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 Poem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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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박연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더 ‘작은 것’에 집중한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 등 미시적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시의 일이며, 작은 것이 사소한 게 아닌 본질에 가까운 것임을 드러내는 일이 시인의 책무임을 말하는 듯한 58편의 시편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작은 인간」)… 그렇게 작아질수록 구별짓기는 무색해지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볼”(「구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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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1부 이곳에선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흰 귀/ 불사조/ 재봉틀과 오븐/ 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 소금과 후추/ 소설/ 울 때 나는 동물 소리/ 나는 당신의 기일(忌日)을 공들여 잊는다/ 유월 정원/ 마리아 엘레나 1/ 마리아 엘레나 2/ 진눈깨비/ 이월 아침/ 무보(舞譜) 2부 혼자는 외로운 순간에도 바쁘다 작은 인간/ 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 저녁엔 얇아진다/ 택배, 사람/ 주차장에서/ 베개 위에서 펼쳐지는 주먹/ 작은 사람이 키를 잰다/ 다이빙/ 혼자와 세계/ 뜨거운 말/ 수요일에 울었다/ 도착—당주에게/ 미운 사람과 착함 없이 불쌍함에 대해 말하기/ 구원/ 경주 1/ 경주 2—대릉원에서 3부 말하지 않는 시, 말하는 그림 나는 졌다—나의 탄생/ 쫓는 자와 도망가지 않는 자—상처 입은 사슴/ 나는 하반신을 잃은 치마—부서진 척추/ 우리는 저울을 사랑합니다—두 명의 프리다/ 밤은 파기된 사랑의 도래지—디에고와 나/ 욕조—물이 나에게 준 것/ ‘멍청하고 과격하게’ 연주할 것—머리카락을 잘라버린 자화상/ 상처 몇 개—단도로 몇 번 찌른 것뿐/ 사랑은 잠들었다—<나를 위한 위로>를 위한 드로잉/ 청동거울—나는 틀렸었지… 나는 틀렸었지…/ 키키, 키키, 키키키—슬픔의 온도 재기 4부 돌멩이가 조는 걸 바라보는 일 초혼(招魂)/ 밤안개에서 슬픔을 솎아내는 법—1988/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초록유령을 위한 제(祭)—2022-10-29/ 음악의 말/ 피아노 연습/ 형용사로 굴러가는 기차/ 사랑으로 치솟는 명사/ 안녕, 지구인/ 수업시간/ 시인하다/ 당신에게/ 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겪었지요/ 파양/ 우산 사세요/ 빗방울 쪼개기/ 죽은 새 발문 | ‘공들여 추락하는’ 불사조의 눈부심 신미나(시인)

Description

“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깨트림에서 비롯되는 탄생 헝클어짐에서 비롯되는 사랑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세계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박연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펴낸다. 소시집 『밤, 비, 뱀』(현대문학, 2019) 이후 5년 만이자, 등단 20주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 2007) 속 삶과 세계를 부정하며 생살을 찢는 아픔을 거침없이 말하던 20년 전 박연준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며 쓴 뜨거운 슬픔의 시세계에서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 수도 있게”(신형철,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해설에서, 문학동네, 2012) 되었다. 이후 “은밀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뿜어나오는 명랑하고도 발랄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조재룡, 『베누스 푸디카』 해설에서, 창비, 2017)이라는 평을 받으며 매혹적인 리듬감을 펼쳐보인 그는 “내 시는, 내가 쓰고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이다”(『밤, 비, 뱀』 수록 에세이에서)라 말하며 고요한 밤의 자리를 독자와 나누기에 이르렀다.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더 ‘작은 것’에 집중한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 등 미시적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시의 일이며, 작은 것이 사소한 게 아닌 본질에 가까운 것임을 드러내는 일이 시인의 책무임을 말하는 듯한 58편의 시편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작은 인간」)… 그렇게 작아질수록 구별짓기는 무색해지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볼”(「구원」)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죽음을 사고파는 것/ 작은 죽음을 사랑한다는 것/ 작은 죽음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을 아파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큰 것도 작은 것들이 촘촘히 모여야 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는 결심은 시집 곳곳에 흩뿌려진 ‘깨트린 것/부서진 것’들과 만나 이상하고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낸다. ‘작은 인간’을 향한 몰두가 박연준 시세계가 당도한 지금의 얼굴이라면, 능동적으로 깨트리거나, 무언가에 의해 부서지는 것에 대한 발화는 그의 시세계가 그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구축해온 구심점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탄생은 깨트림(破)에서 비롯한다. 결집보다는 해리, 합체보다 해체, 의미의 유기적 통일성보다 비의미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헝클어짐이다. “헝클어짐은 사랑의 본질이라고/ 수렴될 수 없다고/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며 동그란 생을 파열시키는 일”(「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이라고. 사랑은 이제 막 죽음의 산도(産道)를 빠져나와, 축축한 껍데기를 머리에 얹고 다시 태어났다. _신미나 시인, 발문 「‘공들여 추락하는’ 불사조의 눈부심」에서 이곳에서는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깨지면서 태어나 휘발되는 것 부화를 증오하는 것 날아가는 속도로 죽는 것 (……)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며칠째 미동도 않잖아.” 내가 말하자 날아가는 조약돌 돌아와서는 아직이요—, 한다 _「불사조」에서 시집 제목으로 쓰인 시구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의미심장하다. 사랑이 죽었을까봐 걱정하는 것으로도 읽히고 아직 죽지 않았을까봐 확인하는 것으로도 읽힌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일의 두려움으로 읽히는 동시에 그것을 기다리는 자의 들뜸으로도 읽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마가 깨질 것을, 날아가는 속도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불사조와, 사랑이 ‘아직’ 죽지 않았다 유보적인 답변을 내놓는, ‘아직’ 깨져본 적 없어 보이는 조약돌의 대화라는 점에서도. 출간을 앞두고 편집자와 주고받은 짧은 인터뷰에서 시인은 제목으로 삼은 시구에 대해 “우리가 사랑하며 뒤척일 때 가질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이 담겨 있”으며 “이 요청이 시집의 얼굴이었으면 했”다고 답했다. 사랑의 시, 욕망어린 서늘한 밤의 사랑부터 펄펄 끓어 주체할 수 없는 사랑까지, 불사조의 무모함과 대담함을 닮은 사랑까지, 우리가 박연준 시세계에 기대하는 사랑의 그러데이션은 이번 시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물론 그것을 음미하는 데 고통이 수반되리라는 것 또한 그의 독자라면 짐작할 테다. 고통의 중심이 살을 좀먹으며 안착한다, 내 영혼에 십자가에 못박힌 건 내가 아니다 십자가가 내게 와 박혔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십자가가 계속, 내 속으로 이양되려는 것 _「나는 하반신을 잃은 치마—부서진 척추」에서 사랑을 낭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이제 얼굴은 쓰레기통이야 죽은 비가 얼굴 위로 쏟아진다 내가 못생긴 건 슬픔이 얼굴을 깔고 앉았기 때문 짜부라트렸기 때문 (…) 결국 병은 수용체에게 가는 거야 수용을 허락한 처소에게 나는 그 처소를 몇 군데 알지 걱정 말렴 사랑은 깨끗이 나았다 그게 사랑인 줄 몰라볼 정도로 _「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에서 한편 시인과 화자를 동일시하는 것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으나,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건너가며 이번 시집이 쓰였다는 것을 곱씹게 하는 시편이 눈에 띈다.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_「시인하다」에서 시세계의 변화는 시인의 생물학적 나이, 그사이의 경험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박연준 시인의 경우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같은 시) 산문집과 장편소설을 통해 다른 몸 다른 목소리를 써온 시간이 시쓰기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으리라. 이전 시집들에 비해 죽음만큼 늙음도 구체화되었다는 점이 그 연장선상에 있는 변화 중 하나라 말할 수 있을까? “늙는다는 건/ 시간의 구겨진 옷을 입는 일”이다. “모퉁이에서 빵냄새가 피어오르는데/ 빵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빵을 굽듯 “그의 등, 얼굴, 미소를/ 구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재봉틀과 오븐」) 그럴 수 없는 우리는 굽는 것보다는 깁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고, “사랑과 늙음과 슬픔, 셋 중 무엇이 힘이 셀까” 하는 시인의 물음에 재봉틀 앞에서 놀리던 손을 이따금 멈출 것이다. “무엇도 꿰매지 않으면서”.(같은 시) 시집의 도입부에 ‘불사조’가 날고 있다면, 시집의 마지막에는 ‘죽은 새’가 누워 있다. “부리를 안쪽으로 묻은 채/ 가느다란 다리를 뻗고 죽은 새”. 시인은 “어떻게 왔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당신은 다 살아보았다”고 한다.(「죽은 새」) 불사조에게는 이미 여러 번 일어났을 일이다. “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겪었”고 “밤이 한 올 한 올 빚은, 캄캄한 머리카락을 가”진 것처럼.(「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겪었지요」) 이처럼 반복되는 탄생과 죽음과 탄생의 굴레 혹은 신비 안에서 ‘작게’ 말하는 ‘작은 인간’을 지향하게 된 시인이 세밀하게 그려나갈 ‘작은 우주’가 우리 앞에 새로이 열리고 있다. ◎박연준 시인과의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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