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 먹는 기분

정은 · Essay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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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책을 듣는 시간>으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은 작가가 <커피와 담배>에 이어 산문집 <기내식 먹는 기분>을 펴냈다. 작가는 15년 동안 세계 여러 도시에 한두 달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왔지만, 흔히들 하는 ‘외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생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아 유령처럼 서성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숨이 막혀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가 돈이 떨어지면 되돌아와 최저 시급 생활자가 되어 돈을 모으고 다시 비행기 티켓을 사는 작가의 이야기는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비행기를 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기내식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먹으면 그 맛에 실망한 경험들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또 기내식을 기대하고 만다. 작가는 ‘기내식 먹는 기분’의 핵심을 비행기가 멈추면 내 삶도 멈춘다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설명한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살아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지상에 두고 온 고민들은 잊게 된다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사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인도와 미국을 여행하고,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해준 서울의 공간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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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프롤로그 I 길의 뒷모습 순례자의 길 • K • 체리를 나눠 먹은 한국 사람 • 땅의 꿈 • 길의 뒷모습 • 고마워요 • 개의 순례를 돕는 사람 • 별들의 들판 • 모르는 일 II 빛의 도시 객창감 • 아그라 • 기차 안 • 빛의 도시 • 손모니 호텔 • 타블라 • 바라나시의 밤 • 갠지스강 • 옥상 • 바르카 • 타히티 프로젝트 III 도시의 지문 지구의 거울 • 연인들 • 도시의 지문 • 보이지 않는 사람들 • 뒤집혀진 인간 •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IV 사랑의 방 살길 • 5,000원의 시간들 • 세 번 만난 손님 • 그 책방 • 사랑의 방 • 합정동 359‐33번지 • 로스트북 에필로그

Description

길의 뒷모습, 사람들의 진짜 모습 그가 산티아고로 향한 건 ‘순례자의 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해서다. 악마가 걸작을 쓰게 도와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작가는 8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카미노를 걷는다. 파울로 코엘료를 원망하며 걷던 여정은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오직 산티아고에 도착해 이 걷기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만 남긴다. 그 길에서 작가는 많은 것을 버린다.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짐들을 하나씩 버리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끝까지 포기 못 한 수동카메라와 필름과 책과 노트 덕에 우리는 작가의 시선으로 잡아낸 멋진 사진들과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한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남은 이것들이 정은 작가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작가는 카미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방송작가 K, 불문율인데도 직업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전 국회의원, 전기도 화장실도 없지만 음식만큼은 영혼을 담아 내놓은 알베르게의 주인, 불편한 몸으로 구걸을 하며 순례길 여비를 마련하는 진짜 순례자들, 경멸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불쾌해하는 고급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 그리고 에리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기내식 먹는 기분》엔 로맨스 소설보다 더 달콤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가득하다. 작가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싶었던 유일한 외국인의 이름은 에리히(작가는 산티아고에서 돌아오자마자 프랑스어를 배우지만 프랑스에 에리히라는 이름이 없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그는 군인 복장을 하고 복스라는 개와 함께 움직인다. 선한 눈빛과 개에게 쏟는 애정에 끌려 어설픈 영어와 몸짓으로 열심히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국 여자애에게 기회를 빼앗기기도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가 보낸 관심과 배려가 ‘혼자 있는 외롭고 불쌍한 소녀’에 대한 연민이었음을 깨닫지만 또다시 마주치면 산티아고까지 같이 걷자고 제안하기로 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두 갈래 갈림길이 나타나고 잘못된 선택을 한 작가는 산티아고 여정이 끝날 때까지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작가에겐 아직도 떠올리면 저릿저릿한 통증처럼 다가오는 그가 다른 이들에겐 그저 ‘냄새 나는 군인 아저씨’였다는 것. 산티아고에서 못 만나면 살아생전에 다시 볼 가능성이 없어서, 산티아고를 떠나면서 조금 울었다. 사진 한 장 안 찍고 연락처 주고받을 생각을 미처 못 한 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지만 전 생애를 통틀어 단 한 시간 정도만 마주 볼 수 있는 인연이었다면, 그 시간을 사진 찍는 데 낭비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다. 그 눈빛과 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도 떠올리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통증이 오듯 저릿저릿한 에리히,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개와 함께 이 지구 위에 살고 있다. (70쪽) 긴 여행을 앞두고는 소개팅 같은 걸 하지 말라. 상대가 아무리 맘에 들어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하지 말자. 정은 작가가 전하는 조언이다. 여행이 끝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만이 소개팅 같은 걸 하고, 그 주인공은 역시나 작가다. 작가는 소개팅 상대로부터 선물 받은 ‘객창감’이란 단어에 가슴 설레며 두 달간의 일정으로 인도로 떠난다. 인도를 여행하고 나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서. 하지만 처음 배낭여행을 떠난 젊은이에게 “타국에서 혼자 머무는 방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 같은” 객창감을 느낄 만한 안락한 숙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는 새로이 다른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달빛이 들지 않는 밤이 쓸쓸해서 그랬는지 나는 객창감을 잃고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사람한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외로움 때문인지, 낯선 도시가 주는 흥분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여행 탓으로 돌렸었다. 여행이, 이 도시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아서 그랬다고. (108쪽) 빛의 도시에 쌓이는 소리 작가에게 인도는 시간 위로 쌓이는 소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타지마할은 사랑에 관한 소리의 겹이 쌓여 응축된 에너지가 모인 우주의 별 같은 곳이고(<아그라>), 바라나시의 옥상들엔 여인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옥상>). 빛의 도시 바라나시에는 성과 속이 함께 존재한다. 갠지스강의 성스러움과 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뱅갈리토라의 세속성은 뗄 수 없는 하나의 고리와도 같다. 작가는 섬세한 촉수로 사람들과 오토바이, 소들이 뒤섞인 골목길의 먹먹한 소리를 감각한다. 그러다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북소리에 홀려 ‘타블라’라는 악기를 배우기도 한다. 아니, 타블라의 스피릿만. 보름치 경비로 악기를 구입하고 일주일 남은 일정을 타블라 배우는 데 헌신한 뒤 커다란 북을 짊어지고 한국에 돌아와 한 번도 연주하지 못하고 몇 년 뒤에 다시 바라나시에 가서 타블라를 또 일주일 배우고 온다. 작가는 고백한다. 타블라 악기점에 오랜 시간 쌓여온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소리, 아름다운 침묵이 좋았노라고.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공간, 손모니 호텔. 작가는 누가 화장터 옆에 호텔을 지어놨나 호기심에 투숙하고, 방에서 시체 타는 광경을 내려다보고 시체 타는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에 에로틱한 기분에 휩싸여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사흘 만에 체크아웃한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 그 호텔에서 묵고 싶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먼 땅에 두고 온 거울 하나 미국의 피츠버그에 몇 달 여행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연인’이란 단어의 유래는 ‘거울을 들고 있는 사람’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방금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이란 단어에 그런 뜻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다. 거울을 들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를 연인을 뜻하는 말로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 위 어딘가엔 분명히 있을 것만 같다. (169쪽) 작가가 만들어낸 연인이란 단어의 유래는 그럴싸해서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서로 거울을 들고 비춰주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발전할 수밖에 없듯이 여행 역시 나를 성장시킨다. 그건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먼 땅에 거울을 하나 만들어두고 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기에 미국의 무인 탐사선 보이저호는 지구인이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해 쏘아 올린 거울이다. 그리고 보이저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떨어져서 나를 정확히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작가에겐 단기 아르바이트로 매번 다른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연극이고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최소한의 소비만 하며 한 달 머무르는 것이 진짜 삶처럼 여겨지는 시절이 있었다. 작가가 보기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지상에서 발이 조금 떠 있는 상태로, 유령처럼 서성이는 마음으로 사는 존재들.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너무 잘 알기에 오랜 시간을 세상의 낯선 도시에 출몰하며 지냈다. 그게 유일한 ‘살길’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고향을 찾아서 그런 그가 드디어 땅에 발을 딛고 조금씩 뿌리를 내려 강하고 단단해지는 공간을 만난다. 바로 ‘커피발전소’라는 카페이다. 작가는 커피를 마실 때만 느낄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낯선 도시에 이방인으로 있을 때 처음 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커피 잔을 앞에 두면 세상의 입장권이 잠시 생긴 기분이었다. 네가 누구든 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커피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지,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그런 고민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잔에 커피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 괜찮아졌다. (231-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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