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아프리카 문학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작가 치누아 아체베 나이지리아 식민 역사를 주체적으로 조망한 ‘아프리카 3부작’의 대단원 외래문화의 유입과 동족 내분으로 몰락해 가는 식민지 전통 사회의 비극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아버지’ 치누아 아체베의 장편소설 『신의 화살』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6)으로 출간되었다. 1964년에 발표된 『신의 화살』은 부커 상을 받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 다』(1958), 나이지리아 국가 상을 받은 『더 이상 평안은 없다』(1960)에 이어 나이지리아 식민 역사 를 주체적으로 재조명한 ‘아프리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치누아 아체베는 『신의 화살』에서 식민지하 혼돈 가운데 부족의 정신적 지도자가 중심을 잃고 몰락하는 모습을 통해 피할 수 없는 변 화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반목과 분쟁 속에서 예정된 파국을 맞는 식민지 전통 사회의 비극 적 행보를 처연하게 그려 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프리카 문학에 수여하는 뉴 스테이츠먼 족 캠 벨 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고 그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 외압과 내분의 혼돈 속에서 자멸을 부른 비극의 화살 영국의 나이지리아 통치가 본격화되던 1920년대, 여섯 마을이 함께 울루 신을 모시는 우무아로와 일찌감치 백인 문화를 받아들인 이웃의 옥페리 사이에 경계지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난 다. 이에 우무아로의 여섯 마을이 가진 회합에서 대사제 에제울루는 옥페리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전쟁을 막으려 하지만, 그에게 반기를 들며 옥페리를 찾아가 담판을 짓자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힘 을 얻는다. 결국 경고차 보낸 우무아로의 전령이 옥페리에서 살해되고 두 마을 사이에 끔찍한 전쟁 이 벌어진다. 백인 행정관 윈터바텀의 개입으로 전쟁은 일단락되지만, 에제울루가 우무아로에 불리 한 증언을 한 탓에 여섯 마을은 에제울루를 따르는 무리와 그를 배척하는 무리로 분열된다. 그사이 우무아로까지 기독교가 전파되자, 에제울루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눈과 귀가 되 어 달라며 아들 하나를 선교사 밑으로 보낸다. 한편 식민지 행정 문제를 고민하던 윈터바텀은 영토 분쟁 당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한 에제울루를 대(代) 족장으로 임명하려 하지만, 에제울루는 백인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옥에 갇힌다. 울루 신의 대사제가 아들을 이교도로 만들고 백인의 초대까 지 받았다며 비난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에제울루는 명성을 회복하고 권위를 되찾는 듯 보인다. 하 지만 감옥에서 분노와 적개심에 휩싸인 에제울루는 울루 신의 지휘 아래 백인이 아닌 우무아로의 동족들을 향해 파멸의 손을 뻗는다. 제목인 ‘신의 화살’은 울루 신의 사제인 에제울루를 상징한다. 에제울루는 자신이 “신의 활시위 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행위를 신의 뜻으로 정당화한다. 신을 모시 는 대사제이면서 자기 아들을 기독교도로 만든 것이나 스스로 백인의 청을 거절해 옥에 갇혔으면 서 그 분노를 자기 동족들에게 돌린 것이 모두 울루 신이 애초에 백인과 손을 잡고 자신을 시기하 는 내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계획한 일이라 믿고 자신의 고집대로 사람들에게 맞선다. 얌을 추수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에제울루가 햇얌 축제를 승인하지 않아 마을 사람 모두가 기근으로 고통 받 던 중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아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자 혼란 속에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울루 신은 어째서 자기를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그를 때려눕힌 다음 진흙으로 덮어 버리는 식으로 그를 다룬단 말인가? (중략) 도대체 어느 누가 자기 아들을 야자나무 위로 올려 보내 열매를 따라고 한 다음 도끼로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일이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서 벌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게 모든 것의 붕괴와 파멸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신의 뜻은 무엇이며, 신의 화살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사람들은 신이 “고집스럽고 야망에 찬 사 제에 대항하는 부족민들과 한편”이 되어 자신의 사제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동족 의 위험에 맞서 싸워야 할 사제가 그 책임을 망각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으니 신에게 버 림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이러한 사제의 파멸은 결국 울루 신으로 대표되는 우무아로 전통 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신의 화살은 잘못 날아간 것이다. 신이 사제를 징벌하거나 적들 앞에서 그를 포기하기 위해 이와 같은 순간을 선택했다면 그는 버릇없 이 굴라고 사람들을 선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무아로는 그런 행동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었 다. 오비카가 죽고 며칠 지나지 않아 거행된 기독교도들의 추수감사절에 굿컨트리가 기대했던 것 이 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곤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들에게 얌을 하나둘씩 들려 보내면서 새로운 종교에 그것을 바치고 약속된 면죄부를 받아오게 했다. 결국 신에게 받은 권력을 누리던 대사제는 물론 그를 자신의 활시위에 걸어 놓고 가늠하던 신도 예 정된 파국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은 혼돈한 식민지 역사에서 예정된 것이기에 작 가의 담담한 어조에도 애달프기 그지없다. ■ 식민 역사를 주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아프리카 정신을 복원한 기념비적 작품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는 그들의 슬픈 역사가 남긴 상흔을 딛고 주체적인 시 각으로 식민 역사를 바로 보고 바르게 기록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신의 화살』은 이러한 작업 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이른 바 ‘아프리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앞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와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상황에 서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전통적인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을 담고 있다. 아체베는 ‘식민지 수 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시종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로 아프리카 전통 사회가 서구 문화의 유입과 내부의 혼돈으로 인해 사회적, 정신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된 상태를 담담하게 그려 내 갈채를 받았다. 장로인 할아버지와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기 독교도로 성장한 아체베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에제울루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세상이 변하고 있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런 게 나도 싫다. (중략) 내 아들 중 하나가 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곳에서 내 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배울 게 하나도 없다 면 너는 다시 돌아올 거야. 하지만 뭔가 배울 게 있다면 너는 내 몫을 집으로 가져오렴. 이 세상은 탈 춤과도 같단다. 네가 만약 그것을 잘 보고 싶어 한다면 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단다.” 한데 그렇게 주장하던 에제울루 자신은 정작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가당착에 빠진다. 자기 손 으로 선교사에게 보낸 아들이 선교사의 뜻을 받들어 신성한 도마뱀을 죽이려 상자에 가둔 것을 알 고는 그를 혼내는가 하면 족장이 되라는 백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감옥 안에서 자신의 명성이 다시 높아지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에제울루가 고집스럽게 자기 동족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다 자멸하 는 모습을 통해 아체베는 이러한 몰락이 전적으로 외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통과 변화, 권위와 책임감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대사제의 아집과 상황 파악도 못 하고 동족과 전쟁을 벌인 마을 사람들의 욕심이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