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고 힘들어할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나를 괴롭히는 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라
★★★
20만 독자가 선택한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
당신은 어떨 때 타인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가?
연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 상사에게 갑질과 성희롱을 당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별 생각 없이 SNS에 올린 사진이 생판 모르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경솔하다’ ‘잘못했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해서 괴롭고, 그런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든 상반된 감정에서 고통받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는 괴로운 일이다.
SNS 등 온라인에서 선을 넘은 비난과 욕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난의 대상은 연예인, 일반인, 기업 등등 다양하며, 비난 이유는 명백한 잘못에서부터 단순 실수, 무지에 의한 논란, 근거 없는 오해까지 여러 가지다. 비난의 말들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고 당사자와 관계도 없는데, 강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마구 쏟아낸 말들이 아주 많다. ‘저런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호되게 벌을 받아야 해’, ‘난 옳고 쟤는 틀렸으니까 심한 말을 퍼부어도 괜찮아’…. 이또한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게 공격적인 말을 퍼붓고 완전히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용서할 수 없는’ 감정이 폭주한 상태다.
책 《정의 중독》은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을 뇌과학의 관점으로 풀어내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지 살펴본다. 일본의 저명한 뇌과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나카노 노부코는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 하지 않는 상태를 정의에 취해 버린 중독 상태, 이른바 ‘정의 중독’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누구나 정의 중독 상태에 빠질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을 찾아 벌하는 데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쾌락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쾌락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정의감에 중독된 뇌는 항상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 중독 행위로 인해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상대를 미워하고 매도하는 자신을 후회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타인의 실수를 비난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순간의 쾌락을 얻는다 해도, 매일 타인의 언행에 강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결코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뇌 구조를 이해한 뒤,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분노와 불만, 미움의 감정을 품지 않고 평온하게 사는 편이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은 분명하다. 책 《정의 중독》은 그러한 삶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여 마음 편히 살아가기 위한 비결을 알려 준다.
양날의 검이 된 SNS
인터넷 시대에 더 불편해진 관계들
‘내가 무조건 옳다!’ 모두의 마음속에 잠재된 정의 중독
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청순한 모범생 이미지로 잘나가던 여성 탤런트가 불륜을 저질렀다, 식당 종업원이 문제될 만한 영상을 장난으로 SNS에 올렸다, 대기업이 광고에서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물론 불륜은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식당 영업을 방해할 만한 영상을 올리는 행위는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또 광고에서 특정 사람들을 차별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고 당사자와 관계도 없는데, 강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생긴다면? 유명인의 불륜 스캔들이 보도될 때면 “어떻게 저런 짓을! 저건 절대 용서하면 안 돼”라며 비난을 퍼붓고, 누군가의 문제 영상이 올라오면 그가 일반인이더라도 그는 물론 가족들의 신상 정보까지 공개해 버린다. 또 기업의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당 상품과 관계없는 부분까지도 죄다 들추어내 따지고 든다.
타인을 용서할 수 없는 감정의 발로는 뇌 구조와 큰 관련이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주장하는 상대를 가만두지 않는다거나 특정 팀을 응원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는 정의 중독의 아주 흔한 예다. 직장에서의 권력형 갑질 역시 경험에 근거한 본인만의 정의를 끼워 맞추고 벗어나지 않도록 강요하는 정의 중독의 양상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구속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상사나 선배의 입장에서 경험이 부족한 부하 직원이나 신입 사원을 보면,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거지?’ ‘내가 신입일 땐 저거보단 잘했는데’ 하고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상대를 위해 가르쳐 주려던 의도였더라도 ‘난 옳고 넌 틀렸어’라는 사고 회로에 갇히면 그것이 바로 정의 중독 상태이며, 상대방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형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TV에서 부모가 자식을 학대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할 때 시청자인 우리는 그야말로 무관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의를 확보한 상태에서 ‘나는 저렇게 아이를 학대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속으로 ‘미친 놈, 저런 건 봐주면 안 되지! 자기도 당해봐야 돼! 저런 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해!’라고 생각하며 신상을 털거나 SNS에 과격한 의견을 쓰는 행위, 그것이 바로 정의 중독이다. 정의 중독의 사고 패턴은 한번 생기면 멈출 수 없기에 위험하다. ‘저런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호되게 벌을 받아야 해’ ‘난 옳고 쟤는 틀렸으니까 심한 말을 퍼부어도 괜찮아’. 사람이 본래 갖고 있던 냉정함, 자제력, 배려심, 공감력 등은 모두 사라지고, 평소와 너무도 다른 공격적인 인격으로 변해버린다. 자신과 다른 것을 모두 악(惡)으로 간주하며, ‘몰상식한 인간’이라 규정짓고 어떻게 공격할지 고심하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각각의 집단마다 다른 정의 기준을 가지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속한 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하는 습성을 지녔다. 자신의 집단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행위를 정의라 생각하고,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로 인식한다.
이런 상황을 가시화한 것이 바로 인터넷의 출현, 특히 SNS의 보급이다. 실제로 타인을 대면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잘 참으면서,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비대면 세계에서는 공격적으로 변해 인신공격성 댓글을 쓰는 이른바 ‘악플 테러’를 한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 대신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의 표현인 셈이다. 나와 상반된 의견을 가진 대상을 어떻게든 찾아 싸움을 걸면 그만큼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정의의 수호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SNS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집단에서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게 된다. 어느새 자신은 옳고, 자신의 주장이 곧 정의이며, 그것이 세상의 진리라고 믿는 확증 편향이 나타난다. 누구나 정의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며, 결코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 중독 행위에 쾌감을 느낌과 동시에 상대를 매도하는 자신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괴로움 역시 밀려온다. 상대를 실컷 욕하고 난 뒤, 돌아서서 후회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이다. 서로 헐뜯고 매도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증오심만 점점 커져 가는 세상. 타인의 실수를 비난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순간의 쾌락을 얻는다 해도, 매일 타인의 언행에 짜증내며 분노를 느낀다면 결코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