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숨은 건축 이야기
: 한 통의 편지로 시작돼 비와 전쟁과 철거 위기에서 살아남은 ‘빌라 사보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그의 유명한 주택 건축 작품으로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의 숨은 건축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저자인 장-마크 사보아(Jean-Marc Savoye)는 빌라 사보아 건축을 의뢰한 건축주 피에르 & 유제니 사보아(Pierre & Eugenie Savoye)의 손자로, 명작 건축의 히스토리를 사적인 가족사로 풀어내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빌라 사보아를 지으려 했던 이유와 건축 과정, 끊임 없이 사보아 가족을 괴롭힌 이 집의 문제점, 세계 제2차 세계대전 때 점령당하고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경제 발전 속에서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해진 사연, 이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략하게 역사를 되짚어보면 빌라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가 1928년에 건축 의뢰를 받아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1930~1931년에 걸쳐 지은 주택이다. 저자의 가족이 살던 이 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1945년까지는 독일군, 그 후에는 미국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 후 빌라 사보아를 되찾았을 때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돼 있었다. 결국 빌라 사보아의 땅은 농지로 전환됐고, 집은 창고처럼 쓰였다. 이후에도 빌라 사보아의 시련은 이어졌다. 1960년엔 푸아시 시가 고등학교 신축을 위해 빌라 사보아를 허물겠다고 결정하자, 전 세계 건축가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가 빌라 사보아를 극적으로 구해내, 이를 국유화하고 복원해서 대중에 공개했다.
이 흥미로운 이유는 지나칠 정도로 단도직입적이었던 건축주 유제니 사보아의 건축 의뢰서, 세 번에 걸쳐 진행된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설계도면 작업, 르 코르뷔지에가 직접 그린 스케치, 갖가지 불만 사항이 적힌 건축주의 편지와 이에 대응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아이러니한 회신, 빌라 사보아를 구출하기 위한 청원서와 당시 문화부 장관의 편지 등 이야기의 좌표를 명확하게 증명하는 옛 자료들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책은 가벼운 서한집과 건축 역사서의 기능도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행복했을까?’ 저자는 스스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가 살았던 빌라 사보아에서의 삶에 물음을 던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를 뒷받침할 어떤 서류나 사진, 영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필립 델롬(Jean-Philippe Delhomme)이 빌라 사보아에 살았던 사람들의 ‘찬란한 시간들’을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으로 재현해냈다. 그는 단지 그림만 그린 게 아니다. 장-마크 사보아의 글을 읽고 오랜 가족사를 찬찬히 들으며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그림으로 소환한 것이다. 책 속에 담긴 20여 점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드로잉은 이 책이 갖고 싶은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미스터리 그 자체인 예술작품
빌라 사보아에 관한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한 건축물을 걸작이라 부를 만한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간단치 않지만 베르사유 궁전이나 타지마할 그리고 베니스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 건축물을 의뢰한 사람들의 의지와 정성(기술적이고 금전적인), 참여자들의 재능, 완성된 프로젝트의 조화를 통해 우리는 특별한 작품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소박하거나 혹은 덜 웅장한, 아방가르드한 작품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왜 모나리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됐으며, 아이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의 검은 캔버스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을 걸작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빌라 사보아로 여행을 떠나보자.
(중략)
빌라 사보아를 깊이 이해하고 그 진가를 알고 싶다면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 만일 파리에 발길이 닿는다면 그리고 반나절쯤 여유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말고 빌라 사보아로 향하길 바란다! 단언컨대 그곳에서는 이런 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먼저, 너무나 명백한 아름다움이다. 라인의 간결함과 필로티에서 오는 가벼움, 파사드의 하얀 빛은 빌라 사보아가 완전히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바다에 우뚝 솟은 한 척의 미스터리한 선박 같기도 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공간 배치와 건축에 사용된 소재, 자동차를 위한 참신한 공간, 빛을 활용한 방식이나 안밖의 경계를 허문 구조……. 빌라 사보아의 모든 것이 놀랄 만큼 모던하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의심의 여지 없이 걸작과 마주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선동가처럼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 했다. 그러나 푸아시에서는 결코 그런 집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시적인 정서와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빌라 사보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먼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