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의식을 날카롭게 통찰한
미국 문학사상 가장 대중적인 작가 잭 런던(1876~1916)
20세기 초 전 세계적인 문화의 아이콘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모험의 작가 잭 런던의 단편선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열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매일 하루에 천 단어씩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 그는 만 40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야성의 부름』 『늑대개 화이트팽』 등 19권의 장편소설뿐만 아니라 수백 편의 기사, 에세이, 비평을 비롯해 200여 편에 가까운 단편소설을 남겼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단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잭 런던의 새로 엮은 작품집 출간을 기해서 E. L. 닥터로가 “오늘날까지도 잭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다”라고 《뉴욕타임스》 서평에 언급했을 당시나, 런던이 사망한 지 100여 년이 된 지금에도 그의 인기는 변함이 없다. “잭 런던은 우리가 본 몇 안 되는 모험가이자 활동하는 작가였다…… 그의 명성은 장편 『강철 군화』에 주로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단편의 탁월함이 거의 잊혔다”라고 한 조지 오웰의 말처럼, 짧은 인생 동안 수많은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 런던의 삶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장편들, 방대한 양의 글들에 비해서 단편소설들은 그 우수한 문학성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단편소설은 일생 동안 인종과 관련하여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취했던 자신의 가장 편견 없고 공정한 모습을 보인 장르로서, 일부 학자들은 단편소설이야말로 잭 런던 문학의 핵심이라고 말할 만큼 잭 런던을 논할 때 그의 단편은 결코 차치할 수도, 빼놓을 수도 없는 작품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번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단편선은 총 2부로 나누어 런던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 근간이 된 클론다이크 이야기 12편과, 작가의 노동 경험 및 원시문명의 구석까지 누빈 세계 여행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 등 여러 체험 속에 빚어진 단편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 13편을 가려 수록하였다. 그간 국내 출간된 잭 런던 단편선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고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런던 문학의 다채로운 면모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1897년 당시 21세였던 런던은 캐나다의 북극 인근 지역인 클론다이크 강으로 향하는 골드러시 대열에 합류하였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나, 이때의 경험을 살려 1899년 1월 데뷔작 「들길을 가는 사내에게 건배」를 발표하고, 이어 중편소설 「북극의 오디세이」로 떠오르는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유콘 강 인근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는 백인 ‘맬러뮤트 키드’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백색 침묵」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나오는 키드는 런던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마틴 에덴』의 주인공 마틴 에덴보다 작가 자신이 가장 강하게 투영된 캐릭터로 평가받는다. 맬러뮤트 키드는 일반 도덕규범에 비추어 보자면 범죄라 할 수 있는 행위를 저지른 들길의 사내들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황소조차 일격에 쓰러뜨릴 강하고 거친 남자”지만 “불쌍한 동물들은 차마 때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키드는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나 「백색 침묵」에서는 얼어붙는 북극의 추위에 결국 죽어 가는 친구를 버리고 들길을 떠난다. “잭 런던의 내면에서는 삶의 투쟁에서 강자가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이론과 인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충돌하고 있다”고 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와 같이 적자생존과 인류애라는 런던의 서로 상충하는 사상은 작가의 분신 맬러뮤트 키드를 통해 상징적으로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런던은 모두 50여 편에 달하는 클론다이크 관련 이야기를 남겼는데, 클론다이크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인간을 농락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나 그 결말은 항상 인간의 승리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가장 좋아한 작품 중 하나로도 유명한 「생명의 애착」처럼 고된 사투 끝에 불굴의 의지로 목숨을 구하나, 「불 피우기」에서처럼 자연의 힘을 무시하는 순간, 인간은 무력하게 쓰러질 뿐이다. 이와 같은 자연, 더 나아가 생의 냉혹함은 런던 문학의 큰 주제 가운데 하나로 이는 비단 북극이나 런던 작품의 또 다른 배경인 남태평양 같은 자연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의 소년 노동자 체험이 녹아든 「배교자」와 같이 산업사회 그리고 「강한 자들의 힘」에서처럼 계급사회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런던의 이러한 주제의식은 드러난다. 어떠한 논평이나 교훈 없이 덤덤히 이야기를 서술한 「멕시코인」의 리베라가 백인들로 가득한 경기장에서 홀로 링에 오르는 모습들은 독자의 연민과 의분을 불러일으킨다.
런던은 이렇듯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위력을 강력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그에 맞서는 다양한 정신의 발현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인물들에게 강한 애착을 보인다. 런던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작품 하나하나가 이야기로서 더없이 흥미진진하면서도 그 안을 들춰 보면 인간 무의식의 야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한 개인의 모험기를 뛰어넘어 당대의 서로 충돌하는 사상과 그 시대정신들을 조화롭게 담아낸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대를 넘어서서 뜨거운 울림을 자아내는 그의 인물들의 숭고한 투쟁이 안겨 주는 감동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이 기억하고 사랑하는 작가, 잭 런던을 만들어 준 힘일 것이다.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세계문학 단편선>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장편소설 위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단편소설에 초점을 맞춘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그동안 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거장들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불가결한 대표 작가들을 소개할 것이다. 아울러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문학의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나라들의 대표적 단편 작가들도 활발히 소개해 단편소설의 발전이 문화의 중심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스터리, 호러, SF 등 문학 장르의 분화를 촉진했는데 이러한 장르문학의 형성에도 단편소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한 장르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가들의 단편 역시 새롭게 조명할 것이다.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편소설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삶의 불변하는 단면을 촌철살인의 관찰력과 응축된 예술적 형식으로 꾸준히 생산해 왔다.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린 칼로 베어 낸 듯 날카로운 인생의 다양한 단면들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문학적 기법과 실험의 도입을 통해 단편소설은 현재도 계속 진화, 확장되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열정이 가장 뜨겁게 투영된 다양한 개성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통해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통찰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쁜 일상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세계문학 단편선>은 중심을 잃지 않고 삶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