게 된 글이고, 증언이고, 현실이다. “모아둔 글로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저자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제 차차 알게 되지 않을까. “인간 세상에서 사람은 서로에게 연결되고 기대 있어야 하는 거 같은데 그럴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밤에 혼자 계속 걸어져야 하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걸어짐’과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이 책은 ‘이것도 성적 권리야?’라고 반문하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성적 권리를 확장한다. 가장 성적 권리를 얻을 자격이 없고 심지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상상되는 문란한 게이와 HIV감염인의 위치에서 성적 실천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계층, 사는 곳, 가족 관계, 성정체성에 대해 수용하는 방식, 정신건강 등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게 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행위나 관계가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공포와 분노, 수치심과 자긍심의 토대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고 느낀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나이, 외모, 소득, 인적 자원의 차이를 인식하는 일과 다양한 성적 욕망과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 그 안에서 건강과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우리 앞에 과제로 놓여 있다. ―나영정 해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