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사랑 혹은 광기,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
20세기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스캔들!
세계문학의 최고 걸작이자 언어의 마술사 나보코프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한 『롤리타』는 열두 살 소녀를 향한 중년 남자의 사랑과 욕망을 담고 있다. 나보코프는 원고를 탈고하고 미국의 출판사 네 곳에 보냈으나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 역시 처음에는 스캔들을 우려해 가명으로 출간할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실명으로 프랑스 파리의 한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롤리타』는 나보코프의 우려대로 출판과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서 영어판이 출간되자 첫 3주 만에 10만 부가 팔려나가며 180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이 소설은 1955년에 처음 출간된 후 50년 동안 5천만 권 이상이 팔린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유명해졌지만, 이후 작가가 겹겹이 숨겨놓은 수많은 은유와 상징 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새로운 의미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롤리타』는 문학적으로 재평가되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 운명의 여름날, 꿈에 그리던 나의 님펫을 만났다
롤리타, 나의 연인, 나의 사랑, 나의 생명……
열세 살 때 자신이 처음 사랑한 여자친구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이십 년 넘게 그 연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험버트 험버트.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후유증으로 그는 사춘기 이전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 그가 님펫이라고 부르는 여자아이들의 매력에 이끌리고, 그들에게 사랑의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서른일곱 살의 험버트는 치명적인 매력과 마력을 지닌 열두 살 소녀 롤리타를 만나 그녀에게 완전히 매혹당한다.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그녀의 의붓아버지가 되어 함께 미국 전역을 누비면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롤리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오랫동안 롤리타의 행방을 찾던 험버트는 극작가 퀼티가 그녀를 유혹해 타락시켰다는 생각에 그를 찾아가 복수한 후 체포된다. 험버트는 수감중에 자신의 비밀스런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어느 백인 홀아비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이 바로 그 기록이다.
‘롤리타’란 이름의 호명에서 시작된 소설 『롤리타』는 ‘나의 롤리타’를 다시 호명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절제된 표현과 정련된 문장으로 마치 시를 쓰듯이 산문을 쓰는 작가답게 나보코프는 시적인 문체로 에로티시즘의 정수를 담아냈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작품 곳곳에서 재치 있는 언어유희와 반어적인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고, 유럽과 미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익살스럽게 전하는가 하면, 정신의학과 프로이트 이론을 가차 없이 조롱하고 풍자한다.
언어의 마술사 나보코프의 최고 걸작
환희와 절망이 빚어낸 숨막히는 언어유희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롤리타』 속에는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
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롤리타』를 1955년에 교정지로 살펴본 이후 다시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자 처음엔 『앵커 리뷰』에 실은「『롤리타』에 대하여」라는글을 통해 자신의 불편한 심사를 털어놓는다. “어떤 국가 또는 사회계층 또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라고 일갈하면서 그는 문학의 존재이유가‘심미적 희열’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나보코프는 험버트의 입을 빌려서 아예 성性조차도‘예술의 시녀’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른바‘섹스’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으며“님펫들의 위험천만한 마력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다고도 말한다. 『롤리타』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한 ‘험버트-나보코프’의 문학관을 재확인시켜준다. “지금 나는 들소와 천사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을, 예언적인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까지 낳은 『롤리타』는 1967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데 이어, 1997년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소재를 제공하고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롤리타’는 나이 든 남자를 매료시키는 소녀를 표상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작품의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인공 험버트에게 롤리타가 불멸의 연인이 되었듯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불멸의 문학작품으로 남아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독자들을 기다린다.
새로운 번역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롤리타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펴내는 『롤리타』는 살만 루슈디의 『분노』 번역으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전문번역가 김진준이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십여 가지 『롤리타』 판본과 주해본을 참조하고 꼼꼼히 비교해가면서 꼬박 1년여를 사투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다. 수많은 은유와 상징, 패러디와 언어유희로 유명한 나보코프의 걸작인 만큼 번역에 최대한 공을 들였고,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의미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총 223여 개에 달하는 풍부한 주석을 달았다. 이 과정에서 신쵸샤에서 나온 일본어판의 번역가 와카시마 다다시의 역주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일본 나보코프협회 운영위원이기도 한 그는 일본 내 나보코프 최고 권위자로 한국어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역주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었다.
경력 20년의 베테랑 번역가가“번역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숙제”라고 말하는 이 작품에 쏟은 애정과 수고는 ‘옮긴이의 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롤리타』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힘을 주면 금이 갈 것 같아서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워낙 휘발성이 강한 문장이라 조금만 열어두면 향기가 다 날아갈 듯싶어 조마 조마했다. 번역 작업이 어려웠던 까닭은 물론 텍스트 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얼마만큼 드러내고 얼마만큼 감춰야 하느냐, 그 수위조절의 어려움이었다. 작가는 드러내고 싶어하는데 주인공은 감추고 싶어한다고 표현하면 말이 될까? 아니, 그 반대일까? (…) 원문 자체의 모호함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명료한 문장을 찾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541~542쪽)
“아름답고 환상적인 표현조차도 교과서처럼 정확하고 논리적”인 나보코프의 문장을 한국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김진준의 섬세한 번역으로 기존 번역 판본들에 비해 원고지 300여 매 분량이 되살아났다.
뿐만 아니라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등으로 유명한 문학평론가 로쟈 이현우가 해설을 붙이고, 주인공 험버트의 출생부터 파국에 일으기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롤리타』연대기’를 정리해 작품을 깊이 읽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더불어 한 편의 로드무비를 방불케 하는 롤리타와 험버트의 방대한 여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 ‘롤리타와 험버트의 미국 여정’을 통해 『롤리타』를 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따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독자들은 이 결정판으로 『롤리타』 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임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소설’
르몽드 선정 ‘세기의 명저 100’
모던라이브러리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