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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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단편작가로 꼽히는 기 드 모파상 그가 그려낸 어둠에 대한 동경과 공포 에드거 앨런 포, 안톤 체호프와 더불어 19세기 3대 단편작가로 꼽히는 프랑스 최고의 단편소설가 기 드 모파상. 40년 남짓한 짧은 생애에서 작가로 활동한 기간은 단 10여 년이었지만 그동안 그가 남긴 단편은 무려 300편을 상회한다.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제자였고,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의 동인들과 함께 책을 펴냈으나, 하나의 문학 사조로 분류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 모파상의 단편들 중에는 에드거 앨런 포에 버금가는 환상소설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인 <밤La nuit>은 신문사와 출판사들이 모파상의 원고를 얻고자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그의 문명文名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쓰인 작품으로, 1887년 6월 14일 문예지 <질 블라스Gil Blas>에 발표되었다가 이듬해 단편집 <달빛Clair de lune>(초판 1883년)의 개정판에 실려 출간되었다. <밤>을 발표할 무렵 모파상은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광기와 환각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었다. 1885년부터 1886년 사이 그는 당대 정신의학계의 거장 장 마르탱 샤르코의 대중 강연을 듣기 위해 살페트리에르 병원을 드나들었다. 모파상뿐 아니라 에밀 졸라를 위시한 자연주의 작가들도 19세기 중반부터 정신의학이 비이성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에 주목하고 있었지만, 모파상이 광기에 관심을 가진 건 단지 시대적 조류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파상은 생애 마지막까지 광기의 곁에 그리고 광기의 안에 있었던 작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자주 히스테리성 신경발작을 일으키다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으며, 그의 동생 에르베는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모파상 또한 매독균 때문인지 유전병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 신경증을 앓다 자살 기도 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기할 만한 사건 하나 없고 화자 외엔 등장인물 한 명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지극히 짧은 소설 <밤>은 광기와 환각에 대한 냉철한 분석 끝에 모파상이 다다른 절망의 심연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토뇨 베나비데스의 거침없는 붓질 아래 형상화된 표정 없는 인물들과 19세기 파리의 밤풍경이 텍스트의 여운을 더욱 짙게 해준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이끈다” 나는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것은 고향이나 애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본능적이고 근원적이며 불가항력적인 사랑이다. 나는 내 모든 감각으로, 밤을 바라보는 눈으로, 밤을 호흡하는 코로, 밤의 고요를 드는 귀로, 밤의 애무를 느끼는 온몸의 촉각으로 밤을 사랑한다. _본문에서 <밤>의 화자 ‘나’는 밤을 몹시 좋아해서 해가 지면 활기를 되찾고 파리 시내를 산책한다. 그날도 ‘나’는 가스등과 별빛이 가득한 파리의 대로변을 거닐며 북적북적한 카페를 관찰하고,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찬란한 극장도 들어가보고, 개선문 앞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시간감각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행인들도 점점 드물어진다. 설상가상으로 가로등마저 소등되어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도움을 구하려 절규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행복한 몽상과 생의 기쁨에 취해 즐기던 밤 산책이 논리적인 인과율을 뛰어넘어 난데없이 출구 없는 고독과 공포,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생의 이면에 숨어 있던 죽음을 보게 된다. ‘어둠(=절대고독=죽음)에 대한 공포’를 기술하고 있는 이 작품의 일인칭 화자는 모파상 자신일 거라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화자가 겪는 어둠의 공포는 실명 위기에 처한 작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짐작에서이다. (중략) 나는 모파상의 이런 불안과 공포가 <밤>이라는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리고 <밤>이라는 제목 옆에 짐짓 괄호를 열고 써넣은 ‘악몽’이라는 부제에 주목한다. 괄호를 여는 그의 제스처에서, 그 부제에서 얼핏 그의 실낱같은 희망이 읽힌다. 악몽에서는 언제든 깨어나게 마련 아닌가.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의 안도감! 하지만 그는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정신병원의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어둡다, 아아 어둡다!”라고 부르짖으며 숨을 거두었다. 양쪽 눈의 기능이 모두 마비된 상태였다. _‘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