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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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색 밤 불의 바람, 모든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난 그는 혼자서 자신만의 전쟁을 발명해냈다.” 황폐한 땅에서 부상자가 일어서듯 다시 시작된 페니엘가의 거대한 이야기 #실비제르맹 #천재 #마르케스 #마술적리얼리즘 #밤의책후편 #역사 #망각 #광기 #구원 #알제리전쟁 #68혁명 #프랑스문학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비견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역사적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쟁의 길목에서 살아간 한 가문의 백년의 광기를 보여준 소설 『밤의 책』(2020년 문학동네 출간). 『호박색 밤』은 실비 제르맹의 데뷔작이기도 한 『밤의 책』 출간 후 이 년 만에 발표된, 그 후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밤의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탄생을 알리며 수수께끼처럼 등장했던, 페니엘 가계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 샤를빅토르 즉 ‘호박색 밤’이 마침내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한 땅에서 부상자가 일어서듯 페니엘가家의 파란만장한 대서사시는 다시 시작된다. 『밤의 책』이 1870년 보불전쟁부터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을 관통하며 인간의 끝없는 광기와 잔인함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페니엘가의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면, 『호박색 밤』은 프랑스 북동부의 가상의 공간 ‘검은 땅’을 떠나 알제리와 파리 등으로 공간을 옮겨가며 전쟁이 지나간 후의 이야기, 알제리전쟁부터 프랑스 68혁명을 아우르며 망각 속 역사를 복원해내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상존하는 분노와, 결핍으로 인해 마침내 “혼자서 자신만의 전쟁을 발명”해낸 인물의 광기를, 샤를빅토르의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드러내 보인다. 실비 제르맹은 1991년 <마가진 리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자신이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알제리전쟁과 고문의 문제를 다루는 『호박색 밤』 한 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호박색 밤’이라는 인물의 혈통을 따져 그 조상들의 이야기를 간략히 풀어내려던 것이 한 권의 책으로 늘어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연상케 하는 한 가문의 방대한 서사시가 탄생한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말 번역본으로 1000쪽이 넘는 장대한 서사 속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페니엘가 가계도’를 책 끝에 실었다. 내가 처음으로 펴낸 그 두 권의 책은 본래 한 권의 소설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냥 『호박색 밤』이라는 제목의 소설 한 권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 소설은 알제리전쟁과 고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으니 그때 이미 악의 문제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인 ‘호박색 밤’이라는 인물의 혈통을 따져서 그 조상들의 족보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실 처음 책을 쓰고자 했을 때 그의 혈통을 따라올라가 족보를 밝히는 이야기는 그저 열 페이지 정도면 족할 것 같았는데 정작 집필 과정에서 그만 『밤의 책』이라는 독립된 한 권의 책으로 늘어나버렸다. _실비 제르맹(1991년 3월 <마가진 리테레르>와의 인터뷰) “샤를빅토르 페니엘, 후일 모두가 ‘호박색 밤’이라 부르게 될 그는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어 밤 속에서 싸울 운명이었다. 밤의 한밤에.” 전편 『밤의 책』을 추상적으로 환기하는 짧은 서장序章을 지나, 맏아들 ‘작은 북’ 장바티스트의 시신을 확인한 폴린이 온몸으로 절규를 내지르며 『호박색 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편인 바티스트가 전쟁에 나가 있던 동안 홀로 뱃속에 품고 지켜낸,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이었던 아이 ‘작은 북’이 사냥꾼들의 팔에 가로누인 채 뻣뻣한 주검이 되어 숲에서 돌아온 것이다. 전쟁이 모두 지나가고 수년이 흘러, 더이상 덧없는 죽음은 없으리라 믿었던 페니엘가에 닥친 첫번째 죽음. ‘그녀에게 미친 놈’ 바티스트가 전쟁에서 돌아오고, 폴린의 둘째 아들인 샤를빅토르의 탄생을 알리며 끝이 났던 전편 이후 시간이 흘러, 이제 샤를빅토르가 다섯 살, ‘작은 북’이 여덟 살 되던 해였다. 폴린은 정신을 놓고 아들 ‘작은 북’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그녀에게 미친 놈’ 바티스트는 주저앉아 울기만 한다. 페니엘 영감 ‘황금의 밤 늑대 낯짝’이 사라진 며느리와 죽은 손자를 찾아 수색을 진두지휘하는 동안, 집안의 막내 샤를빅토르는 무관심과 애정 결핍 속에 철저히 홀로 남겨진다. 그는 버림받은 채로 완전히 혼자였다. 배신당한 채로. 정말이지 한순간에 모두에게서 배신당한 참이었다. 형은 죽었고, 어머니는 미쳤고,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를 걱정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는 반항하듯 일어서서 그들 모두에게 외쳤다. 소외당한 아이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외침이었다. “당신들이 미워!”(23쪽) 숲에서 가까스로 되찾아 온 죽은 형의 시신에서 나는 악취와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채우는 동안, 샤를빅토르, 훗날 ‘호박색 밤 불의 바람’이라 불릴 소년은 분노와 울분, 증오를 먹고 자란다. 그는 죽은 형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앗아갔다고 여기며 타인과 정서적 교류 없이 자신만의 공간에 고립된 채 더욱 난폭해져간다.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다른 대상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고, 결국 고향 ‘검은 땅’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그는 파리의 지식인 대학생으로서 “과거에서 해방된 자,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 고통 없는 자가 되어 오직 순간의 무도덕적·무시간적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를 꿈꾸”(옮긴이의 말)고 쾌락만을 좇는 괴물 같은 인간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그는 주변에 상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모두로부터 저주받은 자,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 믿으려 애썼다. 자신은 눈 덮인 벌판 한복판의 얼음 속에서 산 채로 잡힌 도마뱀보다 세상에서 더 외로운 존재였다.(42쪽) 신화나 우화, 묵시문학을 닮은 “어떤 절규에 대한 인식” 마술적 리얼리즘이 살아 있는 이 소설은 전편 『밤의 책』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현실과 신화나 우화, 묵시문학을 떠올리는 서술이 돋보인다. 가령 이 소설에는 언덕에서 걸어내려와 죽은 아이의 묘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 땅속에서 전차를 달리며 고함치는 아이, 주인공이 노파를 좇아 폐허 속을 헤매는 장면, 장과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춤을 추다가 새가 되어버리는 여자,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카페 주인의 얼굴에 달려드는 죽은 아내의 환한 불길, 천사와 벌이는 싸움 등 환상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호박색 밤을 비롯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이하고도 원초적인 인물들은 어린 시절에 겪은 배신을 비롯해 삶과 역사가 가해온 상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산산조각이 나 있다. 그들은 현대사회에 고분고분하게 적응하여 개성을 상실한 인간 군상이 아니라, 마치 신화의 신들처럼 감정의 극을 향해 치달리다 파멸하는 비극적인 인간들이기도 하다.(옮긴이의 말) 아들의 죽음을 목도한 폴린이 내지르는 절규로 시작되는 『호박색 밤』을 두고 문학평론가이자 『밤의 책』의 역자인 김화영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실비 제르맹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원초적 외침(절규)의 다양한 변형”이고, 결국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참화의 고통과 비탄을 이기지 못하여 토해내는 절규”이자 “누대에 걸친 악과 고통의 진원”이라고 설명했다. 제르맹은 『호박색 밤』의 제사題辭로 프랑스 시인 에드몽 자베스의 말(“이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한 책의 책장이 넘겨지고 있다. / 이 책의 줄거리는 무엇인가? / 어떤 절규에 대한 인식.”)을 인용하기도 했다. 소설 속에 알제리전쟁부터 프랑스 68혁명을 묘사하며 망각 속 역사를 복원해내고 침묵 속 이름들을 되살려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열일곱 살에 파리로 떠났다 큰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구원’을 찾는 샤를빅토르의 성장 스토리를 중심으로, 새로이 주목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